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개월 금주 프로젝트 - 2
금주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솔직히, 한 달 동안 딱 한번 음주를 했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인지, 딱 소주 세 잔을 마셨지만 그다음 날 숙취가 너무 심했다.
의사 쌤의 예상대로 첫 이주가 고비였다.
길거리를 걸어갈 때마다, 호프 앞에 붙어있는 삿포로 맥주 별은 너무 밝았고,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자동으로 위스키가 생각났다.
밤에 잠이 안 오면, 말똥말똥한 눈으로 천장을 보며 위스키 한잔만 마시면 수면이 가능할 텐데 생각하며 내면의 술꾼과 지루한 줄 다리기를 하다 잠이 들곤 했다.
술을 줄이는 대신 금주라는 극단적인(?) 처방으로 아예 선택지를 없애버리니, 그 자리를 다른 것들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금주 전, 매일 저녁 나는 고민을 했다.
예상대로 매번 위스키를 택했다.
몇 년 전에는 하루에 7km씩 달렸지만, 지금은 1km도 힘들 것 같았다.
“저질 체력 달리기”을 검색해 봤다.
‘소파에서 (누워있던 사람이) 10킬로 (달리기)’ 계획표를 찾았다.
12주 과정인데 나름 할 만해 보였다.
계획표를 프린트해서 냉장고에 붙였다.
생각보다 내 몸은 쓰레기였다.
갑상선 문제와 우울증이 겹치며 이 년간 18킬로가 찐 덕분에, 첫날 1분 뛰고 1.5분은 걷는 아주 가벼운 인터벌 러닝인데도 무릎에 느낌(?)이 왔다. 처음 느껴보는 무릎 통증에 당황했다.
게으르면서 항상 완벽을 바라는 나는 꾸준한 운동에 자주 실패하고는 했다.
모든지 100%를 쏟아부어야 한다는 강박에 내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30-40분 동안 달린 다음, 그다음 날 (어쩌면 당연히도)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좌절하며 포기하는 사이클을 반복해 왔다.
항상 모든 일에 나의 최대치를 쓰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사회에서 아등바등하면서 길러진 습관 같다.
매일 러닝을 마치면 ‘좀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정도 주어진 시간보다 더 뛰어봤는데 다음날에 컨디션이 오히려 더 나빠졌다.
지난 3-4년 동안 드러누워있었던 만큼 욕심을 접어두고 계획표를 그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차근차근 러닝을 한지 이제 사주 째이다.
새벽 2시에 퇴근한 하루를 제외하고는 계획표 대로 달리고 또 달렸다.
처음 1분 달리기도 힘들었던 내가 이제 2-3분 정도는 경쾌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찾아온 변화가 어색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한참 홍콩에서 매일 달리기를 했던 시절 (벌써 4년 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것은 달리는 이야기에 관한 책이지 건강법에 관한 책은 아니다. 나는 여기서 ‘자, 모두 함께 매일 달리기를 해서 건강해집시다’와 같은 주장을 떠벌리고 싶은 건 아니다.”
달리기나 건강에 관한 ‘훈계’가 없어서 일단 합격.
소설 쓰기를 ‘육체노동’이라고 생각한 하루키는 지구력과 끈기를 기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예전에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살 때,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달리고 또 달렸다. 발목에 힘이 풀려서 거의 주저앉을 때까지 달렸다.
고통을 다른 고통으로 덮었다. 셀프 혹사를 통해 얻는 쾌감에 안도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난 이렇게 까지 나를 몰아붙일 수 있는 사람이야!”
이번에는 정말 현실적인 이유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회사 일에 영상 촬영과 기사 쓰기의 비중이 한 7:3 정도 된다. 문제는, 촬영 장비 (카메라, 삼각대, 사다리, 배터리, 맥 프로)의 무게가 총 25-28킬로 나간다는
점이다.
두세 명이 짐을 나눠 들고 같이 움직이는 국내 방송국과 다르게 혼자서 일을 해야 하고, 덕분에 항상 목, 어깨, 허리 통증에 시달려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더 ‘쉽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덜’ 고통스럽게 일할 방법을 생각해 보니, 선택지는 체력을 기르는 방법이 유일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서른세 살. 그것이 그 당시 나의 나이였다. 아직은 충분히 젊다. 그렇지만 이제 ‘청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조락凋落은 그 나이 언저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인생의 하나의 분기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나이에 나는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늦깎이이긴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던 것이다. “ (본문 중)
유치하지만 나보다 삼 년 늦게 달리기를 시작한 하루키를 보며 위안을 얻었다.
하루키는 가는 곳마다 꼭 운동화를 챙겨가서 러닝을 한다. 그는 거의 삼십 년에 걸쳐 마라톤 풀코스를 +25번 완주했다고 한다.
책에는 하루키가 도시마다 달리면서 관찰한 풍경과 사람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떠오른 영감과 생각들이 드라이하게 적혀있다.
하루키의 여정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도도히 흐르는’ 보스턴 강에서, 변하지 않는 찰스 강을 보며 뛰는 막연한 상상을 하게 된다.
내년 3월에 열리는 서울 마라톤에 등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뭐 도전하고 성장하고 싶다 그런 아름다운 계기는 아니었고, 기안84의 풀마라톤 도전기 (‘나 혼자 산다’ 참고)를 보고 즉흥적으로 등록했다.
서울 마라톤의 좋은 점이 있다.
자리가 한정되어 있는 만큼, 마라톤 전 취소를 하려면 의사 진단서가 필요하다…
포기와 변덕이 일상인 내게 꼭 필요한 단호함과 강제성이다.
잘못 읽은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조절능력, 꾸준함, 체력을 기르겠다는 목적이다.
잘 갈려진 밭에 영양제를 뿌리는 것이 ‘갓‘생이라면, 잡초와 해충으로 엉망이 된 밭을 불에 태우고, 새로 갈 준비를 하는 것이 ‘갱’ 생이다.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농부들이 밭을 불에 태우면 ’ 새로운(?)‘ 흙이 올라와서 비옥해진다고 믿는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