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의 비밀
만두를 본격적으로 빚기 시작한 건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매년 명절이 되면 큰집이 있는 용인으로 갔다. 그때도 추석을 맞아 큰집에 한데 모였고, 거기에는 고만고만한 내 또래 친척들이 여럿있었다. 서너살 터울의 언니 동생들이 줄지어 7명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빠의 세 형제는 비슷한 시기에 장가를 갔고, 비슷한 시기에 자식들을 놓았던 것 같다. 어쩜 약속이라도한 듯 똑같은 나이의 딸들을 하나씩 갖게 되었는지, 그것도 참 신기할 따름이다. 치밀한 아빠들.
당시 우리집은 명절에 내놓는 만두도 대개 시판용 만두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씩 기분이 내키는 명절에는 특별히 직접 만두를 빚어 먹었다. 그러니까 처음 만두를 만들었던 내 기억 속 추석은 아마 조금 특별한 추석이었던 것 같다. 세 형제의 부인들이 모두 기분이 좋았던 명절이었거나 할머니가 손만두를 유독 먹고 싶어했던 명절이었거나. 여하튼 나는 그때 만두를 빚었다. 만두소와 만두피 반죽은 어른들이 만들어주었고, 우리는 그것들을 둘러 앉아 열심히 만두를 빚었다. 작은 손에 밀가루를 바르고 손바닥을 편 다음 얇은 만두피를 척! 그 위에 밥숟가락으로 깊이 퍼 올린 만두소를 척! 그리고 만두피 가장 자리에 물을 묻힌 뒤 반달 모양을 만들어 꾸욱꾸욱 눌러주면 만두가 척! 하고 생겨났다. 물론, 처음엔 만두소의 양을 조절하지 못해 옆구리가 터지기도 하고, 주둥이가 터지기도 했는데 몇 번의 실수를 거듭하다보니 자연스레 안 터지는 만두 만들기 비법을 터득하게 됐다. 만두소가 거의 없어질 무렵에는 만두 만들기를 통달한듯한 느낌도 들었다. 몇 백개라도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옆에서 어른들은 괜한 말로 우리를 묘한 경쟁에 빠트리기도 했다. “만두를 예쁘게 빚어야 예쁜 아이를 낳는다더라. 누구 만두가 예쁜지 보자.” 우리는 아직 엄마 품이 익숙한 아이들이었음에도 그 말은 왠지 자극이 되었다. 딴에는 기왕 낳을 거면 ‘예쁜’ 아이로 낳고 싶다는 마음에 쓸데없는 열정을 만두 모양에다 몽땅 쏟아 넣기도 했었다. 게다가 우리 7명은 내 동생을 빼고 모두 여자였기에 ‘예쁜 만두 빚기 경쟁’이 그 누구보다 치열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 귀여운 풍경이다. 짓꿎은 어른들. 자부심과 경쟁심 같은 것들이 내 마음에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동안 준비한 만두소는 만두피 반죽과 만나 완전한 만두가 되었고, 우리의 할 일은 오로지 먹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갓 쪄낸 만두를 한입 먹고 나면 그날 하루는 그대로 끝나버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 좋았다. 저 많은 만두를 내가 만들었다니, 스스로 대견하기만 했다.
그 이후에도 내 인생에 있어 집에서 만드는 만두는 오로지 김치만두와 고기만두가 전부였다. 엄마는 종종 만두를 만들어 주셨는데, 김치만두는 너무 매웠고, 고기만두는 고기 비계가 많이 들어가 비리고 물컹물컹해 즐겨 먹지 않았다. 엄마는 못하는 요리가 없었지만, 만두만큼은 내가 봐도 좀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어림잡아 20여 년.
예쁜 딸을 낳고 싶다는 일념으로 눈에 불을 켜고 만두를 빚었던 5학년 소녀가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시댁에서 추석을 맞는 날이었다. 그때 시어머니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별아,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는 차례 안 지낼 거다.” 어머님의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수십년간 엄마가 했던 수많은 수고들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엷은 미소만. 씨익. 그리고 여기에 어머니는 한 마디 더 보태셨다. “그래도 우리끼리 맛있는 것 만들어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배추만두 어떠니?” “네? 배추... 만두요...?” 즐기면서 만들어 먹는 음식은 무엇이라도 좋았지만, 배추 만두는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다. “어머니, 배추 만두는 어떤 거예요?” “음, 평양 출신인 내 친구네 집에서 자주 만들어 먹는 건데, 아주 시원하고 담백해. 만두소에 배추를 지나칠 정도로 많이 넣는 거야. 고기는 아주 조금만 넣고. 친구가 매번 만들어 주는데, 그 맛이 정말 훌륭해.” 어머니의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너무 먹어 보고 싶어졌다.
