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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Jul 18. 2023

당근과 채찍의 고수

어쩌다 정신병원 (16)


의사들에 대한 편견과 불신이 있다.


할아버지가 의료사고 돌아가셨을 때는 운이 안 좋았다 싶었지만, 몇 년 전 의사의 말도 안 되는 실수로 발생한 의료사고로 엄마가 돌아가실 뻔했을 때 불신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 대학생 때 동네 정형외과 의사 아저씨가 내 사타구니와 다리를 과하게 주물거리며 성추행 한 것은 포함도 안 했다.


편견은 사소한 말에서 생겨났다.


코로나 확진 당시, 불안한 마음에 질문을 몇 개 적어갔다. 당시 귀찮은 태도로 대하던 의사는, 나중에 약을 대리수령하러 간 엄마에게, 내가 질문이 많으니 그럴 거면 공부 좀 열심히 해서 의대를 오지 그랬냐고 했다.


너무 짧은 진료시간이 너무하다 싶어서 진료 전, 내 앞에 있던 다섯 명의 평균 진료 시간을 재어봤더니 인당 50초였다. 보통 회사원이 저렇게 성의 없이 일처리를 해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병원 입원 전, 담당 교수는 내 말을 듣더니 정말 치료하러 온 것이 맞냐며 되물었다.


그냥 나는 확 죽어버릴 테니 너네는 신경 꺼, 저렇게 들린다며 이럴 거면 그냥 나가라고 했다.


사무적으로 나를 대한 의사들이 생각났다.


“죽기 싫어서 왔나 보죠,“ 나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마지막으로, 입원동안 우리가 “부딪칠 일”이 있냐고 물었다.


나를 ‘위로’해주던 다른 정신과 의사와 달리 딱딱한 그의 태도가 거슬려서 삐딱하게 말했다. “우리는 결이 좀 다른 것 같아요.”


그의 표정이 굳었다.


“의사 선생님은 너-무 긍정적이세요.

저랑 좀 다르네요. “


빈정거리며 나왔다.


같이 간 동생은 왜 의사에게 시비를 거냐며 뭐라 했다.


오래된 편견과 불신의 결과일 수도 있다.


굳이 더하자면, 입원 전, 나는 세상과 싸우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배려하기는커녕 모든 것에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으니, 교수의 건조한 질문들이 거슬렸던 것 같다.




첫 단추가 중요한 법이다.


입원 첫날, 아침에 교수가 문진을 돌며 방문했다.


대화 중 그는 내가 너무 ‘부정적’이라고 했다.


부모님께 지겹게 듣던 소리다.


“교수님, 제가 버튼 눌리는 단어 몇 개가 있어요. 부정적, 노력, 계획이에요.”


교수는 ‘우아한’ 치료를 넘어서 실질적인 문제, 즉 삶의 방식, 성격, 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원래 진정한 조언은 쓴 법이다.




교수는 여러 방법으로 기선제압을 하며 동시에 신뢰를 쌓아갔다.


그는 당근과 채찍의 고수였다.  


술과 커피를 금지했고, 어길 시 폐쇄병동을 보내거나 퇴원을 시킨다고 했다.


구시렁대며 알았다고 했을 때, 지금 잘하고 있는 점을 슬며시 끼어넣으며 발전하면 좋겠다는 부분도 같이 말했다. 내가 특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는 시간이 지난 후 서서히 언급하며 자극하지 않았다.


커피를 며칠 참았더니 디카페인 커피를 허락해 주셨다.

술을 한 달 가까이 참았더니 제로 맥주를 허락해 주셨다.




교수는 어떤 돌발적 행동이나 말을 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적이었다.


상담 중, 매일 과도로 내 팔을 찌르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 자해 충동은 게임 기계에서 고슴도치가 갑자기 올라오듯 예측할 수 없었다.


교수는 덤덤히 말했다.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그런 생각을 해요.”


그것은 파멸적인 행동이다, 사는 게 이기는 것이다 등, 주말 때 상담했던 초짜 당직 의사가 했던 말보다 더 마음이 편해지는 말이었다.


이제 그런 생각이 올라오면 아, 나는 우울증을 겪는 중이라서 그렇구나 하고 자기 비하와 자괴감 없이 그냥 흘려보낸다.



어느 날, 복도에서 새로운 환자가 링거를 끼고 몇 시간 동안 왔다 갔다 했다. 문제는, 바퀴 달린 링거대가 계속 몇 초마다 같은 소리를 내었고, 특히 소리에 민감한 내게는 고문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베개에 얼굴을 박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집에서도 가끔 감정이 덮칠 때 해소하는 방법이다.


간호사가 달려왔다.


소리가 거기까지 들릴 줄은 몰랐다, 정말.


이야기를 듣고 바로 환자의 링거대를 바꿔주셨다.

더 이상 소리가 안 났다.


그다음 날, 교수에게 그 얘기를 슬쩍 꺼내며 물었다.


“여기 제가 소리 지를 만한 빈 방이 있나요? 너무 답답해요.”


교수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얘기 들었어요.”


동네 정신과 의사들 같으면 “왜 그런 기분이 들으셨어요~? 순간 어떤 기분이셨어요~?” 같은 따뜻하고 ‘우아한’ 질문이 이어졌을 텐데 교수는 그냥 고개만 까닥했다.


빈 방이 있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교수는 없다고 했고, 고함은 안된다고 했다.


”왜요? 방에서 지르면 남에게 피해도 안 주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문명사회에서 살아서 그렇지 원래 인간들은 사냥할 때 등등 소리를 자유롭게 지르고 살았어요. “


뒤에 서있던 레지던트쌤이 당황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소리 지르는 것은 성숙한 해결방법이 아니에요. “


“교수님, 저는 성숙해지기가 싫어요.”


“그런 것 같아요.”


왠지 이해받은 기분이었다. 예상치도 못하게…


교수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일어났다. 감정이 과부하가 되면 간호사한테 진정제를 요청하라고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to be continued


매주 가서 정이 든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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