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8
매주 토요일 아침, 8시면 남편과 같이 청소를 합니다. 매주 어김없이 이런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 아유~ "
" 아이고~ "
" 와~ 엄청나다... "
이 소리들을 원인은 바로 '털' 때문입니다. 머리카락 포함한 온몸의 털들이 후두두둑 여기저기 떨어져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일하고 운동하고 와서 자고를 반복하느라 잘 보지 않지만, 청소할 때면 정말 구석구석 여기저기 녀석들이 모여있는 걸 보게 되면 저절로 저런 곡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매주마다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신기하기도 감탄스럽기도 합니다.
보통 털의 양이 이상형의 기준도 이상형의 제외 기준도 아니긴 하지요. 만나고 보니 털이 유난히 많은 남편입니다. 저 또한 털에 있어서는 자부심? 이 있습니다. 장난으로 '이거 다 자기 털이다', '우리 집은 강아지는 못 키우겠다'라는 농담도 합니다. 그렇기에 수북이 쌓여있는 털들을 보면서 놀리기도 하고 이해할 수 있지요. 학창 시절에 털이 많이 나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공유하면서 '깔깔' 대면서 웃기도 할 만큼 우리를 연결하는 하나의 '주제'가 돼버린 '털'입니다.
너무 많은 털에 제모를 한 번씩 하더라도 아주 자기주장이 엄청난 녀석들이라 다시 또다시 또 무럭무럭 자라나는 털들을 보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공존하면서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20대 때는 잘 몰랐지만 털이 많은 게 좋은 점도 많더라고요. 머리카락과 눈썹은 특히나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부위인데 언제나 넘칠 만큼 납니다.
한 달에 한번 머리를 자르는 남편입니다. 머리숱도 많고 지성 두피를 가진 남편은 투블럭 컷을 계속 유지 중입니다. 원래 쓰던 캡 모자를 쓰는 데도 머리를 자른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면 꽉 끼어서 사이즈를 조절해야 할 정도이지요. 베트남 가면 큰 걱정은 없는데, 남편 머리를 한 달에 한번 이쁘게 잘 잘라줄 곳을 찾는 게 제일 걱정입니다. 검색하다가 베트남에 저렴한 길거리 이발소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공유했습니다. 이발+면도+귀청소까지 하는 데 단 돈 2천 원이라는 겁니다.
" 여보, 어때? 이발이 2천 원이래! "
" 어어? 진짜? 진짜 싸다~"
" 응응, 한번 봐봐."
한참을 내가 보내준 글을 보더니, 추가로 검색을 하기 시작한 남편. 그리고는...
" 자기야, 이건 아닌 거 같아."
" 크크크크크크킄 , 그래도 한 번은 해볼 만하지 않아? "
" 안 해. 거기도 한인 미용실 있겠지. 그러길 바라자. "
" 근데, 싸잖아~ 아저씨들도 인자해 보이시고 경력도 엄청나 보이는데~"
" 그럼 자기가 먼저 잘라봐."
" 아? 미안 "
이번에 아시안컵을 보면서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경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한 게 우리가 곧 갈 나라라고 응원하고 애정을 가지고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클로즈업하는 선수들의 얼굴을 보는데, 뭔가 다 저 스타일로 자르나... 싶어서 걱정이 또 되었습니다.
" 여보, 베트남 갔는데 다 저런 스타일로 잘라주면 어떡하지? "
" 아니야, 무슨 저 선수만, 아니 저기 몇 선수들만 그렇... 아닌 선수들도 있잖아~ 불길한 소리 하지 마~"
미용사 친구가 있는 데 진지하게 미용 기술을 배워볼까, 고민 중입니다. 남편 맞춤 스타일링을 배워서 그것만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요?
털을 주제로 글을 쓰면서 털털한 우리로 제목을 짓고 보니 '털털하다'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하더군요. 털털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
털털하다.
1. 사람의 성격이나 하는 짓 따위가 까다롭지 아니하고 소탈하다.
2. 품질 따위가 그리 좋지도 아니하고 나쁘지도 아니하다.
1번의 의미로 주로 쓰이지요. 남편과 저, 둘 다 '털털하다'라는 많이 듣습니다. 어딜 가도 적응을 잘하는 편이지요. 이런 성격이라 가족의 품을 떠나 서울로, 이제는 서울을 떠나 베트남으로, 더 나아가 베트남을 떠나 그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남편 머리 스타일도 사실 억지 걱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딜 가나 저희의 '털털'함을 뿜으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잘 지내다 올 거라는 걸 마음속 깊이 알고 있습니다.
이제 38일 남았습니다. 다음 주면 남편도 회사에 퇴사를 통보합니다. 빨리 말하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남편을 진정시키며 일상을 사는 중입니다. 이번주 토요일에도 '아이고', '와~', '이거 다 자기 거야'라면서 같이 청소를 하고 있겠지요. 어쩌겠어요~ 털털한 우리인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