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작가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다가 1
1부 곁에 있는 어린이를 읽다가...
<어린이라는 세계>를 두번째 읽는데 이제야 제 입꼬리가 좀 올라갑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러지 못했어요. 책 속의 어린이들의 모습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제가 종종 주변 지인들에게 '우리집엔 이제 아이들이 사라졌어요' 라고 얘기하곤 하는데요.책 속 어린이들의 모습과 너무 동떨어져 버린 듯한 우리집 아이들의 모습이 더 대조되어서 이 아이들의 이쁨이 너무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책 속 작가님 만큼의 따뜻한 시선과 태도로 우리집 아이들을 대해주지 못했던 내 모습이 또 대조되어서 자꾸 미안해지곤 했거든요.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올라가려던 입꼬리가 저런 생각들이 무게를 더하고 더해서, 제 입모양은 일직선이 되거나 결국엔 아래로 축 쳐졌던 표정이었어요. 그 때 이 책을 읽고 있는 제게 남편이 묻더군요. "그 책, 책 제목이랑 다르게 심각한 내용이야?"라구요. ㅎㅎㅎ
두번째, 그리고 우리 첫모임에서 '그 시절의 어린 나'를 만나보라는 제안을 마음 속에 품고 읽으니 이제는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읽어지는 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매 순간 어린이 한명 한명의 존재가치를 귀하게 봐주고 그 마음과 표현을 너무나 따뜻하게 읽어주는 작가님의 그 시선이 여전히 참 존경스럽고요. 인상깊은 구절들이 너~~~무 많아서 이걸 다 쓰다보면.. 책을 다 옮기게 될 것 같아서! 오늘은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을 하나 꼽아서 나누어 봅니다.
1부에서 소개된 에세이 중 가장 제게 놀라웠던 작가님의 행동은 '겉옷 시중'였습니다.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그 신념으로 어린이를 대하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져잡기 위해 한다는 일종의 의식이라는 표현이었는데요.
'어린이 입장에서는 어깨만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스스륵 외투에서 빠져나왔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어린이에게 받은 옷은 옷걸이에 끼워서 모양을 잡아 걸어두는데 기다리는 손님이 어색해지면 안되니 이 또한 매우 민첩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그 상세한 서비스 메뉴얼(!)에서 또 존경심이 일었고, 그 상세한 장면과 서로의 마음들이 제 눈 앞에서 재연되면서, 그 공간과 시간에 있는 어린이는 얼마나 대접받았다는 느낌이 들까, 그렇게 대접받은 어린이들은 또 얼마나 멋진 어른이 되었을까가 기대되었어요.
반면, 일하는 엄마라는 이유로 저런 대접 한번 못해준 것 같은 나님의 모습도 떠올랐지요. 낮시간에는 내가 아이들 곁에 자주 없기 때문에 내 딸들은 일찍이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키웠고, 저희집 아이들은 18개월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 학교 입학 전에 몸씻기, 방정리, 옷챙기기, 가방 챙기기들을 스스로 해왔기 때문이에요. 엄마인 내가 무언가를 해준다기 보다는 '혼자서 잘하기'를 주로 가르쳐 왔던 엄마였기 때문에 미안함도 일었지요. 이런 생각을 하며 또 자책의 굴로 들어설 뻔 했습니다만... 저런 모양새는 아니어도 제가 하고 있는 나만의 '마음 시중 리츄얼'은 무엇일까를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아주 빈도 높은 '찐한 허그'를 해주고 있더라구요. 충전이 필요할 때면 시도때도없이 제게 와서 '안아줘'라고 이야기하는 16세의 큰 딸과의 그 순간이 저와 그 아이를 위한 '마음 시중'이에요. 그 안고 있는 순간에는 '사랑해', '괜찮아', '힘내'라는 말만! 그 외의 '~~~하면 좋겠어'라는 과업지시적 바람과 잔소리를 참아내는 것을 포함한 허그이지요.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13세의 작은 딸은 "짝짝. 촤악~ + 우다다다다 포옥"의 허그를 좋아하는데요. 최근에는 주객(?)이 바뀌어 아이가 먼저 품을 벌려주며 제게 달려오라고 하곤 하네요.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 시중을 저는 횟수 불문, 때와 장소 불문하며 서로에게 나누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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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렇게 이 책을 어린이를 보는 창으로 삼았다가, 나를 비추어 보는 거울로 삼았다가, 어린이를 대하는 세심하고 따뜻한 시선의 교과서로 삼았다가, 우리집 아이들의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는 소환제로 삼았다가, 아니 지금 이순간을 이렇게 보면 되잖아 하는 각성제로도 삼으면서 읽고 있음을 나누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