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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진오 Jun 23. 2017

평일 오후 2시, 강남역

#19


 2016년 8월 26일 아침,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양복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대로 깔끔한 셔츠를 고르고 구두를 준비했다. 씻고 나와 오랜만에 왁스로 머리를 손질했다. 마치 3년 전 첫 출근 하던 기억이 스치듯 지나간다. 그때의 설렘과 지금의 두근거림, 비슷한 듯 하지만 엄연히 다른 그날과 오늘. 


 오늘은 퇴사하는 날이다. 


 이른 새벽 평소와 같이 강남역에 도착해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머리만 대면 잠이 쏟아지던 이 곳에서 오랜만에 잠들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며 뜬 눈으로 회사에 도착했다. 이미 며칠 전에 책상 정리는 끝냈고 노트북 반납도 완료했기에 사무실에서도 크게 할 일이 없었다. 오늘 할 일은 마지막으로 사원증을 반납하고 팀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유난을 떤 이유는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조금은 깔끔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유관 부서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그리고 신입사원 교육을 함께 받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3년 동안 거의 얼굴도 못 보던 동기들도 오랜만에 만나 커피를 한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퇴사하고 무슨 계획이 있는지 물어왔고, 그럴 때면 나는 그냥 한동안은 좀 쉬며 여행을 다녀오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동기들은 나의 용기를 부러워했고 그러지 못한 스스로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마지막이 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사원증을 반납하였다. 사원증을 담당하는 곳에는 여직원 두 명이 일을 한다. 평소에는 통문, 자산 처리를 위주로 하는 곳이라 여러 사람들이 다녀가기 때문에 얼굴에 표정이 없고 다소 쌀쌀맞게 사람을 대하는 편이다. 그런 사람들도 내가 퇴사하고 사원증을 반납한다고 하니 표정이 조금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자리에 없는 팀원들이 꽤나 많았다. 오늘이 나에게는 퇴사라는 역사적인 날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다른 날과 똑같은 평범한 금요일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회의에 들어가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고 누군가는 바쁘게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리에 계신 분들에게는 직접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마지막 덕담과 그동안 고생했다는 격려의 말을 들으며 그렇게 나는 회사를 나왔다. 


 정문을 막 나서는데 마지막으로 회사 안에서 얼굴을 보지 못한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3년 전 교육을 받으며 알게 된 동기, 그 이후에 한 동안 얼굴을 거의 보지 못했던 동생이다. 이미 정문까지 나와 버렸기 때문에 굳이 내려와서 만나는 게 그 친구에게 번거롭기도 할 듯하여 ‘바쁠 텐데 다음에 시간 내서 보자’고 이야기했는데도 굳이 얼굴을 보겠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솔직히 그다지 많이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동기가 퇴사한다고 정문까지 나와준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마 용기 있게 퇴사를 하는 내가 부러운 마음에 굳이 얼굴을 보려 한다는 못된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내가 그랬듯이 '퇴사'라는 마음속에만 품고 감히 꺼내 들지 못할 카드를 뽑아 든 내게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나느 또다시 오늘 하루 종일 반복한 ‘퇴사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되풀이하였다. 여행을 간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 퇴사라는 카드를 집어 든 용기, 앞으로 너의 앞날을 기대한다는 응원, 그 모든 것을 받아 들고 나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며 회사를 떠나왔다. 

 

 평일 오후 2시 강남역

 

 평일 낮 시간에 강남역을 활보해 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맹세코 입사를 한 이후에는 손에 꼽을 정도인 듯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평일 오후임에도 강남대로를 활보하고 다닌다. 평소 주말에 보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강남역의 모습을 보니 다소 당황스럽다. 이 많은 사람들이 평일 오후에 일은 안 하고 도대체 길거리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시간은 나에게 회의에 들어가거나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받으며 바쁘게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시간이다. 


그게 나의 세상이었다. 


 하지만 눈을 돌리니 내가 있던 세상은 참으로 비좁았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 세상은, 이 세계를 이루는 극히 일부였을 뿐이었다. 나는 너무 순수했고 바보처럼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전부인 줄 착각하고 살았다. 그 세상이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님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평일 오후 2시 강남역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지난 4년 간 나를 둘러쌓던 세상이

전부라 생각했는데 

그 세상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더라.

나는 오늘 더 큰 세상으로 

나온 우물 밖의 개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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