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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Nov 26. 2021

로또에 대하여

2주 전의 일이다.

한 방에서 이불을 깔고 나란히 자던 우리 세 식구.

한번 잠들면 아침까지 깨지 않는 아이가 불현듯 새벽에 눈을 뜨더니

"엄마, 꿈 속에서 10원짜리가 막 쏟아졌어, 막 30원, 40원, 이렇게 되는 거야." 라고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응, 꿈 꿨구나, 어서 다시 자자_하고 한 손으로 아이의 가슴을 토닥이는데,

남편이 다른 내 한 손을 쓰윽 잡더니, 속삭인다.

"내일 로또 사."


10, 20, 30, 40.

일단 10의 자리수를 기억하자.

1, 11도 왠지 기억해 두자.

3, 4도 빼놓기 아쉽다.


날이 밝고

콧물을 훌쩍이는 아이와 함께 소아과에 들러 대기 명단에 이름을 적어 두고

갑자기 생각난 로또.

"우리 저기 가서 숫자에 색칠해 볼까?"


나란 사람, 정말 건강한 엄마일까 짧게 망설여졌지만

그래, 사람일은 모른다, 아이에게는 우리와 다르게 요행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윽고, 자식 덕을 이렇게 보나-까지.


그리하여 로또 종이와 검정 사인펜을 아이에게 쥐어주고

"자, 색칠하고 싶은 숫자에 색칠하는 거야. 그런데 딱 6개만 칠해야 해."


두 줄은 아이에게 맡기고, 두 줄은 외워두었던 10단위의 숫자와 1과 3과 4가 어울린 숫자들로 내가.

그리고 한 줄은 혹시 모를 더한 운에 맡겨보자 싶어 자동에 체크.


그런데 아이가 칠한 숫자들을 보니 18, 19, 20, 21, 22, 23.

그래, 어차피 1부터 6까지 차례대로 칠한다 해도, 무슨 숫자를 선택해도 여섯 개 숫자가 행운의 수가 될 확률은 다 같으니까.


이틀이 지나 토요일. 결과는?

6개 X 5줄=총 30개의 숫자 중 맞은 것은 단 4개, 그것도 한 줄에 하나씩이다가 한 줄은 건너 뛰기도 했다.

아들아, 네가 개꿈을 꾸었던 게로구나, 그날 좀 피곤해 옅은 잠을 헤매고 있었던 거구나,

우리, 열심히 살자꾸나, 엄마가 미안했다.


그러고 며칠 뒤 다시 소아과에 들러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뭘 할까 고민하는데,

"엄마, 우리 숫자 쓰러 가자."


나는 막 웃었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생각했다.

그리고 여러 번 아이가 졸랐던 반짝이 색종이를 사주겠노라,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문방구로 향했다.

아이의 두 눈이 늘어선 색종이들 앞에서 반짝였다.


+


남편과 나는 많은 부분에서 참 닮지 않았는데

사고 방식부터 식성, 취향, 취미 등 맞지 않는 분야가 실로 방대함을 살면 살수록 확인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하는 말,

"우린 정말 로또 같은 걸."


남편이 싫어하는 깍두기를 저녁 밥상에서 빼고

내가 좋아하는 깍두기를 가득 넣은 볶음밥을 나만의 점심 식탁에 올린다.

이러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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