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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진오 Apr 11. 2017

부모님에게 학사모란

#17

 퇴근길 스마트폰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초조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머릿속에서 오늘 이야기할 내용에 대해서 계속 반복했지만 그 어떤 말도 설득력이 있거나 타당하지 않은 듯했다. 그렇다, 오늘은 부모님께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고자 마음먹은 날이다. 막상 결심은 했지만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리고 과연 부모님이 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시골에서 태어나셨다. 그리고 그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하셨다. 두 분 다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셨고 그렇기에 자식에 대한 기대가 많으셨던 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대기업에 최종적으로 합격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뻐하시고 행복해하셨다. 어느 모임에 나가도 자식 자랑하기 바쁘셨고 모임에 다녀오셔서 ‘오늘 아들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하더라’라며 술기운에 조금 들뜬 마음으로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실 때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효도라는 것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불편했고 죄송스러웠다. 만약 내가 퇴사를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부모님이 느끼실 실망감이 얼마나 클지, 나의 행복을 위해 너무나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이미 마음의 결정은 내렸고 사실 나는 설득이 아닌 통보를 하기 위해 지금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었다. 그렇게 걱정스러운 마음을 품고 어머니가 일하시는 가게에 찾아갔다. 그전에 어머니께 전화를 미리 해놓은 상태였다. 


“ 드릴 말씀이 있으니 가게로 찾아갈게요.” 


 생전 전화 한번 먼저 한적 없던 무뚝뚝한 아들놈이 먼저 전화를 한 것도 모자라 일하는 곳에 찾아오겠다고 하니 얼마나 불안하셨을까. ‘혹시 얘가 무슨 사고를 쳤나’하며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께서 일하시는 가게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가게에는 별로 손님이 없이 한가했고 어머니께서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내 맞은편에 자리했다. 


 나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오늘 여기에 왜 왔으며 어머니께 드릴 말씀은 무엇인지, 내가 왜 퇴사를 하기로 결정을 했으며, 그동안 어떠한 마음으로 지내왔는지.. 어머니께서는 한참 동안 나의 말을 덤덤하게 경청해주셨다. 마치 어린 시절 사고를 치고 돌아와 꾸지람을 들을 각오를 하는 꼬마 아이처럼 나는 어머니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쩌면 내가 그 앞에서 쏟아내는 모든 말들은 퇴사를 합리화하기 위한 나의 초라하고 절박한 변명이라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후에 어머니는 담담하게 입을 얼었다.

 

“ 이미 결정을 한 거니?”


“ 응.. 이런 결정을 해서 너무 미안하지만 나를 한 번만 믿어주면 안 될까?”


“ 엄마가 언제 너 안 믿은 적 있니? 엄마 주변 사람들도 다 네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해, 엄마는 너 믿어” 


“ …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평소에 어머니께 존댓말을 하지 않는다. 존댓말을 커녕 가끔은 내가 생각해도 참 못날정도로 무심하고 버릇없는 모습도 많이 보여왔던 것 같다. 하지만 무조건 적으로 나를 믿는다는 어머니의 말에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는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진심이었다. 사실 나는 어머니가 노발대발하며 화를 내시거나 내가 하는 이야기를 아예 듣지 않으시고 반대하실 줄 알았다. 화를 내고 반대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부모님들을 설득해야 하나’에 대한 생각만 했지 이렇게 순순히 수긍을 하실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커졌다. 앞으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며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당연하게도 자연스레 곧이어 아버지도 나의 퇴사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보다는 조금 더 많이 실망하시는 눈치를 보이셨지만 마찬가지로 크게 반대는 하지 않으시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며 응원해 주셨다. 


 며칠 뒤 평소에는 눈길도 잘 자주 않던 아버지 방에 걸려있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내 대학교 졸업식날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사진 속 미소 띤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오래되었지만 그때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졸업식 한 달 전부터 정확한 졸업식 날짜가 언제인지 재차 확인하시듯 나에게 물어보았다. 내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본인의 업무 일정을 조율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오시지 않은 부모님께서는 학사모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하셨다. 나는 사실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을 생각까지 했는데 부모님께서 노발대발하시며 졸업식은 꼭 참석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특히나 아버지는 가끔 술에 취해 들어오신 날이면 어릴 적 어려운 형편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을 참으로 아쉬워했다. ‘본인도 꿈이 있었노라’며 술기운을 빌어 하소연을 하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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