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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록 May 04. 2020

001에서 013까지, 사물로 타이포그래피를 하는 방법

2019 타이포잔치 6회 국제 타이포잔치 비엔날레

타이포잔치 «타이포그래피와 사물»은 숫자의 사용이 눈에 띈다. 포스터 하단의 전시 제목 중 ‘만화경과, 다면체와, 시계와, 모서리와, 잡동사니와 식물들’ 에는 각각 (1)부터 (6)까지 번호가 쓰여 있고, 상단에는 이를 상징하는 이미지 여섯 개와 해당 단어의 번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전시장에서도 작품에 대한 설명을 번호가 대신했다.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 도슨트 웹사이트에 접속한 후, 작품 번호를 입력하면 설명을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리플렛에도 전시 제목과 기획 의도와 함께 작품의 번호가 나열되어 있다. 나는 총 195팀의 디자이너가 참여한 대규모 전시의 사물들을 감상하는 방법으로 작품에 매겨진 번호를 순서대로 따르기로 했다. 리플렛에 적힌 숫자 위에는 큐레이터의 이름과 섹션 명이 쓰여 있어서, 번호에 따라 큐레이터의 의도를 읽으며 전시를 관람하게 됐다. 박찬신, 김어진, 용세라, 이윤호와 김강인, 노은유와 함민주 총 다섯 팀은 큐레이터로 참여하여 각각 ‹만화경›과 ‹다면체›와 ‹시계›와 ‹모서리›와 ‹잡동사니›와 ‹식물들›이라는 사물을 소주제로 전시장을 꾸몄고, 나는 이 중 박찬신 큐레이터가 기획한 ‹만화경› 섹션을 중점으로 살피려고 한다.


«타이포그래피와 사물: 만화경과, 다면체와, 시계와, 모서리와, 잡동사니와, 식물들 포스터»





















전시장에서 사용된 번호 패널
전시장에서 사용된 번호 패널
전시장에서 사용된 번호 패널






‹만화경›에 (1)이 붙은 이유

‘사물과 타이포그래피’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연상되었던 것은 사물에 글자가 쓰여 있는 형태였다. 표지판, 자, 과자봉지, 휴대폰 화면 등 거의 모든 사물에 글자는 함께한다. 일과 물건,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사물’이라는 단어는 그 광의성 때문에 이 전시의 모든 작품에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이 사물이 바깥이 아닌 전시장에 있어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총감독은 기획 의도에서 ‘분해와 조립’을 타이포그래피와 사물의 유사한 원리로 설명하며, 이를 기준으로 타이포그래피와 사물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내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대한 것은 타이포그래피와 사물이 만나는 다양한 방식이었으며, ‘사물’이라는 광범위한 뜻의 단어에 속하는 개체들을 어떤 기준으로 분석하고 규정하여 각각의 섹션을 이루었을지 궁금했다.
        나의 기대에 가장 충족한 섹션은 ‹만화경›이다. 먼저, 섹션에 속한 작품의 다양성이 두드러졌다. 열 세팀의 작가가 운용하는 타이포그래피 방법과 특징이 뚜렷해서 각각의 작품을 감상하며 사물과의 관계성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많았다. ‹시계› 섹션의 경우 ‘시계’라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디자이너가 그래픽 작업을 하고, 각각의 그래픽은 시계의 한 요소가 되어 시계를 닮은 움직임을 갖고, 소리를 내며 마치 시계가 되어 움직였다. 하지만 작가마다의 특징을 알아보기 힘든 점이 아쉬웠다. ‹식물들› 섹션은 ‘순환’이라는 속성으로 식물과 베리어블 폰트를 꿰어냈지만, 하나의 구조물에서 영상을 보는 전시 방식이 약간 단조롭게 느껴졌다. 두 번째로, 작품에 사물이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만화경› 섹션의 작가들은 저마다의 타이포그래피 방식을 갖고 있고, 작가의 타이포그래피 방법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여러 가지 사물을 사용했다. 전시할 사물을 정해두고 글자가 표면에 부착되거나 구체적인 글자 형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와 사물이 더 밀접하게 느껴졌다. 타이포그래피와 관련된 물건들을 보여주는 잡동사니›의 경우, 몇몇 작품은 글자가 쓰인 사물이라는 것 외에 기준이 모호하여 일반 사물과 전시된 사물의 구별점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만화경›은 하나의 섹션으로서 완성도가 높았다. ‹만화경› 섹션은 거의 모든 작품이 같은 형식의 구조물 위에 놓여있어 통일성이 느껴졌다. 또, 작품이 과거 ‘양식당 그릴’로 사용된 넓은 공간에 서로 적당한 공간을 두고 배치되어 관람환경이 쾌적했다. 모두 다른 결을 가진 작품을 정성스럽게 보조하는 구조물에 설치된 작품을 보며, 바닥에 깔린 빨간 카펫을 천천히 걸었다. ‹다면체› 섹션은 1층과 2층에 나누어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데, 한 작품이 한 공간을 모두 차지한 작품도 있었고 아홉 개의 작품이 2층의 한 공간에 배치된 것도 있었다. 그곳에서 어떤 포스터는 낱장으로 바닥에 놓여있고, 어떤 포스터들은 나무 패널에 앞뒤로 윗부분만 붙은 채로 있었고, 또 다른 포스터는 문 뒤에 세워져 있었다. 심지어 거치대 자체가 스스로 서 있을 수 없어 테이프로 바닥에 고정한 경우도 있었다. 하나의 섹션임에도 제각기 놓인 작품들을 보며 이 섹션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문화역284를 찾은 관람객은 대개 접근이 편한 1층의 전시실부터 감상한다. 하지만 2층에 있는 섹션에 (1)번을 부여한 것을 고려한다면, ‹만화경› 섹션이 기획자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예술감독인 진달래&박우혁이 밝힌 타이포잔치와 ‹만화경>의 기획 의도는 가장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다.



