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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빛나 Sep 02. 2023

세 마리의 개와 식물

1

어김없이 그 녀석들이 나타났다. 두배나 큰 그림자를 달고서. 나는 꽃집 앞 선반 구석에서 그들을 주시한다. 이 골목의 보안관인 내가 태어나서부터 계속하고 있는 일이다. 갓자란 듯 싱싱한 아이들이 나의 노고를 알 리가 없지만. 모두가 잠든 사이, 나는 모든 신경을 집중해 세 마리의 개를 감시한다.

 세 마히의 개들이 나타난 건 아마 2년 전. 사람들이 하는 말로는, 참그린아파트가 사라지면서 나타났다고 했다. 쟤들은 그럼 아파트에서 태어난 걸까. 나는 개들의 엄마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에게도 그렇다할 엄마가 없으니까. 흙이나 지구가 나를 낳았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나는 어느 순간 흙 속에 있었고 인간에 의해 헐벗은 몸이 되기도 했다가, 내 뿌리를 담기엔 작은 화분에 살게 되었으니까. 내 엄마는 인간인가? 바람이 불자 선반의 식물들이 박수를 쳤다. 잎사귀끼리 부딪혀 나는 소리였다. 빛나는 눈동자 세 쌍과 눈이 마주쳤다. 박수를 치고 있지 않은 식물이 나 하나기 때문이겠지. 나는 키가 클대로 커서 나와 손이 닿는 식물은 없다. 다들 나이가 어릴 때 인간의 선에 들려나간다. 인간의 말도 배우지 못했을 때. 개들은 나를 보며 몇 번 짖다가 쓰레기 봉투에 코를 갖다댔다. 킁킁거릴 때마다 개들의 마지막 갈비뼈가 움직였다. 개들은 쓰레기봉투 더미에서 하나를 골라 물어뜯기 시작했다.

 모자란 녀석들. 뜯어진 구멍 사이로 토사물처럼 갖가지 쓰레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에게 양질의 물을 주는 인간이 아침에 쓰레기로 난장판이 된 걸 보면 혀를 끌끌 차며 욕을 하겠지. 개밥에 쥐약을 섞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쓰레기봉투에서 음식물이 묻은 플라스틱을 꺼내 사이좋게 핥고 있는 개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행동하니까 너네가 사랑받지 못하는 거라고. 인간이 아닌 이상 이 도시에서 자급자족하는 건 어렵다. 아파트에서 태어난 애들이 어째서 그걸 몰라. 개들은 쓰레기봉투 두세봉지를 더 터트리고서 입맛을 다셨다. 아쉬운지 음식물 쓰레기통을 넘어트렸지만 누런 물만 흘러나왔다.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는 날은 화요일이야. 그리고 여기는 식당가가 아니라 화훼단지야.”

 내 간섭은 여기까지. 내 거리를 더럽히는 저 개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개들은 내 얘기를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내 쪽을 슥 바라보았다. 덩치가 제일 큰 개가 걸음을 옮기자, 작은 개들은 쓰레기봉투에서 빈 음료수통 하나를 꺼내물고 뒤따랐다. 발톱이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통, 하고 플라스틱 통을 떨어트린 소리가 들렸다. 모자란 녀석들. 텅 빈 걸 가지고 가서 뭐하겠다고….

 개들이 떠나자 화훼단지는 조용해졌다.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가 가끔 들렸다. 나는 슬슬 목이 말랐다. 오늘 나는 세 모금의 물을 마셨다. 벌써 푸석해진 흙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왔을지 모를 벌레가 숨어 있다. 벌레를 잠깐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어두운 밤이었고 이제는 아무도 내 구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졸음이 우- 하며 달려들자, 내가 눈을 뜨자마자 처음으로 마주했던 인간의 말이 재생됐다. 얘는 안 팔리겠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팔린다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슬퍼했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니까.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밤을 보내며 닳도록 반복재생된 말…. 닳을 듯하면서도 미울만큼 멀쩡한 음질…. ‘잘 자라, 우리 아가’ 같은 말…. 나는 이제 팔리지 않는다는 말의 뜻을 안다. 귀뚜라미가 찌르르 울고 식물 몇 개가 뒤척였다.


 꿈을 꿨다. 나는 숲속에 있었다. 숯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숲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보다 키가 몇 배는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이 햇빛만이 고요하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들꽃 몇이 꼿꼿이 서 있었고 나는 그들의 중심에 조그맣게 서 있었다. 나뭇잎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빛을 보자 군침이 돌았다. 손을 뻗으려 했지만 좀처럼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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