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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빛나 Aug 11. 2023

굿바이 푸린

아기 햄스터를 영원히 기억하겠다 다짐하며  

집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떠나다

견과류들이 구름처럼 둥실거리다

나는 너를 언제나 기억하다

너에게 먹이처럼 줬던 하소연과

캐슈넛 같은 작은 기쁜 일들

나의 시간들은 너의 소화기관을 통해 배출되다

먼지 쌓인 테이블에 발자국처럼 놓인 먹이

너는 탈출에 성공하다

덩그러니 놓인

아늑하고 고요한 너를 위한 자리

몸을 웅크려 보다

나에게는 맞지 않다

나는 네가 했던 것처럼 볼에 슬픔을 저장하다

고소한 맛이 나다

한 줌도 안 되는 식사를 챙기는 내 모습이 장난이다 ​


창밖은 고요하다

너의 탈출을 축하하듯

우리에서 나오는 너의 소리 없는 발자국

일렁이다

더이상 너를 통해 환기되지 않는 이 둥근 지구의 공기

폐를 사용하지 않겠다 선언하다

너를 사랑하지 않겠다 선언하지 못하다


세상이 하나의 지루한 연극이다

이제야 다가온 안녕

옥수수를 앞에 두고 꿈의 신에게 빌다

안녕이지 않게 해 달라

안녕과 안녕 뿐이었던 너

곰처럼 겅중겅중 뛰어오는

굿바이 ​


* ੈ‧₊˚* ੈ‧₊* ੈ‧₊˚* ੈ‧₊* ੈ‧₊˚* ੈ‧₊​

2023년 2월 5일

대보름에 부스럼을 먹으러 떠난 용맹한 햄스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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