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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Oct 15. 2023

마냥 핀란드 날씨는 좋을 것 같았다

핀란드 여행기 - 1

수능을 끝낸 한국 고등학생들처럼 미국 고3들도 대학 진학이 결정되고 나면 슬슬 엉덩이가 들썩인다.


‘Senioritis‘라고 불리는 이 전염병은 고3들이 학교에서 졸업만 기다리며 겪는 지루함과 무력함 등을 표현하는 말이다.


약 십몇 년 전, 대학을 합격하자마자 senioritis가 노크를 했다. 하지만 차 없이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오클라호마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호스트 가족 마당에 있는 아주 작은 수영장에서 어푸어푸 개헤엄을 치거나 하루종일 컴퓨터로 기사를 읽는 일이었다.


미국 오클라호마의 여름은 매우 길고 해는 지나칠정도로 따갑다.


해가 너무 세서 차 가죽에 피부가 닿으면 따가울 정도다. 너무 드라이하기도 하다.


한마디로 사람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미국 정부도 일찍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


1830-1850년 사이에 미국 정부는 미국 원주민 (Native Americans) 육만 명 정도를 강제로 오클라호마로 이주시켰다. “The Trail of Tears (눈물의 길)“로 불리는 이 긴 여정동안 수많은 원주민들이 죽었고 목적지인 오클라호마 도착 후 척박한 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다.


‘눈물의 길’ 경로. 출처는 National Trail of Tears Association


오클라호마에 여름은 일찍 찾아온다.


졸업을 앞둔 오월, 이미 잔디는 햇빛을 잔뜩 받아 매끈하고 비료 없이도 푸르름 했으며, 선글라스 없이는 밖을 나가기 어려웠다.


한국의 선선한 가을이 그리워서 연평균 21도인 나라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챗 지피티 ChatGPT 시절 한참 전이니, 위키피디아와 UN 공식 웹사이트를 보며 백몇개 나라의 연평균 온도를 확인했다.


한참의 수작업을 거쳐 연평균 21도인 세 곳을 찾았다.


첫 번째는 세인트 피에르 어쩌고 섬인데 (Saint Pierre and Miquelon), 평생 갈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그다음 나라는 핀란드였다.


그렇게 핀란드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었다.




올해 여름은 태음인인 내게 유난히 고통스러웠다.


맛이 간 에어컨 덕분에 선풍기를 머리맡에 두고 젖은 빨래처럼 침대에 축 쳐져있던 어느 여름밤, 연평균 21도의 나라인 핀란드가 갑자기 생각났다.


핀란드는 오랫동안 내게 미지의 세계였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궁금해할 만한 복지국가이고 산타의 고향이다. 몇 년 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북유럽 이민 열풍도 호기심을 지폈다.


헬싱키 날씨를 확인해 봤다.


21도, 구름 낀 날.


그날 밤, 통장 잔고를 박박 긁어모아 헬싱키 티켓을 샀다.


이틀 뒤, 핀란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름이 21도인 나라에서. 헬싱키 공용 사우나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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