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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Jan 13. 2022

1. 소위, 중위, 대위... 아니 소희!

[수요일 10시, 아하하하 소희씨]

2021년 6월 30일

첫 번째 수요일


<1> 소위, 중위, 대위... 아니 소희!

어릴 적 매 학년 초 학교에 가정환경조사서를 적어 낼 때마다 은근히 뿌듯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엄마의 이름이 ‘소희’라는 것.


1953년 3월 27일. 그러니까 한국전쟁이 휴전하기도 전, 전쟁으로 온 나라가 피폐의 이름을 짊어지고 힘겨운 역사를 끌어가던 때에 충청남도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의 한 처마 밑에서 2남 4녀 중 오빠 하나를 둔 장녀, 밀양 박가 충정공파 37대손으로 태어난 딸의 이름이 ‘소희’인 것이다. 미자, 영자, 순자, 복자, 청자, 끝순이, 말순이가 아니라 소희! 우연히 같은 반 친구 이름 중에 ‘소희’가 있을 때면 엄마의 이름에 대한 자부심은 더해졌고, 원더걸스가 등장해 큰 인기를 끌 때 멤버 중 가장 어린 가수의 이름이 소희라서, '어~머~, 나!' 부분이 더 좋았다. 우리 엄마는, 올드하지 않다구! 후훗.


어휴, 나 학교 다닐 때 애들이 막 소위, 중위, 대위, 그러면서 골렸어. 그래서 내가 아버지한테, 아우, 아버지, 왜 내 이름을 소희라고 졌느냐고 막 따졌거든. 그랬더니 나 낳을 때 쯤에 무슨 책을 보셨데. 그 책 주인공이 소희였는데 굉장히 괜찮은 여자였데. 아하하하. 그 주인공이 아버지 마음에 드셨나봐, 여러 면에서 좋은 여자였다는 거지.


막내 이모부도 “처형은 이름을 소희라고 지었는데 니는 왜 영순이고?” 그러잖니. 하하하하. 생일도 태어난 날에 딱 맞게 호적에 올렸지, 양력으로. 그 때는 좀 늦게 올리거나 음력으로 하고 그랬거든. 우리집처럼 자식들 태어날 날에 딱 맞게 올리는 경우가 좀 드물어.


울 엄마가 애를 힘들게 낳았대. 산파가, 자궁이 좁은 대신 깊다고 그러더래. 막내가 형수 삼촌이잖아. 글쎄 진통하고 하루를 넘겨서 낳았어. 형수 태어날 때 생각 나. 내 생일 며칠 지났을 땐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동네에서 다 관심이었어. 그 전날부터 진통을 해도 애가 안 나오니. 그리고 딸 넷을 낳았는데 또 딸 낳으려나, 다들 걱정했었지. 그런데 진통하고 이틀 째에 애가 나오는데 애도 밖으로 나오려고 하도 용을 써서인가, 머리통이 하나가 더 있더라고. 그런데 그 머리통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들어가. 참 신기해, 하하하하.


서부에서 태어나서 나 돌 안 돼서 남문동으로 이사 오고 그리고 서문동, 그러니까 서문 밖으로 다시 이사 가서 쭉 살았어. 다 걸어서 갈 만한 거리였거든, 어린애들 걸음으로 한 20분?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인가 이사 가는 날 엄마가 나한테, 너는 애 엎고 오라고, 막내 동생을 기저귀로 꼭 업혀주더라고. 돌도 안 돼서 걷지도 못했으니까, 나랑 10살 차이잖니. 맨날 업고 다녔지 뭐. 똥 기저귀 냇물가서 다 빨고. 사람들이 나한테 어쩌면 애가 저렇게 빨래를 깨끗이 하느냐고 그랬어. 아하하하하. 근데 그땐 나만 빨래를 한 게 아니야, 내 또래 다 빨래 했지. 그거 다 하고, 야, 우리 놀다 가자, 그러면 공원에서 지장풀 뜯어서 인형도 만들고, 그렇게 한 두 시간 놀다 집에 가는 거지. 우리 엄마도 놀다 오려니 하고.


우리 엄마, 아버지는 아들이라 더 해주고 딸이라서 덜 해주고, 그런 거 하나도 없었어.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딸들한테 지지배? 그런 이야기 한 번도 안 하셨어. 어디서 무슨 음식이 오잖아? 우리는 엄마 올 때까지 그걸 안 먹고 기다려. 그러면 엄마가 와서 애들 여섯한테 똑같이 나눠서 줬어. 딸이라 차별받고 큰 게 하나도 없지.

<박가네 가계도>




지장풀 : 원명은 ‘그령’. 농촌 밭 주변의 길가나 빈터, 제방 등지에서 아주 흔하게 발견되는 여러해 살이 풀. 한자어로 풀이 시 '잡아채기 좋다', '동여매기 좋다'는 뜻을 담고 있다.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결초보은’에서 그 풀이 이 풀이며, 서양에서도 연인 간의 인연을 이어주는 추억의 풀로 여겨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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