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랑, 주황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아했던 색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파랑이었다. 유년기를 거쳐 최근까지도 파랑을 가장 좋아했다. 도도하면서도 넓은 아량이 느껴지고, 차가운 듯하지만 마냥 무심하지 않았다. 옷을 고를 때는 어두운 파랑을, 디자인할 때도 선명한 파랑을 곧잘 선택하곤 했는데 점차 다른 색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활환경이 바뀐 데서 오는 새로움과 즐거움 때문에 노랑, 주황 같은 경쾌한 색을 좋아하게 됐으리라 짐작한다. 문득 노랑, 주황이 좋아졌듯이 파랑도 ‘좋으니까 좋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 느낌이 왜 생겨났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랑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랑의 역사> 저자인 미셸 파스투로는 프랑스의 중세 역사 교수이자 상징학 전문가로 색의 역사에 대한 책을 다수 펴냈다. <파랑의 역사>의 원서는 2000년에 발간된 <Bleu : Histoire d' une couleur(파랑: 색의 역사)>로 파랑을 시작으로 이후 검정, 빨강, 초록을 다루었다. 노랑, 주황보다 파랑, 검정, 빨강, 초록은 명징하게 역사가 있는 색상인 것이다. 파란색은 많은 설문조사에서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다. 영국의 연구리서치 회사 YouGov가 2015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가별로 선호하는 색상의 종류 모두 다르지만 가장 표를 많이 받은 색은 파랑이다. 물론, 책 표지에 쓰인 대로 파란색이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로마인들이 19세기 몇몇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청색을 ‘분별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청색에 대해 좋게는 무관심했으며 좀 심하게는 혐오했다고 볼 수 있다.
파랑은 미움받던 색이었다. 로마인에게 파란색은 켈트족이나 게르만족처럼 미개한 자들이 상대에게 겁을 주기 위해 몸에 칠하는 색이었다. 그들은 짙은 청색이 주는 깊이에서 지옥과 죽음을 연상했고, 파란색 눈을 가진 사람은 배척했다. 그런 취급을 받던 파란색은 1200년대가 되어 대청 재배 기술의 발달로 새 국면을 맞이한다. 옷감 염색 기술이 발전하여 선명한 파랑을 만들 수 있게 되자 성직자와 귀족을 중심으로 의복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탁하지 않은, 맑은 파란색은 성모마리아의 옷에도 칠해졌다. 청색은 왕의 위엄을 상징하고, 문학에서 기쁨과 사랑을 표현했다. 청년들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베르테르의 청색 연미복을 따라 했다. 서민들은 우울함, 향수병을 뜻하는 ‘블루 데빌(blue devil), 블루스’를 들으며 애환을 달랬다. 노동자는 하늘색 와이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비지땀을 흘렸다.
색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현상이다.
파랑은 자연스러운 색이 아니다. 자연에서 파랑은 하늘과 바다에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손에 쥐고 사용할만한 파란색 염료를 얻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상용화되는 데에 다른 색보다 늦은 출발이었다. 파랑은 기존에 있던 검정에 비해, 흰색에 비해, 빨강에 비해가며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사랑받기도 하고 배척당하기도 했다. 파랑은 결국, 이러한 색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그 역할을 꾸준히 달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파랑은 국제기구의 깃발과 대기업의 로고 등에 사용되며 안정감, 유별나지 않음, 이성적임, 평화로움을 뜻했다.
최근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팔레트를 갖게 되었다. 검정과 흰색, 파란색이 거의 전부였던 옷장에는 빨간색과 은색도 채워졌다. 디자인한 포스터에는 노란색과 주황색, 심지어 싫어했던 분홍색도 과감하게 사용했다. 색을 잘 운용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여러 색을 써봐야겠다는 다짐과 쓸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여러 가지 색을 다루는 데서 오는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을 한껏 만끽하는 것 또한 디자인하는 것의 즐거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파랑을 말하지 않을 것 같다.
2019. 12.
사록
@sa.rok.sar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