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10. <나 혼자 산다>가 꿈꾸는 공동체
어릴 적에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한 환상이 컸다. 막연한 환상은 대부분 드라마 속 인물들에서 왔다. 일차적인 것은 드라마 속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화려하진 않아도 원하는 것을 충분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대부분 전문직이었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한 인물로 그려졌다. 경제적 지위와 능력에 자유로운 모습까지 갖췄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는 창이라고 했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TV 속 가상의 이야기 속 혼자 사는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화려하고 넓던 집은 조금씩 줄어들고 단출하여졌다. 획일적인 전문직이나 부잣집 자녀에서 벗어나 다양한 모습들로 확장됐다.
2015년을 기준으로 서울시내 1인 가구의 비중은 27%이다. ‘정상 가족’으로 인식되는 부부와 미혼자녀로 이루어진 가구 33.6% 다음으로 많은 형태이다. 더 이상 1인 가구가 특수한 형태가 아닌 보편적 가구의 형태라는 의미다.
2013년 3월 첫 방송을 한 MBC의 관찰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이러한 1인 가구의 보편화를 잘 대변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과거 드라마 속 1인 가구가 대부분 결혼 전 미혼남녀를 다뤘지만 <나 혼자 산다>는 대상이 좀 더 확장됐다. 기러기 아빠(김태원, 이성재)의 모습을 다루기도 했고, 60대 이상의 노인(김용건)의 삶을 그리기도 했다. 또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헨리, 파비앙) 등 다양한 형태의 싱글 라이프를 담아냈거나 다루는 중이다.
나 혼자 사는 삶은 생각만큼 아름답지도 자유롭지도 않다. <나 혼자 산다>에는 여러 인물들이 2년 단위로 집을 옮겨야 하는 모습이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단순히 방을 구하는 문제가 아니다. 저임금 구조와 치솟아버린 월세, 천만 원에 달하는 원룸 보증금은 열악한 환경 선택을 강요한다. 다양한 문제가 얽혀있다. 실제 1인 가구의 대부분은 20-30대 젊은 층과 60대 이상의 노인층으로 양분된다. 젊은 층은 높기 만한 집세에 좌절하고 노인층은 절대적 소득의 감소에 힘겨워한다.
전체 가구에서 18.5%를 차지하는 저소득층은 1인 가구의 경우 45.1%에 이른다. 1인 가구의 증가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다. 수도권 인구집중에 따른 자취, 주말 부부의 증가. 취업난과 저임금으로 인한 늦은 결혼 등의 사회현상이 응집된 결과물이다. 1인 가구의 한 측면에는 주거불안이 깊이 배어있다.
우리 사회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단순하다.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서 문화예술학과를 폐과 시키고, 도시 미관에 안 좋다는 이유로 노점상을 내쫓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 자체를 도려내는 방식으로 일관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피스텔의 복도에 따라 쭉 펼쳐지는 풍경은 신비롭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지만 교류하지 않는다. 공간을 벽으로 나눈다. 대화를 끊고 상호 간의 접점을 제거함으로 충돌을 없앤다. 갈등을 비용으로 해결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혼자 산다>의 본모습은 혼자 사는 삶이 아니다. 프로그램 내에 출연진을 부르는 호칭이 존재한다. 전현무는 ‘회장님’, 김용건은 ‘대부님’ 그리고 다른 출연진들은 ‘회원님으로 호명된다. 혼자 사는 이들이 이러한 호칭을 통해 끊임없이 꿈꾸는 것은 다름 아닌 ‘공동체’이다.
이들은 각자 다른 집에 혼자 살면서 끊임없이 교류한다. 혼자 사는데 필요한 생활정보를 알려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서로 이사를 도와주기도 하고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한다. 함께 모여 김장을 담그고 이를 나눠 먹는다. 집들이도 빼놓지 않는다. 공동체의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티격태격 다툰다. 서로만의 방식의 차이나 세대차에 따른 충돌이 일어난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해결해나가는 지점에서 혼자가 아닌 ‘우리’를 발견한다.
한동안 2030을 대표하는 공간은 오피스텔이었다. 서로 옆집에 살게 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아니면 아예 한 공간에 밀어 넣었다. 이야기 속 공간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최근 미디어에는 ‘셰어하우스’라는 주거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거 하숙집과는 좀 다른 방식이다. 여럿이 한 집에 모여 살며 침실과 같은 개인적 공간을 가지지만 거실, 욕실, 부엌 등을 공유하는 형태다. 반지하에, 고시원을 전전하고, 아르바이트로 집세를 충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감수하고 고르는 더 저렴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미디어 속 셰어하우스는 SBS의 <룸메이트>가 대표적이다. 관찰 예능의 포맷으로 한 집에 모여 사는 삶을 예능에서 다루었지만 많은 이들의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방영 당시만 해도 보편적 주거형태가 아니기도 했지만 더 큰 원인은 삶 자체의 모습을 닮지 못하였다는 데 있다. <룸메이트>는 출연진 각각에 일종의 ‘롤’을 부여했다. 신성우에게 부엌일을 전담시켰다. 정상가족의 엄마와 같은 역할이다. 자연스레 구성원 유사가족으로 각자의 역할을 했다. 주어진 역할은 주거공동체가 가져다주는 의미를 제거해버리고 말았다.
반면 JTBC의 <청춘시대> 속 셰어하우스는 현실적이다. 5명의 하우스메이트가 겪는 문제를 극 요소요소에 녹여냈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서로 충돌한다. 처음에는 전기 코드를 뽑는 것, 서로 다른 성격과 생활 패턴 모두 걸림돌이다. 샤워를 하는 중에 물이 활짝 열리기도 한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시간이 쌓이며, 서로를 이해한다. 그 안에서 같이 생활하는 방법을 찾는다. 벨 에포크라는 셰어하우스 속 룰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돕는다, 함께 주어진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는 혼자 사는 삶 속에서 또 다른 판타지를 꿈꾸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당연했지만 불편하기도 했던 함께하는 삶일지도 모른다, 혼자가 아닌 ‘우리’라고 부르는 수많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