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자만.
광고업은 좋아해야 할 수 있다.
아이디어 희생의 묘한 기운을 즐겨야 한다.
그런데 이 자질은 거의 타고난다.
특히 제작 직군에서는
훈련으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뇌구조 자체가 다르다.
국문과라고 해서 카피가 되는 것도 아니고,
공대라고 해서 또 카피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타고나야 한다.
매일 책을 씹어 먹고, 독서 모임에 다녀도
스스로 뇌구조를 깨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퇴사 절차를 밟는다.
수습 기간이 지나면 내 십자가가
무거워지고, 팀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특이한 단어조합, 기나긴 서사,
단발성 짜 맞추기로는 이 리그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자기소개서만 보고, 가능성을 읽었던
나의 섣부른 판단.
광고로 지구를 구할 마음가짐으로
다음엔 메이저 대행사에 가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는 그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회’뿐.
광고대행사에서 다만 몇 년이라도
버티기 위해서는 그의 내면에서
“나 여기 있다!”는
불꽃같은 외침이 들려와야 한다.
안타깝다.
누가 그에게 “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는가.
자질이 없는 것을.
부디 노력으로, 꿋꿋함으로
이 지독한 편견을 깰 수 있음을
증명해 다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