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이 일방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아내가 받아들인 거죠. 그래서 제게 ‘원죄’가 있다고 느끼는 거예요. 특별히 내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게 그렇게 되어 가게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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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났죠. “정말 이런 식으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게 고쳐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어려운 시기를 나도 겪어봤는데 그걸 바꿔야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했다’ 하고 끝나는 건 무용담일 뿐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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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발전하고 싶고 내 능력치를 키우고 싶은데 설 자리가 없으니 그럴 기회조차 안 생기는 거죠. 그러면 나는 어떠한 배우의 삶을 살아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평소에는 괜찮다가 어떤 작품이 올라간다, 거기에 내 이름이 없다 하면 그때 많은 생각들이 드는 것 같아요.
89p.
진짜 중요한 건 아이 스케줄에 맞춰 부모의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일하면서 애도 키울 수 있을 텐데. 육아를 위한 공공서비스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 그게 실질적이고 중요한 도움이 된다는 것, 적어도 서울에서는 불가능한 것 같아요.
117p.
아이들이나 남편이 저에게 굉장히 정서적으로 의지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이렇게 지금처럼 살아도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인생을 찾고 싶어’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이 뭔가 결속력 있게 뭉쳐서 잘 굴러가는 것 같다는 안정감이 있거든요.
135p.
‘자기 삶에 주체적이면서 몸과 마음을 돌보고 꾸준히 성장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온전한 사람.’ 심리상담 받을 때 고군분투하면서 만든 문장이에요.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우리 아이들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에요.
151p.
나도 내가 잘하는 걸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요. 육아하면서 아이들에게 무한정 사랑을 주고 있지만 정작 저는 사랑을 못 받고 있는 거예요. 남편은 바쁘고, 아이들은 어차피 내리사랑이잖아요. 저는 사랑을 주기만 하는 존재이지 누군가 내게 사랑을 쏟지 않아요. 책을 읽으면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해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어떻게 날 사랑해야 하는지.
171p.
아이를 키우며 확실히 느끼는 건 부모가 자식을 어떤 식으로 교육하는가가 아이 성향에 나타난다는 거예요. 일하는 저희 부부를 보며 아이가 자기 삶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있다는 게 상당히 좋다고 느끼는 부분이에요.
193p.
‘노키즈존’이나 ‘맘충’ 같은 말이 나오면서부터 아이 셋을 데리고 밖에 다니면 뭔가 더 눈길을 받는 느낌이 있어요. ‘아이가 셋이나 돼? 요즘 세상에도 아이를 낳네!’ 그런 분위기의 시선으로 저희를 보는 게 느껴졌던 때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