만화경처럼 다채로운 타이포그래피의 방법들

만화경은 내부의 작은 색 조각들이 어떻게 분해되고 조합되는지에 따라 다양한 색과 형태를 보여주는 매력적인 사물이다. 이 사물을 섹션명으로 삼은 ‹만화경›에서 타이포그래피의 ‘분해와 조립’을 명확히 보여주는 작업은 황지훈의 ‹접점›이다. 낱개의 목재가 흰색 조인트로 연결되고, 구체적인 형태가 되는 것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접점›의 유닛들은 다양한 형태로 책상도 되고, 포스터 거치대로도 만들어져 (1)만화경 섹션에서 다른 작품을 보조하며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황지훈의 ‹접점›에 사용된 흰색 조인트
















1. 분해하기
그래픽디자인에서 분해와 조합을 자유롭게 하게 하는 것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레이어이다. 마티아스 슈바이처의 ‹포스터들›은 6개의 포스터 작업으로 그 속에서 각각의 레이어에 자리 잡은 디자인 요소들은 구겨지고 깨어지고 튕겨 나가서 분리되기고 펜툴로 이미지의 한 장면을 오려내기도 한다. 자동차 위에 햄 조각을 올리거나 석양이 지는 풍경에 낮의 해변을 붙이고, 분홍색 글자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 거미줄, 물방울과 같은 자잘한 요소들이 포스터 화면 안에서 한 데 엉켜 있다. 어느 것 하나 수평 수직에 맞추지 않은 포스터의 요소들은 직사각형 종이 위에서 흩어지고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여러 요소가 작용하는 행위이다. 작샬로테 렝거스도르프의 ‹Gestural Alphabet› 영상은 흑백 화면으로 만들어졌는데,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무언가 쓰는 모습을 담고 있다. 색깔이나 형태처럼 의미를 유추하게 하는 요소가 제거된 상황에서 바라본 ‘쓴다’는 행위는 서걱이는 소리를 들리게 하고, 움직이는 동작을 관찰하게 한다. 글자를 쓰는 것이 목적인 사물로 글자를 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행위인데, ‘쓴다’는 행위를 관찰하자 그려진 형태와 동작, 소리가 나뉘어 인지되었다.
        이미지를 축소하는 것이 흩어진 색과 형태를 한데 모으는 작업이라면, 이미지를 확대하는 것은 그것을 분해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미지를 확대함으로써 미처 몰랐던 물성이 발견된다. 최예주의 ‹실제 사이즈›는 작가 자신이 디자인 한 책의 일부분을 접사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아 다른 시각으로 물성을 경험하는 작업이다. 이미지를 확대할수록 화면 중앙에 있던 이미지는 화면 밖으로 점점 이미지는 밀려 나가고, 맨눈으로 볼 수 없었던 프린트의 아름다운 망점과 종이의 거친 결을 발견하게 된다.

