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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May 28. 2022

시집살이 총량의 법칙에 대하여

시어머니만이 시집살이를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집살이도 당해본 사람이 시킨다


'시집살이'라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떨 때가 있었다. 결혼을 앞둔 시점의 나는 더욱 그러했다. TV에 나오는 사랑과 전쟁 프로그램의 시집살이는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남의 집 일이었기에 흥미로웠고 네이트 판에 올라오는 이야기 또한 다른 사람의 진짜 일지 가짜일지 모르는 이야기에 가십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서 남편이 될 사람에게 들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고되었다. 나는 시집살이도 시켜본 사람이 시킨다는 말을 전해 듣고 무서움에 떨었다.


하지만, 앞서 밝히자면 우리 시어머니는 난사람이었다. 나에게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았다. 본인이 겪었던 마음고생을 내가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르게 살아온 환경들이나 다른 집안 분위기로 인한 생각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신혼초 시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서 홈쇼핑에 나오는 흰 커튼을 사라고 했는데, 내가 남편에게 물어보겠다고 하자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서 남편과 모던하우스에서 시커먼 회색 암막 커튼을 샀다. 나는 그런 며느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당할 정도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만이 있었기에 나는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는 시어머니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시집살이 총량의 법칙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시집살이 총량의 법칙' 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나에게는 시집살이의 대상이 시어머니가 아닌 직장 상사였다.

내가 다녔던 직장의 상사들은 나에게 색다른 '시집살이'를 시켜주었다.


전 회사에서 대표에게 인정을 받았지만, 대표 사모님이 함께 팀장으로 일을 하고 있었기에 눈치를 보았었고, 그마저도 이직 후에는 시어머니보다 살짝 나이가 젊은 여자들의 시집살이가 있었다. 다행히 이직 후에는 남자 상사가 있었고, 나는 시집살이가 끝난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시집살이가 끝난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남자도 시집살이를 시킬 수 있었다.

갱년기가 온듯한 남성의 짜증 받이가 되었다. 혼자 하는 말이지만 들으라고 내뱉는 혼잣말과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을 받아내고 있자면, 우리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안 시켜서 내가 회사에서 시집살이를 당하는구나 싶었다.


 시집살이
1 결혼한 여자가 시집에 들어가서 살림살이를 하는 일.
2 남의 밑에서 엄격한 감독과 간섭을 받으며 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상사 시어머니는 때로는 행동 하나에도 지적을 하였다.


"누가 볼지 모르니 회식이라고 말하지 마라"

"몇 분까지 자리에 앉아있어라"

"누가 휴직한다니 가서 인사드려라"


자잘한 회사생활 방침이 상사에게서 내려져왔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시집살이에서 토를 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때로는 돌려치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전파하기도 하였는데, 그 대상은 막내가 되었다.


"내가 ~는 어때?라고 하면 하자는 이야기인데, 네~라고 하는 법이 없어"


나는 막내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받고, 막내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라고 말한 것임을 알았다. 시집살이는 "네~ 알겠습니다"로 끝나야 하는데, 멍청하게도 나는 진짜 의견을 물어보는 줄 알고 나의 생각을 말했던 것이다. 아직도 이렇게 사회생활이 서툴러서야.


그러나 여기에 함정은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로 가다가는 "성의가 없다"라며 화를 내시니 잘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중을 파악해내는 것이 업무의 또 다른 측면이 되었다.


회식은 점심이 좋다는 막내의 말이 충격적이라는 상사의 말에 그리고 시험관을 하느라 술을 먹지 못하는 나에게 "술 안 먹지?"라고 하는 말에서 회식은 저녁으로 술을 먹고 싶다는 이야기로 알아들어야 했다.


우리는 점심시간 모여서 회식에서 누가 '술'을 마실 것인가. 논의를 하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좀 보냈으면 하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회사에 몸 바쳐 일하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사는 주말에 시간 외 수당이 없어도 나오고 싶어 했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과 볼링도 치고, 술도 마시고 싶어 했다.


일이 많으면 일이 많아서 하기 싫어서 짜증 나고.

일이 없으면 일이 없어서 우울하다고 침울해했다.


답정너의 상사와 일하는 것은 쉬운 듯 쉽지 않았다.

시집살이의 공통점 중심에는 "내 마음을 맞춰봐"가 있다. 공격적인 말로 나를 멸시하거나 가당치도 않은 김치 싸대기를 날리지는 않지만.


내 마음을 맞춰봐


오묘하고 교묘하게 숨겨진 본심을 찾아내기란, 탐정이 아닌 이상 힘든 일이다. '답정너'인 동시에 '내 마음을 맞춰봐'가 되는 셈이다.


나의 시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 하신다.

나의 회사 시어머니(상사)는 우리와 함께 한강 건너기, 63 빌딩 계단 오르기, 마라톤 등을 하고 싶어 하신다.


나와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은 건 좋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내 생의 삶의 버거워서 그냥 남편이랑만 놀고 싶다. 하지만 시어머니들은 우리와 함께 추억을 만들기를 바란다.


시어머니는 시댁에 더 자주 방문하기를 은근히 바라신다.

회사 시어머니는 회사에 더 오래 무상으로 일하기를 은근히 바라신다.


하지만, "싫어요"라고 대뜸 거절을 말했다가는, 돌아올 화살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라 그냥 "좋아요"라고 말한 후 코로나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는 중이다.


인생에서 고통과 행복은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시집살이 총량의 법칙도 존재하는 것 같다. 다만 대상은 꼭 '시어머니'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도 회사의 시어머니께서 우울하시다면서 생전 쓰라고 아무리 말해도 쓰지 않던 연차를 쓰고 집으로 갔다.


본부장님이 회식을 하라며 카드를 줬다고 했는데, 회식을 못해서 회사 시어머니가 삐진 줄 알고 직원들끼리 오늘 회식을 진행해보자며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런데, 눈치 없이 회식을 진행하다가 결국 모든 제안에 퇴짜를 놓는 시어머니의 바람대로 회식을 미루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연차를 쓰고 퇴근하셨다.


신이 나게 달려 나가는 회사 시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한다.


 "아, 오늘 아침 출근 때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온 것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싫은 건 아닌데, 편하지도 않은 시집살이 총량의 법칙은 언제쯤 깨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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