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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Mar 24. 2022

6. 끗발 날리네!

[수요일 10시, 아하하하 소희 씨]

이제 갓 마흔을 넘긴 나이지만 어쩌다 앨범을 들출때면,

가령 1년에 한 번쯤 맘 먹고 집안 대청소를 한다거나, 무엇이 날아가거나 끼어 들어갔거나 굴러 박혀서 그걸 꺼내려고 주변의 것에 눈길을 줘야 할 때나,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엄마, 아빠의 사진을 가져와달라고 할 때 같이 특별한 경우에 먼지 얹은 앨범을 들춰 볼 때면,

'아, 이때 참 예뻤네'(자아도취), '이때 참 잘 입고 다녔네'(나에게 투자하던 시절), '이때 놀러도 많이 다녔네'(코로나 시국에 묶인 발들에게 인사를)와 같은 아련하고도 쌉쌀한 기분이 훅- 온 몸을 감쌀 때가 있다. 모든 생각과 관심이 오로지 '나'에게로 향했을 때, 나를 향한 생각을 '나의 미래'로 쏘아 올렸을 그때의 나는 얼마나 싱그러웠는지.


자식이 부모의 젊은 시절을 우연히 마주할 때는, 놀라움이다.


꽉 끼는 청바지나 짧은 미니스커트을 입고, 장발이나 굵은 웨이브의 검고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던, 탄탄하고 날씬한 몸매의 엄마와 아빠의 모습은 내가 결코 (대부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상상할 일이 없었기에 놀랍고 신선하다. 자식이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는 엄마였고, 아빠는 아빠였기 때문일까. 그리고나서 '이럴 때가 있으셨구나' 싶다가 '많이 늙으셨네' 하고는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


결혼 이후엔 새로 만든 가족과, 새로 생긴 또다른 가족 안에서 나를 생각하느라 '1인칭 단수'로의 '나'의 모습에 여러모로 소홀해질 때가 있는데 요즘에는 부쩍 멋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멋있는 가치를 추구하며 행동하는 엄마, 멋있게 스스로를 보듬는 엄마. 몇십 년이 지난 후 아이가 지금의 내 사진을 보고서 "와, 엄마 이때 참 예뻤네."라고 할 수 있는 엄마의 모습이, 그 모습과 멀어졌다는 생각 때문인지 더욱 간절해진다. 내 엄마 소희 씨도 내 입에서 "우와, 엄마 이때 참 생그러웠네!"라는 말이 나오게 하지 않았는가! 특히 결혼 직전까지,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던 끗발 날리던 20대 초반의 소희 씨는, 멋졌다.


처음에 경찰서 출근할 땐 아버지한테는 비밀로 했지. 그런데 엄마가 얘기 하셨을 거야. 내가 엄마 스타일이야, 무슨 일 있으면 중간에서 아빠 설득하고 그랬잖아. 우리 엄마도 아버지한테 쟤가 다니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하자, 그렇게 하셨던 것 같아. 엄마도 내가 집에만 있는 게 갑갑하기도 했을테고.


아버지도 "네가 정 그러면 다녀라. 그런데 동료 선생 딸이 경찰한테 시집을 갔다더라. 난 너 순사한테 시집 못 보낸다." 그러시더라고. 그때는 경찰이 그렇게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었어. 일제 시대 영향이지. 아버지가 순사, 세무사, 기자한테 내 딸 시집 못 보낸다고 하셨어, 다 도둑놈들이라고. 그래서 내가 "아이고 아버지, 걱정 마세요, 나도 절대 경찰 안 만나요. 만나면 내 손에 장을 지져요." 하고 그 이후부터는 마음 놓고 출근했지.


할아버지는 내가 일하러 나가는 걸 좋아하셨어. 옷 해 입으라고 그때 월급에 두세 배 되는 돈을 주셨거든. 그 돈으로 옷을 줄줄이 해 입었지. 한 대여섯 벌? 그땐 옷도 양장점에서 맞춰 입어야 해서 비쌌어. 기성복이 없었거든. 집에서 입는 건 흐질한 거 사 입고 외출할 때 입는 건 전부 맞춰 입었지. 홈드레스도 맞춰 입고. 여튼 그렇게 옷을 한꺼번에 맞춰 입고 다니니까 경찰서 사람들이 박양은 부자인가보라고, 어떻게 저렇게 옷을 잘 입느냐고, 그러더라고.


