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작가의<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다가 2
<어린이라는 세계> 2부 중 '마음속의 선생님'을 읽다가
내 머릿속에도 참 여러 분의 선생님들의 얼굴들이 필름처럼 주르르륵 지나갔다.
그러다 아픈 기억도 떠올랐는데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것 같다.
나는 울 동네에서 조금 소문난 아이였다.
성인이 된 지금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 보면
그 동네에서 당시 몇 안되었던 병원의 막내딸이었고, 똘똘하다는 말을 꽤 자주 들었던 아이였다.
그 똘똘하다는 말이 아빠 덕이었는지, 순전한 나의 역량이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좀 더 솔직히는, 확인하기 싫지만ㅎㅎ) 당시 나는 그 동네에서 무서울 것 없는, 꽤나 당당한, 똘똘한 어린이였다.
유치원에 입학해서는 일주일 만에 "00이는 유치원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습니다"라는 말로 조기졸업(?!)을 당했었고, 학교 입학 후에는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답은 맨 앞줄에서 늘 먼저 답하곤 했다. 교무실이나 다른 반 선생님께 무언가를 전달하는 심부름도 내 몫이었고, 반장은 물론 우리 학년을 대표하는 자리나 발표회의 맨 앞자리 또한 내 거(!?)였다. 그런 나를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대하실 때면 "아. 네가 000이구나?"라고 알아봐 주며 친절히 대해주시곤 했는데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나의 그런 당당함이 눈꼴사나울 때가 있었나 보다.
그날은 아빠가 학교의 주치의로서, 또 운영위원으로서 학교에 방문하신다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 방문 시각에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어떤 이유로 혼나서는 나는 복도에 무릎 꿇어졌고,
어린 나는 혹시라도 울 아빠가 지나가시다 그런 나를 볼까 봐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난다. (적어도 내 기억엔)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홀로 무릎 꿇려져 있던 그 복도에서의 시간이 참 억울했던 느낌이 생생히 남아있는데,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선생님이 뭐라 뭐라 짜증을 내며 내 허벅지를 신발 신은 채로 밟으면서 끝이 났던 그 상황의 기억은 참 지금까지도 또렷하다. 그리고 그 마지막 행동으로 확신하건대 그날의 선생님의 나에 대한 행동은 교육자로서의 훈계가 아닌, 분명 그녀의 화풀이였고, 좀 더 억측하자면 그녀의 열등감의 반증이었다.
그렇다면, 그때 그 선생님과의 기억은 지금의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먼저, 그 이후에 나는 "00 병원집 딸"이라고 붙었던 그 수식어가 마냥 좋지만은 알았다. 그리고 그 수식어가 붙기 전과 후에 확연히 달라졌던 나를 대하는 어른들의 표정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의 직업, 거주하는 동네 등으로 단편적으로 판단당하는 것에 거부감도 있고, 그것을 근거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언사를 들을 때면 도리어 그 사람과 심리적 거리두기를 설정하곤 한다. 이런 나의 태도들이 그리 건강하지 않다는 것도 인정하며 이제 나는 어른이 된 나는! 나의 두 딸들에게 그리고 다른 어린이들에게 아주 사소한 행동이라도 순간의 내 감정의 화풀이를 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되네여본다. 그 누구도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상대방이 나보다 힘이 약한 위치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