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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군 Mar 31. 2017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Take #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법

 ‘좋은 아빠’에 대한 열망은 8 학군의 ‘전세대란’에서 ‘육아 예능 속의 프렌디’를 넘나들며 표출된다. 미디어는 이를 하나의 획일화된 가치로 재생산한다. 동시에 여집합으로써 ‘나쁜 아빠’라는 이항대립을 생산한다. 아이를 바라보지 않은 채, 부유하는 기준은 요란하지만 실체가 없다. 가볍게 흔들린다. 아버지라는 모습은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일차원적이지 않다. 친근함이 전부는 아니다. 훈육도 권위도 필요하다. 엄한 모습도 아버지의 중요한 부분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거나 친구같이 맞춰주는 아버지를 ‘좋은 아빠’라며 등호를 붙이는 행위 너무나도 얄팍하다.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부모, 일본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혈육과 양육의 문제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소재일 뿐이다. 정작 영화가 속삭이는 이야기는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고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통해 고민을 관객과 함께 나눈다.

 

  영화를 관통하는 시선은 크게 세 가지다. 료타와 케이타의 시선 그리고 사회가 개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혼재한다. 관객의 세 가지 시선을 넘나들며 감독이 던지는 고민을 함께하게 된다.

 


료타의 시선

 영화 속, 케이타는 료타의 욕망의 대상이다. 아버지인 료타는 케이타가 유능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명문 유치원에 들여보내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스스로를 대변하는 엘리트주의의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란다. 이런 욕망은 교육을 통해, 아이의 성공을 바라는 우리 사회의 시선과 일치한다. 관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료타의 시선을 공유한다. 타자화된 자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일본은 사회구조적으로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교육문제도 그렇다.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는 배제된 채 성공만을 논한다. 고민 없이 전달되는 교육을 통한 성공 이데올로기는 그래서 공허하기만 하다.


  료타의 시선을 공유하는 관객은 류세이의 아버지, 유다이를 편견으로 판단한다. 료타의 눈에 비친 것과 같이 관객의 눈에도 유다이는 무능하고, 세속적으로 비친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유다이에 대한 선입견이 벗겨질수록 관객은 혼란스러워진다. 스스로 꿈꾸고 이상적이라 말하던 아버지상을 초라한 유다이의 모습을 통해 마주한다. 이 혼란은 료타가 가지는 고민의 지점과 맞닿아 있다. 




세상의 시선 

 유치원 면접에서 료타 가족은 모두 검은 정장을 입고 정자세로 앉아있다.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는가에 맞춰 행동을 제약한다. 료타의 아내, 미도리가 남들이 들을 까 봐 료타의 말을 막는 장면과 케이타의 거짓말이 그렇다. 관객은 일렬로 앉은 그들 앞으로 면접관으로써 ‘호명’된다. 영화 내내, 료타가 아버지로서 어떤 인물인가를 평가하게 된다. 료타와 유다이를 끊임없이 자신도 모르게 비교하게 된다. 너무나 친근한 세상의 잣대를 저항 없이 내제화한다.


  관객의 시선은 끊임없이 료타의 가족을 평가한다. 료타의 슈트에서 고급 차량, 아파트 모두 료타의 사회 경제적 성공을 말없이 보여준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기준을 통해 료타를 바라본다.  규제하고 감시한다. 료타의 집은 넓은 창에 채광이 좋다. 통 유리로 된 창 너머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감시의 시선이 들어오는 통로이다. 


 료타는 류세이에게 '올바른' 젓가락질을 가르친다.  또한 류세이에게 '볼일은 앉아서 본다', '영어공부는 매일 한다', '게임 하루에 30분'과 같은 룰을 정해준다. 집안 내 규칙은 창 너머로부터 왔다. 공통의 약속인 동시에 제약이다. 영어점수와 같은 평가의 기준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이러한 판단을 내리는 기준은 곧 감시의 시선, 판옵티콘과 유사하다. 정해진 룰 외의 행동은 문제로 치부된다. 류세이는 온몸으로 이를 저항한다. 피아노를 내려친다. 료타의 집을 탈출함으로써 세상의 시선이 감옥과 같다는 것을 입증한다. 




케이타의 시선  

 카메라 속 사진에는 료타가 있었다, 료타의 발, 잠자는 모습, 케이타가 바라본 세상이다. 줄곧 아버지로서 바라보던 세상을 아들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지점이다. 료타, 케이타 그리고 관객의 시선이 일치되는 첫 장면이기도 하다.
 
 케이타가 바라본 료타는 당신이기도 당신의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스크린 위로 연이어 흘러가는 시간들은 마음속 시간을 멈춰 세웠다. 어떻게 비치는가에 대한 몸부림은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가치를 깨닫는 순간 부질없어진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아버지의 이상적 모습은 아이의 눈에 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영화 마지막, 부자는 나란히 놓인 길을 걷는다. 케이타는 높은 길을, 료타는 낮은 길을. 아버지의 시선은 처음으로 아들을 올려다본다. 두 길이 만나는 곳에서 케이타와 료타도 만난다. 료타는 무릎을 꿇어 케이타와 눈높이를 맞춘다. 둘의 시선이 같은 높이에서 마주한다. 케이타는 화를 풀고 료타에게 안긴다. 시선이 마주한 순간,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다. 가족으로써 서로를 바라본다. 료타는 비로소 아버지로서의 시간을 쌓는다. 마침내 둘만의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간다.




그리고

 우연히 서랍 속, 나를 찾았다. 사진 속 5살 꼬마,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나를 보는 시선이 카메라 너머의 존재란 것을 깨닫는 순간, 오랜 시간 멈춰있던 마음의 시간이 '삐그덕'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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