20대 초반의 소희 씨

엄마는 순발력도 좋고, 결단을 내리면 망설임 없이 전진한다. 손이 야무져서 일처리에 빈틈도 없다. 목소리도 화통하니, 보고 듣는 사람도 헛갈림이 없다. 목에서 머물다 나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아빠를 닮은 내 목소리와는 달리, 두성과 흉성을 고루 관통하여 발화되는 울림이 큰 엄마의 목소리는 성당 성가대에서도 환영 받았고, 같이 놀자며 집 밖에서 날 부르던 친구들의 외침에 나 대신 답해줄 때에도 큰 역할을 했다.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고 수의 수를 생각하며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아빠와는 여러모로 다른 캐릭터인데, 그래서 아빠는 종종 "저렇게 늘 덜렁거린다."며 행동이 빠른 배우자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늬 엄마니까 하지, 남들은 못했다."며 엄마의 공을 잊지도 않았다. 명랑하고 쾌활하며 머리 회전이 빠르고 손도 야무진 소희 씨는, 순식간에 자타가 공인하는 '일 잘하는 박양'의 자리에 등극했다.


내 일이 수사과 통계원, 범죄 통계를 내는 거야. 범죄 건수, 범죄 성향, 범죄 시기, 범죄 액수 등등, 통계낼 게 엄청 많아.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을 검거하고, 그 통계를 내서 매일 도에 보고 하고. 요즘 말하면 빅데이터 같은 거지. 그땐 다 손으로 했거든, 수십 가지 항목을.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굉장히 중요한 거야.


사건이 발생하면 무슨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개요, 내용을 정리해서 요즘 카톡같이 그때 당시 '경비전화'로 전해줘. 그럼 경찰들이 그걸 보고 검거를 하는 거지. 어디로 경비전화 연결해달라고 하면 내가 연결도 해 주고. 일반 전화와 달라. 전통문이라고 하는데 내가 전통문을 다 해서 보냈지. 직원들이, 박양은 전화로 똑같은 내용을 읽어도 전통문을 너무 잘 알아듣게, 이해하기 쉽게 말해준다는 거야. 그것만 했나, 내가 타자를 잘 치니까 타자도 치고. 그때 경찰서에 있던 사람이나 수시로 경찰서 들락거리던 지소 직원들이 다 날 알았던 건, 수사과에 여자 직원이 나 하나인 것도 있었고, 서부약국집 누구라는 것도 있었지.


일이 마음에 들었다기 보다는, 그때는 그 일 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했지. 요즘 같이 직업도 많고 직장도 바꿀 데가 있었다면 바꿨겠지만 그런 게 있었나. 처음에 출근할 때 들어가니까 음침하니 경찰서 느낌이 딱 들더라고. 그런데 다니다보니 내가 성격도 밝고 사람도 사귀니까 재미있더라고.


아이고, 그때 나 좋다고 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니? 아하하하하하. 그런데 다 순사야. 하하하하하하. 그 중에 한 사람은 내 친구 오빠였어. 어느 날 친구가 우리집으로 왔어. 학교 다닐 때도 그닥 친하지 않았거든. 난 키가 커서 맨날 뒤에 앉았고 걘 앞에 앉았으니까. "어머, 왠일이니?" 하니까 나보고 어디로 좀 가자고 해. 어딜가냐고, 여기서 얘기 하자고 하고 보니까, 저쪽에 한 남자가 있는데 자기 사촌 오빠라는 거야. 그러니? 하고 딱 한 번인가 만나고 안 만났어.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지.


아버지가 한 번은 그러셔. 삼성 다니는 남자가 있는데 소희 소개시켜주면 어떻겠냐고 누가 그랬데. 그때는 삼성이 그리 유명하지도 않았고, 어린 나이에 시골에 있으니 삼성이 뭔지도 몰랐지. 아버지가 아직 소희는 어리다고 그러셨데. 또 언젠가는 어느 선생 아들이 공사 나왔는데 두 분이 아들, 딸 이어주자고 이야기를 하셨었나봐. 그런데 그때만 해도 내가 어렸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좋다는 사람 다 팽개치고,

내가 아빠를 만난 거 아니니. 아하하하하하하.

울 아버지 우려가 적중했지. 일생일대의 실수였지, 아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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