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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렌 Jun 03. 2022

800:1을 뚫고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사 일기] 첫 번째. 나는 왜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나.


저, 퇴사하려고요.


얘기를 꺼낸 순간, 같은 팀 대리님들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직장인이 되면 마음속에 사표 하나를 품고 다닌다는 말을 하지만, 정말 그 카드를 꺼낼 줄이야. 그것도 팀 막내가.


그러나 그 한 마디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는지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퇴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말하기까지 수 백 번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지금 나의 선택이 맞는 것일까. 이 선택을 후회하면 어떡하지. 수많은 질문을 나에게 던진 끝에 내린 결론은 퇴사였다.






취업 준비가 유난히 어려웠다. 큰 기업에 입사하고 싶던 대학생 시절의 나는 수많은 자소서를 작성하고, 인적성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았다. 서류는 번번이 통과하지 못했고, 면접에 가서도 벌벌 떨어 나를 다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 운 좋게 한 기업에 합격했다. 당시의 경쟁률이 무려 800:1이었고, 몇 안 되는 동기들과 함께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토록 바라던 취업을 하게 되어 기뻤으나, 회사에서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힘들었고, 왜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못하냐는 피드백 때문에 매일 밤 혼자 눈물을 훔쳤다. 실수를 해 혼나기도 하고, 늦게까지 일하느라 불 꺼진 사무실에서 혼자 야근도 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처음 배운 일이 보람찼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2년 조금 넘는 시간의 직장 생활이 나도 모르는 새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턱 하고 숨이 막히면서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배도 아픈 것 같고 토할 것 같기도 했다.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어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행히 주저앉아 쉬다 보면 조금 괜찮아져서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을 했다. 처음에는 괜찮겠지 했는데 출근길에 세네 번 정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여담이지만, 당시 치료를 받지 않았고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도 얘기하지 않아 어떤 증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공황 발작 혹은 미주신경성 실신이었던 것 같다.)


스트레스가 심해 두통이 있었고, 우울감이 있었다. 눈을 뜨면 내일은 어떤 일이 터질까 걱정하는 마음에 눈을 감기가 무서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퇴근을 하고 나면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고, 생각을 하는 것조차 싫은 상태가 되었다. 우울과 무기력함이 나를 찾아왔다. 종종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다. 내가 대체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모르겠고,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 없이 작아지고 초라한 나 자신을 보는 게 슬프고, 답답해서 화도 났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홀로 갇혀 나오지 못했다.

 





회사의 상황은 코로나의 직격타를 맞으며 점점 나빠졌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근무 환경이 악화되었다. 직원의 희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회사에 회의감이 들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았고, 주위의 누구도 의욕이 없이 회사를 다녔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을 버티지 못하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팀을 옮겨 보기도 하고, 피드백도 받아보고,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도 했다. 


하지만 점점 근무 시간에 앉아서 버티는 시간이 아까웠다. 동기 부여가 전혀 되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일할지 고민하는 자신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알 수 없었다. 회사 밖에서 행복을 찾아보려 했으나, 정작 회사 안에서의 시간이 행복하지 않으니 또다시 우울했다. 






결정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려고 결심한 것은 산에 올랐을 때였다.


불암산에서 만난, 너무 아름다웠던 노을

불암산에 야간 등산을 하러 갔는데, 노을이 아름답게 지는 모습을 보며 내가 밝게 웃고 있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주하며 행복함을 가득 느꼈다. 신난 강아지마냥 폴짝폴짝 뛰는 나 자신을 보며 생각했다. 아, 나 이렇게 밝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 이렇게 좋은 에너지를 뿜는 사람이었지.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회사 안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원래 밝고 긍정적이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거워하고, 매사에 열심히 하려 하는 사람인데. 회사에서는 어떻게든 빨리 일을 끝내려고, 말을 하지 않으려 하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회사와 직무, 연봉, 복지. 그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회사를 다님으로써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음을 느꼈다. 이 회사를 돈 외에는 더 이상 다닐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 순간, 나를 갉아먹는 일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나는 성장하는 것이 즐겁고, 일을 즐겁게 하고 싶었다. 일을 통해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고, 또 성장하고 싶었다. 다 함께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에서 성과 내고, 야근을 하더라도 즐겁게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는 안정적인 직장과 월급, 워라밸이 중요하겠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내가 받는 이 연봉, 승진, 워라밸, 커리어 등 이 회사에서의 모든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심하고도 얘기를 꺼내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말이 내 입을 떠난 순간,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첫 회사를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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