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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ckerair Jul 01. 2021

아담 샌들러가 만들어낸 <언컷 젬스>의 카오스

왜 아담 샌들러여야만 했는가

 관객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가 종종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관객을 편하게 놔두지 않는 연출, 잔인한 장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서사를 다루는 영화들이 그러합니다. 국내에서는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개봉한 <언컷 젬스(Uncut Gems)>도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감독인 사프디 형제(Benny Safdie & Josh Safdie) 특유의 에너제틱한 연출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주연 아담 샌들러(Adam Sandler)의 연기를 감명 깊게 보았다고 합니다. 그가 연기한 주인공 하워드의 행동과 대사는 역동적인 상황을 야기하고 끝없는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역동적'이면서 '긴장감'을 유발하는 연출은 수많은 스릴러 영화가 가지고 싶어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kKdBkmugEI


 하지만 <언컷 젬스>의 연출은 스릴러 영화에서 말하는 '역동적'과 '긴장감'과는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은 보는 내내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았고, 정신이 없었으며, 심지어 불쾌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멍청한 선택을 거듭하는 주인공 하워드는 꼭 하면 안되는 행동을 기어이 하고 마는 공포영화 속의 바보 같은 인물처럼 보인다고 비판합니다. 


 최근 들어서 같은 영화에 대한 반응이 이토록 상반된 적이 있던가 싶었습니다. 양극단의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어쨌든 흥미를 유발하는 데는 성공한 셈입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걸 입증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vcFrNch9mY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하고, 편집한 사프디 형제가 아담 샌들러에게 시나리오를 보낸 건 무려 10년 전이라고 합니다. 당시 사프디 형제는 각자 혹은 함께 단편 영화를 연출하기도 하고 직접 출연하여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아담 샌들러는 그들의 시나리오를 거절했습니다. 그에게 시나리오가 가기 전에 매니저 선에서 끊어버린 것이죠.. 그리고 5년이 지난 후, 사프디 형제는 다시 아담 샌들러(의 매니저)에게 시나리오를 보내지만 거절당합니다. 참고로 아담 샌들러의 매니저가 거절한 영화로는 바스터즈,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등...


 그러던 와중에 2017년, 사프디 형제는 지체장애인 동생을 감옥에서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의 이야기인 <굿타임(Good Tims)>을 연출합니다. 로버트 패틴슨(Robert Pattinson)이 감독에게 먼저 연락을 하면서 주연을 맡게 된 이 영화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습니다. 사프디 형제 특유의 멜랑콜리하고 긴박감 넘치는 연출을 비평가들이 주목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프디 형제의 시나리오를 거절했던 아담 샌들러도 마침내 그들의 영화를 보게 됩니다. 아담 샌들러가 <굿타임>을 감명깊게 보면서 마침내 <언컷 젬스>의 출연을 승낙합니다.


 <굿타임>에서는 구치소에 갇힌 동생을 구출하려는 남자 A, 남자를 사랑해서 그를 대신해 보석금을 결제하려는 여자 B, 석방 명령서를 쓸 수 있는 보석 담당자 C, 보석금 결제 담당 직원 D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7hrmM-Qqmw


 남자 A는 여자 B와 대화하는 동시에 보석 담당자 C에게 얼른 절차를 진행해달라고 닦달하고, 보석 담당자 C는 유선 전화기로 구치소 담당자 E와 전화를 하고 핸드폰으로는 판사 F에게 전화하며, 여자 B는 결제 담당 직원 D와 대화를 하다가, 본인의 엄마 G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4명의 인물이 나오지만 6개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장면의 내용은 관객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인 대화들이 이루어지는 이 장면에서 대사들은 초 단위로 튀어나옵니다. 더군다나 인물의 감정은 점차 고조됩니다. 긴박한 상황이 불러일으키는 서스펜스는 점차 카오스의 형태로 변모됩니다. 

 

 <굿타임>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늘 떠오르는 이 장면은 후속작 <언컷 젬스>의 시초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의 성격을 보여주는 초반부 장면. 에티오피아 시퀀스가 끝난 이후(혹은 연결되는)의 장면입니다. 하워드는 병원에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고, 자신의 가게로 출근해서 사채업자와 마주하여 돈을 뺏기고, 도박업자에게 돈을 걸고, 자신의 또다른 집으로 가서 불륜 관계에 있는 여자를 깨우고, 다시 가게로 출근하여 보석을 사러 온 농구선수를 만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mlVK6fG1gg


 이 몽타주 신이 지속되는 시간은 10분도 되지 않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죠. 화면만 놓고 보면 특출날 게 없을지 모를 이 장면은 대사가 끊기질 않습니다. 주인공 하워드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과의 대화를 보여주는 방식은 그야말로 숨막힙니다. 


 그런데 왜 사프디 형제는 오랜 시간 동안 아담 샌들러를 캐스팅하려고 했을까요? 아담 샌들러는 철딱서니 없는 남자를 주로 연기하는 배우로 유명합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무해하게 연기하는 성인의 이미지를 관객에게 불편함없이 전달한다는 그만의 특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출연작 중 대부분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종종 그는 정형화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라고 폄하받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릴러 장르인<언컷 젬스>에서 아담 샌들러가 연기한 보석상 하워드의 모습과 그의 다른 코미디 영화 속 캐릭터를 비교해보면 놀랍습니다. 올백으로 넘긴 헤어 스타일, 분명 명품이지만 세련되지 않은 느낌을 주는 보석들과 가죽 자켓을 걸친 그의 외형적인 모습은 무해한 성질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어쩌면 사프디 형제에게는 무해한 모습을 일관했던 아담 샌들러를 자기 식대로 바꾸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프디 형제가 아담 샌들러를 캐스팅한 진짜 이유는 그가 하워드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적합한 연기자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의아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석상 하워드는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까 싶을 정도로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엄청난 양의 대사를 쏟아냅니다. 그런 캐릭터의 특성은 영화가 아닌 스탠드업에서의 아담 샌들러를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RycjPiqiNg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아담 샌들러의 스탠딩코미디 <신선도 100%(100% Fresh)>는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목부터 '100% Fresh'인 이 스탠드업은 좋게 말하면 새롭고 나쁘게 말하면 혼란스럽습니다. 그만큼 새롭지만, 걷잡을 수 없는 구성이랄까요.


 끊임없이 이야기의 주제를 바꿔 나가면서 실없는 말을 거듭합니다. 그렇게 말을 하다가, 느닷없이 랩을 하기도 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기도 합니다.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구성을 지닌 코미디, 어쩌면 코미디라기 보다는 노래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코미디를 천연덕스럽게 선보이는 아담 샌들러의 면모는 존재 자체로 정신산만한 하워드의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halG3Rw_QA

 

 아담 샌들러의 호연은 Independent Spirit Awards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의 수상소감을 보아하니 스탠드업이나 대중들이 좋아하는 아담 샌들러의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은가 싶습니다. 아담 샌들러의 필모그래피에서 코미디 영화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저는 <펀치 드렁크 러브>를 대표작으로 꼽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담 샌들러의 대표작은 무조건 <언컷 젬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작년 3월에 자료를 조사하고 작성한 뒤 이번에 일부 내용만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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