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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보고 Jan 17. 2024

샘~쌍꺼풀 잘 됐다!

D-44

그만둔다면서요? 


    2월까지 일하지만 퇴사는 2달 전에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맡은 일을 인계받을 후임자를 구해야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채용공고를 올린 지 일주일이 되어갑니다. 저의 퇴사는 저와 매니저 선생님 밖에 모르는 일인 줄 알았는데, 사무실이 독서실 같은 공간에 여러 과 선생님들이 같이 쓰다 보니 대화를 통해서 어떻게 눈치를 채셨는지 한 분이 쓱~오셔서 물어보시더라고요. 


" 샘~ 그만둬요? " 

    " 어떻게 아셨어요? "

"아니, 채용공고 났길래. 샘인지 몰랐는데, 아까 대화 들어보니까 그런 거 같아서~ 난 샘이 그만두는 줄은 몰랐네~"

    " 하하, 그렇게 됐어요. "

" 근데 왜~왜? "

    " 아... 오래 일하기도 했고, 아이 준비도 하고 그래야 해서요. 시댁에 내려갈 수도 있을 거 같아요 "

" 어우, 그래? 축하해 줘야겠지. 축하해요. "

    " 아, 네네. 축하해 주세요 ^^ " 


    제 업무 특성상 제 할 일만 하느라 다른 과 선생님들과의 교류가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거의 5년째 오다가다 계속 보게 되고, 가끔씩 짧은 대화들도 나누게 되면서 (아주 짧습니다. 제가 회사 내에서는 극내향형으로 지내고 있어서요) 내적 친밀감이 많이 쌓인 덕에 그렇게 물어보시는 게 오히려 고맙더라구요.

저 혼자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걸 좋아하는 데 그 선생님이 저렇게 관심을 안 보여줬으면 조금 섭섭할 뻔했습니다. 


샘, 쌍꺼풀 잘 됐다!


    같은 과는 아니지만 사무실 옆자리에 앉은 게 인연이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선생님이 있습니다. 사무실 이사를 하면서 자리가 떨어지고 나서는 지나가면서 눈인사 정도만 하던 사이였지요. 옆자리에 앉았을 때, 간식도 많이 챙겨주시고, 늘 먼저 밝게 인사해 주셨었지요. 저의 퇴사가 소문이 났는지 그 선생님께서도 쓱~오셔서 말씀하시더라고요. 


" 샘~ 그만둔다면서요? "

    " 아, 소문이 벌써 났어요? 하하. 네네. 그렇게 됐어요. "

" 아우, 오래 일했는데 아쉽다~ "

    " 그러게요. 샘이랑 옆자리에서 오래 일했는데 그렇죠. "

" 아, 샘 근데 눈이 왜 이렇게 이뻐? "

    " 네? 하하 "

" 아니, 샘 눈이 엄청 이쁘다. 쌍꺼풀 했어? "

    "? "

" 아니, 너무 잘됐다. "

    "? " 

" 아, 샘 원래 있었어? "

    " 하하핫. 네네 ^^ " 

" 아, 그랬어? 난 왜 지금 봤지. 눈이 엄청 이쁘네~ " 

    " 아하핫,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그런 건가. 여튼 감사해요. 하하 " 


    저는 비록 옆자리에 있었지만 대화할 때는 선생님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던 거 같은데 말이죠. 그렇게 흐지부지 대화가 끝난 뒤에 괜히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면서 쌍꺼풀이 너무 두껍나? 좀 피곤해서 부어서 그런가? 별 추측을 다해봤지만, 거울 속에 제 모습은 크게 다를 건 없었습니다. 


    아직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시다니 섭섭해야 할지, 떠나기 전이라도 제 예쁜 눈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야 할지, 사교적이지 못했던 제 모습을 반성해야 할지 다양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감정을 다 같이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섭섭한 마음은 아주 조~금입니다. 생각해 보니 식사 한 번 같이 안 하고, 간식을 그렇게 챙겨주셨는데 보답도 제대로 안 했었고, 제 할 일만 하고 가느라 바빠서 먼저 대화 걸고 살갑게 이야기도 안 나눴는데 이렇게 아쉽다고 먼저 말해주셔서 감사함이 큽니다. 


