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La May 26. 2022

남편에게 부부싸움이 필요할 때

안 싸우면 다행이지가 않아. 

남편들에게 부부싸움이 필요한 때는 2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그리고 두 번째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 


남편들은 부인의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많은 부분에서 그러하다. 남자들만의 여행이 가고 싶다거나. 어쩐지 사고 싶은 것이 있는데 부인이 반대를 할 것 같을 경우에. 즉 일명 '사고'를 치고 싶을 때 사고를 칠 만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우리 집 남편의 경우에는 허락이나 용서가 필요한 경우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경우보다 스트레스가 쌓여서 풀 곳이 필요할 때 '부부싸움' 전쟁을 발발한다.


우리 집 남편의 경우에는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쌓일 때 '부부싸움'을 걸고는 하는데 평소와 달라진 퉁명스러움과 말투는 나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나는 그것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이다. 나의 이러한 성격을 남편도 잘 알고 있지만, 남편의 레이더가 스트레스로 가려져 있을 때는 그냥 오로지 초점이 자기 자신이 되기 때문에 거르지 않고 말이 나온다. 

안 싸우면 다행일까?


하필 우리가 같이 보고 있던 TV 프로그램은 <안 싸우면 다행이야>였다. 무인도 섬에 들어간 장윤정과 도경완의 에피소드 편이었다. 무인도에서 잡아 올린 낙지와 생선, 갖가지 해산물까지 정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싱싱해 보였다. 


"나도 꽃게탕 먹고 싶어!! 나 왜 꽃게 안 해줘?" 


소파 앞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남편을 뒤흔들며 내가 말했다. 나의 이 말은 다이어트 중이라 저녁으로 시리얼을 먹고 있던 남편의 스위치를 눌렀다. 


"시켜먹어. 누가 못 시켜먹게 했어?" 


우리의 부부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안 싸우면 다행이라던 그 프로그램에서 장윤정과 도경완 부부는 싸우지도 않고 오히려 갖가지 자연산 해산물에 술까지 마시며 화기애애하고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우리는 싸움이 난 것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하잘것없는 것에서 시작되는 부부싸움이란, 생각보다 길어졌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무마하고 싶은 남편의 웃음 포인트가 몇 있었으나 싸움을 하다가 점점 열이 받는 나는 그것을 애써 모른척했다. 


"내가 꽃게가 먹고 싶다고 얼마나 얘기했는데!" 


"사 먹어. 시켜먹어. 누가 못 시켜먹게 했어?" 


"꽃게탕이 얼마인 줄 알아? 5-6만 원인데 어떻게 시켜먹어! 마트에서 해물탕 키트 사면 2-3만 원이면 끝나는데, 거기에 배달비 붙어봐! 그걸 어떻게 시켜먹어! 그리고 내가 그전부터 계속 꽃게 먹고 싶다고 했잖아. 근데 못 사게 했잖아"


"그럼 내 잘못이네. 내가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못 먹게 했네" 


"또 그런 식으로 말하지. 남편이 집에서 운동한다고 낑낑대는 거 들으라고 하는 것 같아서 듣기 싫어도 참는데 먹고 싶은 거 먹고 싶다고 해서 내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해?!"


"그래서 내가 못 먹게 했냐고. 내가 뭘 못하게 했는데." 


하지 말아야 할, 싸움의 주제와 동떨어진 얘기까지 하고 나서야, 나는 아차 싶었지만. 아뿔싸.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까지 입 밖으로 나오는 걸 보니 내가 지금 마음에 여유가 없구나. 나는 강압적인 휴전을 선고한다. 


"나가!!!" 


결국에는 나는 남편에게 '나가기'를 선포했다. 방에서 나가라는 것인데 호기롭게 남편은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남편이 집을 나가고 침대에 엎어져 누워서 터져 나오는 서러운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꽃게가 먹고 싶다고 했다고 화를 내다니. 서러워 눈물을 흘리는 동시에


 "꽃게 철인 봄, 다 지났다!"


라고 하던 남편의 말이 생각나 다시 씩씩거리면서 침대에 앉았다. 


남편은 10분 후에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남편이 들어오고도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는 것을 직감한 나는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억지웃음이라도 웃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았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왜 싸우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날 나는 오전에 난임 병원을 다녀왔다. 3번째 채취 후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생각보다 수정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과까지 다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정 결과는 내 예상보다는 좋지 않았는데, 병원비가 90만 원이 넘게 나왔다. 


내가 우겨서 시작한 '시험관 시술'이었지만, 하루에 지출금액이 100만 원이 가까이 되자 나는 현타가 왔다. 카드값 누적이 500만 원이 넘었다. 내 월급을 넘긴 카드값의 카드 문자는 내 가슴을 깊게 짓눌렀다. 결국 나는 내가 시작하자고 우긴 일에 대한 결과로 꽃게를 시켜먹지도 못하고 분풀이를 남편에게 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전쟁을 시작한 내가 먼저 남편을 달래주기로 했다. 


소파에 앉아있는 남편을 가만히 안아주고 달래주었다. 그제야 남편은 미안하다면서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했던 프로젝트가 잘 가고 있었는데, 그래서 칭찬도 듣고 상무 보고까지 올라갔는데, 갑자기 다 뒤집어엎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새로운 빌드업이 필요한데, 상사가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잘 설명해 주지 않았다. 남편은 계속 확인을 해야 했고, 스트레스는 자꾸 쌓여만 갔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남편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남편을 알게 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수백 번의 싸움의 끝에서야, 남편의 패턴을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은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에 와서 말투가 방어적이고 딱딱하게 변한다.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그제야, 우리가 부부싸움을 하는 패턴을 알게 되었다. 너무 단순한 법칙인데도 그 시그널을 나는 그제야 눈치를 챈 것이다. 


나랑 이혼하고 싶어? 

이혼한 남녀가 다시 만나는 프로그램들이 성행이다.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사람들은 이혼한 사람들이 만나서 할 것이 무엇이 있냐며 되묻는다. 심지어 남편은 내게 "나랑 이혼하고 싶어? 왜 그런 이혼한 사람들 프로그램을 보는 거야?"라고 묻는다. 이혼한 부부가 다시 만나서 꽁냥 거리는 일도. 꽁냥 거리다가 헤어진 이유가 된 똑같은 이유로 싸움을 하는 것도 지켜보는 일도. 언제나처럼 되돌이표다. 부부의 일상은 되돌이 표가 많다. 그럼에도 내가 이혼한 남녀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는 이유는 그들이 서로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헤어져도 이혼을 해도 이해해 나가야 할 것들이 많은 세상이다. 



하물며 같이 사는 부부는 어쩌겠는가. 

남편은 참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거리를 두는 듯. 점심을 고를 때는 예민하지 않은 순둥 한 사람인 것처럼 굴지만, 일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게 있으면 밤에 잠을 잘 때도 끙끙거리면서 꿈속에서도 일을 하는 냥 생각을 한다. 


그렇게 몇 개월을 열심히 일한 프로젝트가 날아갔고.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는 상사가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계속 이게 맞는 거냐며 확인해야 한다. 세상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안쓰러워서 화해를 하기로 하고 치킨을 시킨다. 

정말 오랜만의 야식이다. 

꽃게 대신 치킨으로 우리의 화해의 밤은 마무리하고 내일의 출근을 위해 잠들어야 한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화려하지 않다. 소소할 뿐. 왜냐하면 우리는 낮을 살아야 하는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