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의 관계
4월의 마지막 토요일. 애매한 결혼식이 있어 판교에 가야 했다.
문득, 근처에 사는 친구가 생각나 청첩장을 받은 날 냅다 연락을 했고, 같은 날 약속을 잡았다.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적극적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가급적이면 코로나 핑계로 만남을 미루게 되는 사람도 늘어간다.
친구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식은 얼굴만 비추고 올 요량이었고, 그럼에도 판교에 굳이 굳이 가는 이유는
친구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주객 전도의 토요일이었다.
집에서 빨간 버스(경기도 광역버스), 빨간색 지하철(신분당선) 갈아타고
무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판교에서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친구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키가 컸고 (만날 때마다 키가 커지는 것 같다.)
한 손에는 캡 모자를, 한 손에는 선글라스를 들고 있었다.
"그거 알아? 인상 찌푸리면 우울해진다더라."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하고 있던 나에게 그는 내가 미처 묻지 않은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는데,
그의 말인 즉슨,
"구름이 많아서 오늘처럼 해가 구름 뒤에 숨어있는 날씨 있잖아.
그래서 흐린 것처럼 보일 때도 해는 엄청나게 빛나고 있다고.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밖에 돌아다니면, 어때. 지금 너처럼 인상을 찌푸리게 되잖아.
햇빛 때문에. 그런데 얼굴을 찌푸리면 우리 몸에서 우울의 물질 같은 걸 내보낸대.
나, 우울증이었던 것 같더라. (그는 이 대목에서 3인칭 화법을 썼다.) 그래서 더 우울해지면 좀 곤란해."
그게, 그가, 선글라스를 챙겨 나온 이유였다.
쌀국수와 브런치를 고민하다가 결국 들어간 브런치 가게에서
우리는 어떤 가까운 죽음에 대해, 형제에 대해,형제의 탐심에 대해,
돈에 대해, 용서에 대해 (그는 "용서는, 용서받을 사람이 용서를 구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법이지" 라는
명언을 남겼고, 나는 그 말에 진심으로 동의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기와 생크림이 올라간 토스트를 나눠 먹었고, 연어가 올라간 샐러드를 곁들였고, 커피도 한 잔 나눠 마셨다.
그러는 동안 하늘에는 해를 가렸던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맨살을 드러냈다.
간만에 쨍하게 나온 햇살이 좋아서, 테라스 카페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능숙하게 오토바이를 몰아 세상 힙해보이는 테라스 카페로 순간이동을 시켜준 것도 그였다.
낚시 의자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좀 더 요즘 느낌으로 말하자면
편안해보이는 캠핑 의자가 두 개 펼쳐져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우유가 들어간 커피 한 잔, 아메리카노 한 잔, 피스타치오 쿠키 하나 작은 테이블에 올려놓고
느긋하게 햇살을 쬐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는 자신이 참여했던 독서 모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우울증에 대한 책이었는데,
읽다 보니, '아 내가 우울증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우리는 같은 슬픔을, (아니 세상에 '같은' 슬픔은 없을 것이다.)
정정하자면, 우리는 같은 '상실'을 겪었고
서로를 알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더 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느꼈을 상실과 어쩔 도리 없는 감정의 홍수를 나는 말 없이도 들을 수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이렇게 빨리 일어나야만 했던 걸까."
"왜 낫게 해달라는 기도를 그분은 들어주지 않으신 걸까."
그와 서울숲을 걸으며 해질녘 나눴던 첫 대화는 대략 이런 질문들의 연속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의 상실은 부모님과의 이른 작별이었고
그 후
성수에서도, 서촌에서도, 한남동에서도 대화는 이어졌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는 의문부호가 찍혀 있고,
대화를 한다고 해서 우리 마음에 뚫린 상실을 메워줄 뾰족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겪어본 마음은 겪어보지 않은 마음보다 훨씬 힘이 있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은 위안이 된다.
정확한 단어로 설명하거나 전달하지 못해도
이해받고 공감받고 있다는 기분.
그게 우리가 조금은 수고스럽지만 기꺼이 만나 오래 대화를 나누는 이유가 아닐까.
나도 다음에는 선글라스를 챙겨야 겠다.
그의 우울은, 선글라스가 오롯이 막아내주기를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