작샬로테 렝거스도르프의 ‹Gestural Alphabet›

















2. 조합하기
그래픽디자인에서 각각의 요소가 있는 낱개의 레이어를 합침으로서 작품은 완성된다. 컬러 라이브러리의 ‹컬러 라이브러리>와 문상현의 ‹LETTERS MATTERS›는 완전히 포갠 레이어가 ‘무엇’을 보여주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컬러 라이브러리는›는 이미지를 하나의 색상 표현한 포스터와 여러 개의 색으로 구현된 이미지를 포스터로 프린트해서 걸어 두었는데, 다양한 색을 겹칠수록 이미지는 실재에 더 가깝고 선명해진다. ‹LETTERS MATTERS›는 투명한 아크릴 패널 위에 각기 다른 ‘통신 장애’ 이미지를 프린트하고, 레이어들을 알파벳이 쓰인 원본 위에 쌓는다. 레이어의 수가 많아질수록 가장 아래에 놓인 본래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어진다. 각각의 레이어가 어떤 이미지를 담고 있는지에 따라 최종적으로 합쳐진 형태는 대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나란히 배치한 레이어를 일부분만 포개어 볼 수도 있다. 손아용의 ‹중립›은 포개진 부분을 상상하게 하는 작업이다. 전시장 바닥에 이미지가 그려진 108개의 패널이 놓여있어 ‹만화경› 섹션에 입장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각각의 패널에는 풍선, 신발, 촛불 등의 사물이 그려져 있다. 사물들은 가로로 긴 종이 양 끝에 각각 다른 상태로 그려져 있고 가운데의 빈 공간, 즉 중립이 되는 곳에 관람객이 상황을 상상하여 채워 넣는 작업이다. 왼쪽과 오른쪽의 사물을 보고 두 사물을 원인과 결과라는 관계로 이해할 것인지, 그저 나열된 사물들로 해석할 것인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가운데에 그려지는 사물은 다른 모습을 하게 된다.
        하나의 레이어에 시간을 두고 움직임이 겹쳐질 수도 있다. 투오마스 코르타이넨의 ‹지나간 시간 속 장인으로부터(Inspired by artisans of times gone by)›는 작가가 그린 낙서가 새겨진 아크릴 위에 관람객이 얇은 종이를 대고 흑연으로 탁본을 뜨는 작업이다. 마치 흑연이 올려진 손 마네킹은 먼저 낙서를 했던 작가의 손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 손은 지금 전시장에서 관람객에게 협업을 제안한다. 흑연을 건네받은 관람객은 낙서 위를 따라 움직임으로서 시간을 두고  관람객이 작가의 움직임을 재현하게 된다.

투오마스 코르타이넨의 ‹지나간 시간 속 장인으로부터(Inspired by artisans of times gone by)›




















나는 첫 번째 섹션인 ‹만화경›에서 사물로 하는 타이포그래피, ‘분해와 조립’을 단서로 천천히 숫자를 셌다. 001에서 013까지의 작품에서 분해하고 조립한다는 개념은 사물로 실체화 되어 확대되고, 겹쳐지고, 다른 요소를 발생시켰다. 첫번째 섹션인 ‹만화경›을 관람한 후 다음 섹션으로 자리를 옮기며 번호는 뒤섞이기도 하고 하나로 묶여 혼란스러웠다. 올해 타이포잔치는 어쩌면 모바일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것 외에 부가적인 설명이 전시장에 없어서 전반적으로 작품을 감상하기가 쉽고 경쾌했으며, 또 예쁘고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아 폭넓은 연령층이 즐겁게 관람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전시된 개체들은 사물이기도 하지만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에 있는 작품이고 그저 사물에 글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로 하는 타이포그래피도 보여주고자 한다. 그렇기에 작품이 번호와 함께 덩그러니 있는 것은 정보를 다룬 방법에서 아쉽다. 001, 002.. 숫자를 세며 오늘날의 타이포그래피가 많은 것을 재료로 삼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외에 어떻게 타이포그래피의 방식을 사물로 보여줄 수 있는지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2019. 12.

사록
@sa.rok.sa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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