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는 엄마의 말에 나는 항상 '국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요리를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부인의 화를 돋우는 남편들의 말 중의 하나인
"간단하게 국수나 먹지 뭐"를 엄마에게 말한 철딱서니 없는 딸이었다.
새벽 기차를 탈때면, 뿌연 안개 속에서부터 기차가 달려온다
나는 어렸을 적 기억이 잘 없는데, 초등학생 시절 부산에서 이사와 전학을 오면서 기차를 탔던 날은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헤어져 억지로 눈물을 짜내면서 기차에 올라타서 대전역에 내려서 역간에서 먹었던 국수가 참 맛있었다. 그래서 난 기차여행을 참 좋아했다. 기차역에서 퍼지던 국수 냄새가 참 좋았다. 집에 내려갈 때마다 나는 기차역에서 국수를 사 먹었다.
결혼 후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제야 국수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메뉴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도 한여름에 특히 엄마의 국수를 찾고는 했는데, 푹푹 찌는 여름 날씨에 불 앞에서 육수를 끓였던 엄마를 생각하면 나는 참 철없는 딸이다.
그런데도 어쩐지 몇 개월 만에 오랜만에 방문한 친정집에서 엄마가 무엇을 해줄까 라는 말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예측한 메뉴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국수 먹을래? 김밥 싸줄까?"
국수가 손이 많이 간다는 걸 알았는데, 김밥은 더 손이 많이 가는 메뉴가 아니던가.
"아무거나. 엄마 하기 편한 걸로 해"
나는 이 아무거나의 대답을 내가 싫어하면서도 내가 대답을 한 후 후회를 했다. 다음날 교회를 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던 엄마는 김밥과 국수를 모조리 차려놓고 교회를 아침 일찍 갔다.
엄마는 내가 고3 때부터 새벽기도를 가기 시작해서 내가 결혼을 한 이후로도 계속 새벽기도를 간다. 새벽 기도를 가기 위해 엄마는 9시 10시만 되어도 잠자리에 든다.
서울에서부터 지방까지 금요일 퇴근 후 출발해 집에 도착할 시간이 되면, 엄마는 잠을 잘 시간이다. 진짜 가서 잠만 자고 아침을 먹고 점심때 올라오는 일정이면, 직접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은 몇 시간 되지 않았다. 결혼 초반 나는 그게 참 억울했다. 시댁보다 친정집에 훨씬 오랫동안 머문다고 생각하는 남편에게 서운함을 느꼈었다.
코로나로 한참을 방문하지 않았던 친정집을 갈까 말까 고민하던 중, 월요일이 공휴일인 주말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친정집에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는 왔다 갔다 힘들다고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공무원을 그만둔 나에게 "실망했다"라고 말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여름휴가를 간 자리에서였다.
당황한 남편은 나를 변론하기 시작했고, 나는 예상한 반응이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실망감과 아빠의 아쉬움이 나에게 전달되었지만 나에게 닿지는 않았다.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내가 행복한 것이 곧 효도라고 생각했다.
이후 엄마 아빠에게 설날에 코로나 여파로 내려가지 않고 영통으로 인사를 전할 때 "애기를 갖기로 했다"라는 말을 했을 때 기뻐하던 엄마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말은 안 했지만 엄청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 말을 한지 일 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임신을 하지 못했지만 엄마는 나에게 "실망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나 스스로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낮에 서울에서 출발해 저녁이 되어서야 친정에 도착했다. 저녁으로 고기를 먹고, 잠을 자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다. 고기를 사러 간다는 엄마를 말려서, 근처 고깃집에서 저녁을 시켜먹었다. 다음날 엄마가 해준 국수를 점심으로 먹고, 친구의 집에 들러 수다를 떨다가 또다시 저녁이 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가 싸준 김밥을 꺼내었다. 엄마가 김밥이 마를까 봐 썰어주지 않고 통으로 보내주었다. 라면을 끓이기도 전에 김밥을 먼저 썰었다.
엄마의 국수가 한창 먹고 싶어서 국수 양념장만 만들어서 달라고 한 적도 있다. 그렇게 국수를 삶아서 먹는데 어쩐지 엄마가 해준 맛이 안 났다. 맛있다는 국숫집을 가도 그런 맛은 안 났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는 양념장을 통째로 들고 왔다.
이제는, 몇 시간 엄마를 보지 못했다고 섭섭해하지 않는다. 대신에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으면서, 엄마가 보내준 마음을 느낀다.
초반에는 이것저것 온갖 것들을 싸주는 엄마에게 주지 말라고 다 먹지 못한다고 마다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먼저 달라고 한다. 괜히 김밥을 싸느라, 국수를 하느라 새벽부터 일어나서 고생했을 엄마에게 이제는 "하지 말라"는 얘기 대신에 "맛있다"라고 말한다.
"이것도 가져갈래?"
라고 엄마가 물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는 대답한다.
"응. 줘 "
엄마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갑자기 매년 김장을 하기 시작한 이유를 나는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