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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진오 Dec 08. 2018

"형, 후회하고 있잖아"

선택과 결정, 그리고 결과

#첫 번째 퇴사 그 이후


조금은 요란스러웠던 첫 번째 퇴사 이후 2년 동안 나는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현재는 작은 스타트업의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기구 설계자에서 디지털 마케터로 나름 역동적인 커리어 전환을 거치며 현재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정글 같은 곳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중이다.


첫 번째 퇴사를 너무 요란스럽게 해서였을까, 새로운 곳에서 조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내 소식을 전해 들은 지인들은 "퇴사 고백을 하고서 입사 고백을 다시 하셨다고요?"라며 농담스레 내 안부를 묻기도 한다. 너무 거창하게 퇴사하는 이유를 시시콜콜 다 이야기해서, 내가 두 번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지레짐작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오해가 아닌 사실인 부분도 있다. 나는 조직을 떠나서 온전한 개인으로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살고 싶었으므로, 좋은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나의 가치가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나'라는 사람 그 자체로 인정받으며 살아가고 싶었으니까. 능력만 된다면 지금도 특정 회사, 조직에 얽매여 살아가긴 보단,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싶은 철부지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 "형, 후회하고 있잖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요즘, 퇴근길에 오랜만에 예전 직장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퇴사 이후 2년 만에 처음으로 연락이 온 것이라 더 반가웠는데 알고 보니 이 분도 곧 이직을 하게 되어서 직장 동료들과 간단한 술자리를 갖던 도중 내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다. 술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예전에 나와도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듯했다.


반가움에 안부를 묻던 전화는 자리에 함께 있던 친한 동생에게 넘어갔다. 이미 많이 취한 듯한 동생은 간단한 안부를 전하며 '요즘 별일 없지?'라는 나의 안부 섞임 물음에 '나는 잘 지내지, 형은 후회하잖아'라며 밑도 끝도 없이 뼈를 때리는 말을 남겼고 나는 크게 웃으며 '나 후회 안 하는데?'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통화를 끊고 나서 친했던 그 동생이 술김에 던진 말은 계속해서 여운으로 남았다.

나는 혹시 후회하고 있나?


사실 퇴사를 하고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묻곤 했다. 퇴사한 걸 후회하지 않냐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안부와 함께 꼭 묻는 단골 질문 중에 하나다. 그럴 때마다 예전에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곤 했다. 80%는 진심이었고 20%는 다짐이었다. 절대 내가 내린 결정을 후회하지 말자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하지만 친한 동생의 확신에 찬 듯이 내뱉은 그 말은, 그에게는 지금 나의 모습이 예전보다 못 해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더 낮은 연봉에, 듣도 보도 못한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내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주 52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탄력근무제도를 시행하며 여유로워진 출퇴근, 해가 지날수록 연차와 함께 올라가는 연봉을 받는 그 친구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더 많은 연봉을 주는 기업으로 이직한 것도, 사업을 해서 성공한 것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유롭게 행복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닌 그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되는 대로 작은 회사에 다시 취직해 일하는 별 볼일 없는 월급쟁이의 삶으로 보일까?




# 선택과 결정 그리고 결과


 삶에 있어 중요하다고 느끼는 선택과 결정은 과거의 경험, 현재의 상황, 미래의 기대 요소를 모두 포함해해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내가 내린 선택과 결정은 그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물론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나는 알 수 없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단순히 한 가지의 원인만이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나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의 외부 요인들은 언제나 내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외부 요인들이 선택의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많이들 이야기한다. "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 " 그때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우리가 그때로 돌아가 A가 아닌 B를 선택한다고 해서, 더 나은 결과가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가? 아니 그때 A라는 선택을 다시 한번 반복한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도 우리는 할 수 없다.


한 통의 전화가 흔들어 놓은 감정으로 쓰기 시작한 이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당시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서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내가 만들어 가는 과정이 존재한다. 누군가 보기에 아직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당시의 선택이 옳은 결정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끝내 기어이 그 결정을 옳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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