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부단함과 은근한 부담감의 멋진 콜라보레이션
일간 이슬아처럼 보낼 사람도 없고
월간 윤종신처럼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만서도
5월 1일이라는 날짜에 마침표이자 시작점을 찍어놓고
매일 어떻든지 한 편씩은 쓰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시작한 1일 1글은 수신인과의 약속도, 팬들과의 약속도 아닌
그냥 초라한 나 자신과의 어설픈 약속 정도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5월 1일은 주일이었다. 빨간색의 1일.
왠지 뭔가 잘 시작해야만 할 것 같은 은근한 부담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늘 그렇듯 부담은 갖고 행동은 하지 않는 우유부단함도 같이 따라왔다.
합쳐서 우유부담감 정도로 부르면 적당하려나.
9와 숫자들 노래 중에 슬픔은 자기가 좋다면서 매일 찾아오고
기쁨과 평정심은 뭐가 그리 바쁜지 잠깐 자기한테 왔다가
흔적도 없이 가버렸다는 가사가 있는데, 내 마음이 그 마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퇴사한 회사 사무실에 들러
주중에 미처 챙기지 못한, 남은 짐 한 덩어리를 챙겨왔다.
일요일인데도 사무실에는 출근해서 편집하는 피디님이 한 명 있었고,
출입증을 반납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지갑 속에 도로 넣었다.
악용할 일이 그다지 없을 것 같아서.
"안녕히 계세요."
개미만한 목소리로 인사한다고 했는데,
편집 중에는 으레 그렇듯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끼는 덕분에
돌아오는 인사는 없었다. 애써 쓸쓸하지도 않았다.
이미 팀원들과 인사를 나눴고, 퇴사 만찬으로 걸쭉한 콩국수도 먹은 것을.
뭐, 괜찮았다.
그런데 남은 짐을 챙기면서 작은 난관에 부딪혔다.
이 회사에서 보낸 여덟 번의 겨울마다 꺼내 신었던 털 실내화 때문이었다.
이성적으로 버리고 가는 게 맞았지만
쓰레기통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끝내 버리지를 못하고
털끝에 덕지덕지 붙은 감성이와 함께 집으로 데려오는 우를 범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감성인가 갬성인가 하는 녀석 덕분에 짐 하나 추가.
하여간, 그런 5월 1일이었다.
꽃 핀 따뜻한 봄에 낡디 낡은 누런 털실내화를 챙겨 회사를 나서는,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