좋아요, 어머니
이번 추석엔 배추만두예요!
만두피는 시판용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 대신 만두소는 정성껏. 가장 중요한 배추는 양껏 가득가득 잘게 썰어 냈다. 여기에 물기를 꽉 짜서 으깬 두부, 삶은 숙주나물, 부추, 고기는 아주 조금, 달걀, 그리고 소금과 후추로 간하고 골고루 섞었다. 그리고 배추만두를 빚을 때의 핵심은 반달 모양보다 조금 길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마치 마포만두의 갈비만두처럼. 어머니와 남편, 나. 이렇게 함께 셋이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 만두를 빚는데, 5학년 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머니, 그거 아세요? 만두 예쁘게 빚으면 예쁜 아이 낳는다고 하잖아요.” “아이구. 그런데 어쩌니, 네 남편 만두는 못생기다 못해 다 터져버렸다.” 그 말을 듣고 우리 셋 다 ‘하하하’. 그래. 투박한 손으로 힘겹게 만드는 것만으로 감사해야지 뭐, 하며. 괜한 위로와 함께 ‘하하하’. 그런데 남편은 남편이고, 나는 또 별것 아닌 농담인 줄 알면서도 예쁜 만두를 위해 이번에도 열심이다. 그것 참 별것 아닌데도.
이건 내 인생 최초의 배추만두였다. 어머니 말대로 배추만두의 ‘시원한 맛’의 진상을 알 수 있었다. 배추가 만든 육즙은 정말 개운하고 시원하고 상쾌했다. 게다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부대끼지 않고 속이 편안했다. 우리 셋은 몇 번을 연달아 만두를 쪄먹고는 볼록한 배를 두드리며 모두 흙침대에 올라가 뒹굴 거리다가 달콤한 낮잠을 청했다.
아, 달콤한 만두, 달콤한 추석.
베이비, 나 시집 좀 잘 온 것 같애
꿈에서 그랬는지, 꿈결에 잠꼬대로 내뱉었는지. 어쨌든 난 그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얼마 전, 엄마가 오랜만에 만두를 만들어 보내겠다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문득 작년 추석에 먹었던 배추만두가 떠올랐다. “엄마, 김치만두, 고기만두 그런 거 말고 배추만두로 해주라” “배추만두? 그게 뭔데?” “배추 많이 넣고 시원하게 만드는 만두! 고기는 아주 조금만 넣고!” “그래? 알았어. 그렇게 만들어 볼게.” 엄마의 만두는 한 번도 기대한 적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좀 기대가 됐다. 추석 이후에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터라 배추만두가 그리웠던 참이었다. 택배로 엄마의 배추만두가 도착했다. 바로 폭폭 올라오는 뜨거운 김에 만두를 쪘고, 입 안으로 직행.
“음....”
지난 추석 때 먹었던 달콤한 배추만두를 떠올리며 음미하는데, 조금 달랐다. 쫄깃하게 씹히는 표고버섯. 엄마는 내가 알려준 배추만두에 더해 엄마의 표고버섯을 넣은 것이었다. 엄마는 버섯을 좋아했고, 웬만한 요리에 버섯을 꼭 넣는다. 배추만두도 엄마의 레시피를 피해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다른 느낌, 다른 맛이었다. 이게 바로 엄마의 맛인가.... 엄마의 배추만두는 그래서 조금 특별했다.
하얀 만두피 안에는 저마다의 색깔이 있다. 굳어진 습관 혹은 바꾸고 싶지 않은 나만의 취향 같은 것 말이다. 매운 걸 좋아하는 엄마가 만든 김치만두가 매운 것은 당연한 것이고, 버섯을 좋아하는 엄마의 배추만두가 쫄깃한 것도 당연한 것이다. 시어머니의 배추만두는 속이 편하고 소화력을 우선으로 하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고. 만두 한 알 한 알에는 사람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만두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언제 먹어도 새로운 맛이 나는가 보다.
만두에서 찾은 작은 비밀 하나.
사람과 음식 사이, 그 짧고도 영원한 이야기를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