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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Mar 31. 2022

7. 딸기 한 박스

[수요일 10시, 아하하하 소희 씨!]

오랜 시간 기차와 지하철, 엘리베이터에 빠져 살던 아이가 올해 일곱 살이 되자 문득 '우주는 얼마나 커?', '지구는 어떻게 생겨났어?'와 같은 질문을 툭툭 던지곤 한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함께 공부하게 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 상식이 상식 이하로 부재중인, 나의 취약 분야 중 하나인 천체에 대한 질문들을 받을 때면 "함께 찾아볼까?"하고 (열린 마음의 엄마처럼, 매사 아이와 함께하는 능동적인 엄마처럼, 자기는 당연히 알고 있지만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새로운 것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사려깊은 엄마처럼) 인터넷 검색 페이지를 켜거나, 아이가 잠든 밤 <코스모스>를 뒤적이거나(다 읽지 못했다;;;) 하는데, 우주가 알면 알수록 신기한 것이, 원인을 모르는 충돌로 지구를 비롯한 많은 행성들이 생성되었다는 점이고, 여전히 아는 것보다 알 수 없는 것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무엇과 또 다른 무엇이 '왜' 부딪히는 것이며 부딪힌 다음에 어떤 모습이 되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결혼은 우주의 신비함을 닮았다. 거대한 우주에 있는 거대한 지구에서,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들로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충돌하고,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또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경의로운 작용.


나의 엄마 소희 씨는 결혼 46년 차인 지금도 "왜 그랬는지 정말 모르겠다."며 자신의 남편이자 나의 아빠인 황규복 씨를 최초이자 최후의 남자친구로 삼은 이유에 대해 여전한 의문을 품고 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와 그녀의 충돌을 야기했을까. 지금부터는 나라는 세계를 낳게 한 최초의 빅뱅, 소희 씨와 규복 씨- 두 우주 충돌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 보고자 한다.


경찰서 들어오고 나서 한 1, 2년 됐을까? 하루에도 지서에 있는 직원들이 수십 명씩 들락날락했으니 처음엔 아빠를 잘 몰랐지. 그 사람들은 수사과에 여자 직원이 나 하나니까 날 다 알았고. 어느 날 서부에 내가 뭘 떼러 갔어. 그땐 인적 서류를 다 본적지 가서 떼야 해. 홍성에서 갈산에 가려면 10리를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어디 어디로 들렀다 가는 버스도 있었어. 마침 노는 날이어서 버스 타고 가는데 봄이고 따뜻하니까 내가 창가에 머릴 기대고 졸고 있었거든. 그런데 누가 창문을 두드려. 눈 뜨고 보니까 그 유명한 황순경이야.


왜 황순경이 유명했냐. 일전에 경찰학교 졸업생들이 홍성경찰서로 대 여섯 명 왔거든. 그 사람들이 유치장에 근무했었어. 학교 졸업하고 막 왔으니 내가 봐도 다들 바짝 얼었지. 그런데 얼마 있다 보니까 그렇게 온 사람들이 거기 죄수들한테 매수되서 담배 사다주고 돈 받고 그랬다고 경찰서가 난리가 났었어. 죄수들을 하나하나 불러다 물어보니까 유일하게 아빠 한 사람만 돈을 안 받았다는 거야. 그런 게 안 통하더라, 그랬다고. 지금도 꼬장파잖니, 아하하하하하. 그때 그 사람들 다 징계 받았는데 아빠만 오광파출소로 나왔지. 그래서 다들 '황순경, 황순경'하니까 나도 알게 됐지. 근데 그때 늬 아빠가 어딘지 모르게 좀 불쌍해 보였어. 목은 기다랗고 여드름 자국이 막 있는데, 얼굴은 하얗고 깨끗하더라고. 우리 집안 남자들이 다들 키가 크고 잘생겨서, 에이, 그러고 말았지 뭐.


그런데 버스에서 눈을 떠보니 그이가 딱 서 있어. 그래서 왠일이냐고 물었지. 아빠가 은하지서(홍성군 은하면 소재)에 간데. 봄판이니까 딸기 먹으러 오라고 해서 간다고. 비번 날이라 할 일도 없었으니 갔겠지. 나보고 언제 돌아오느냐 해서 "막차 타고 오죠." 그랬어. 언제 올지 사실 생각도 안 했었는데. 그리고 "딸기 혼자 먹지 말고 저도 좀 갖다 주세요." 그랬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소리 아니냐?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지.


그 다음날 출근을 했는데 내 옆으로 황순경이 슬쩍 오더니, 어제 막차 탄다고 하더니 왜 안 탔냐고 그래. "네? 막차?" 난 내 볼일 끝나자마자 그냥 왔지. 별 생각 없이 말한거라 막차고 뭐고 뭐. 그래서 순간 머릴 굴려서 "일이 일찍 끝나서 그냥 왔어요." 했더니 "딸기 달라고 해서 딸기를 한 박스 갖고 왔는데 왜 막차 안 탔느냐"고 하더라고.



* 지서 : 당시 서울에는 파출소가, 지방에는 파출소, 지서가 있었다고 구술한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지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유래한 단어로 1995년 1월 27일을 기준으로 전국의 모든 지서가 파출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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