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그리고 잔상
이 글은 본래 2014년 11월 18일 페이스북 개인페이지 포스팅한 글입니다.
‘라디오 천국에 오셨습니다.’
분명히 기억하건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첫 방송, 첫 곡은 ‘라디오 천국’이었다. 100회 특집 4탄으로 정확히 100회를 맞이하며 ‘The Musician’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꾸민 방송의 첫 곡도 역시 ‘라디오 천국’이었다. 그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이름이기도 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FM 음악도시>의 3부 시그널 음악이기도 했다. 99년, ‘익숙한 그 집 앞’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소품 집에서 이 시그널음악을 하나의 곡으로 만들었다. 그가 그토록 오래 또 많이 언급하던 Pat Metheny에 대한 오마주 곡이다. Pat Metheny를 이야기하고 조동익을 이야기하던 그의 목소리가 가로등 불빛처럼 방을 채우곤 했다.
그리고 유희열은 라디오를 하차했다. 3년 전 일이다. 스케치북과 라디오천국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로에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 앨범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라고 말하고는 눈물을 보였다. 그렇게 라디오 천국 마지막 방송을 마쳤다. 이번 앨범의 ‘우리’라는 곡은 그 날, 그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한다. 라디오를 듣는 기분이다.(그래서인지 가장 좋다.)
종종 드라이브를 즐기곤 할 때, 무슨 멋에 들렸는지 집에 오는 길목쯤에서 항상 같은 곡을 듣곤 했다. Mondo Grosso의 ‘1974 way home’ 이라는 연주 곡이었다. <라디오천국>에서는 이 음악이 ‘그녀가 말했다.’라는 코너에 사용되었다. 그가 자리를 비운 뒤, 오늘과 내일의 경계를 채워주긴 한없이 공허했지만 차창 밖을 스치는 가로등,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풍경들과 그런대로 어울렸다.
맥심 cf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선 공개된 곡의 제목은 ‘그녀가 말했다’였다. 오래 전, 이른바 토이 감성이라고 불리는 느낌이 가득해서 벅찼다. 그리고 18일, am 12시, 라디오천국의 시그널 음악이 흐르던 그 시간에 토이 7집이 공개됐다. 라디오에서 하차한지 3년만에 그리고 6집이 발매된 지 7년만의 일이다. 술이 취한 채, 집으로 오는 버스 안, 7년만에 그를 만났다. 다시는 못 볼 것만 같던.
조금 낯설기도 하다. 그 외 이번 앨범에 대한 평가는 접어두려 한다. 일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너무 가깝게 다가올지도 모를 테니까. 이적 4집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더불어 CD를 구매하는 일도 낯설어졌다. 꽤나 오랜만이다. 선반에 놓여진 음반들을 보면, 좋아서 음악을 듣고, 앨범을 사던 일은 옛일이 되어버렸다. 변해버린 환경을 탓하기에는 내가 더 변했다. 아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세상보다 내가 빠르게 변하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혹자는 토이가, 유희열이 변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기대하던 음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완성도와 별개로, 조금 아쉽기는 하다. 그러고 보면 <음악도시>, <All that music>, <라디오천국>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지지직’하는 소리 넘어, 목소리를 찾아 주파수를 맞추던 12시는 어플리케이션으로 대체됐다. 다시 지금을 알 수 없는 모습이 다가올 때, 시간의 때가 타면 지금은 낯선 이번 앨범의 몇몇 곡들도 토이 감성이 묻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학교 3학년, 익숙한 그 집 앞,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나눠 끼고 함께 ‘거짓말 같은 시간’을 듣던 그 친구는 얼마 전, 시집을 갔다. 그 날, 손에 들렸던 토이의 라이브앨범은 표지가 너덜너덜해졌다. 무덤덤하지만 그러나 감출 수 없는 상처를 시간이 남겼다. 그리고 딱 그 동안, 옆을 지켜주던, 그 들과 함께 나도 변했다.
(그래서일까 안테나뮤직 워리어즈의 콘서트 제목이던, 유희열이 무한도전에서 부르던 곡, 그리고 Da capo의 자켓 마지막 장의 문구. ‘그래, 우리 함께’라는 이 세 단어는 유독 묘하다.)
아무튼 이적은 조금 부드러워 졌다. JP는 나긋나긋해졌고, 정순용은 맑아졌다, 윤종신은 꾸준해졌고, 윤상은 중후해졌다. 유희열도 단지 그럴 뿐이다.
그리고 마왕은 세상을 떠났다.
취한 밤, 정말 시간은 멋대로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