    지난 기억을 한 번 다시 쭉 떠올려봐도 참 좋은 인연이란 걸 느낍니다. 쌍꺼풀 하고, 안 하고 뭐가 중요합니까. 지금 눈이 이쁘다고 칭찬 해주시는 거니까요. '피식' 웃게 되는 귀여운 에피소드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시 오실 거죠?


    오늘은 뜻밖에 생일 선물을 받았습니다. 같은 과 동료이자 동갑인 선생님이 케이크 선물을 주셨지요. 받자마자 고마우면서도 '내가 선생님 생일을 챙겼었나?'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입사한 지 1년이 돼 가는 동료 선생님과는 따로 밥 한번 먹은 적 없고 주로 업무나 보스 관련이야기를 스치듯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뭔가 철저한 비즈니스적 선을 지킨달까? 좋은 선생님이지만 제가 선을 그었었습니다. 일에 질리고 정이 떨어진 지 오래였고, 퇴사를 결심하고 있는 와중에 들어온 동료 선생님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업무의 연장으로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빨리 일하고 집에 가기 바빴지요. 저와 그 선생님만이 같은 보스 밑에서 일하고 있어서 적응하려면 제가 많이 도와줬어야 했는데... 업무 외적으로 친밀하게 다가가지는 못했습니다. 


    나름 정 많은 저인지라 미안함이 축적이 돼서 넘쳐흐를 때쯤에 저의 죄책감 방지용으로 간식 하나, 쪽지 하나, 기프티콘 하나 이렇게 마음을 표현했지요. 참 지나고 생각해보니 무슨 온라인 친구도 아니고 오프라인으로 쌓을 수 있는 친근감이라는 게 있는데...지난날의 제가 부끄럽네요.


    사실, 이런 관계를 그 선생님이 좋아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런 관계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도 모를 만큼 얽혀있지 않는 거지요. 그런데, 이렇게 생일선물을 직접 사서 주다니... 그 선생님은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그 케이크인 저를 보고 ' 미안하지? 부끄럽지? '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샘, 오늘 생일이죠? 생일 축하해요~"

        "샘~ 고마워요~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고마워요~ 안 챙겨주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샘~ 생일 축하해요. 하루 즐겁게 잘 보내세요~"


    그 순간, 이 선생님은 내가 그만두는 걸 모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쳤고, 다른 과 선생님들이 먼저 알아버린 이상 나중에 알면 괜히 뭔가 섭섭할 듯싶어 급하게 말을 꺼냈습니다. 


        "샘~ 진짜 고마워요! 아, 샘... 저 그만두는 거 아세요???"

    " 네? 샘 그만두세요??? 왜요???"

        "아, 아이도 낳고 뭐 그래야 돼서 좀 쉬려고요~"

    "아, 그럼 쉬고 다시 오시는 거죠?"

        "네? 아니, 그게 오면 좋지만..."

    " 다시 오실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 그게 아마 서울이 아닌 곳에 갈 것 같아서요." 


    평상시 차분하게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선생님인데, '다시 오는 거죠?' 이 말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저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어쩌면 저한테 많이 의지하고 있었겠구나, 싶어서 더더욱 미안해졌습니다. 


    " 샘~ 그만두기 전에 식사 같이 해요! " 

        " 네네~ 샘~ 생일 축하해요~ "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고, 선생님이 건네준 케이크와 쪽지를 보고 있자니 제가 꿈과 이상에 젖어 옆을 전혀 못 보고 있었구나... 미안하고 고맙고 아쉬운 마음이 뒤섞여 먹먹해졌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


     제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지 않은 관계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맞네요. 단순히 '일'이라는 게 하기 싫었을 뿐 '사람'이 싫지는 않았던 건 이 직장이 처음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러니 불나방 같은 제가 5년을 버틴거겠죠. 세 가지 에피소드 안에서 느낀 건 '아쉬움'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돌아가도 저는 또 똑같이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직장의 인연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는 선물과 편지를 써볼까 합니다. '떠나는 마당에 뭐 그거까지 해?'라는 심술쟁이들의 방해를 이겨내고 이 인연들에게 '고운 안녕'을 고할까 합니다. 제 선물을 받고는 저처럼 당황해하는 인연도 있겠지요. 그 당황스러움이 저를 기억하게 해 준다면 그 또한 재밌고 뜻깊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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