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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Nov 22. 2021

시계를 보지 않고 마냥 기다릴 수 있는 시간

최근 여러가지 개인적인 일들로, 거의 낮시간의 대부분을 휴대폰과 노트북 화면에 고정이다.

검색하고 전화하고, 표기해 두고, 뭔가를 쓰고.

인터넷은 정말 정보의 바다로구나. 코로나로 발이 묶인지 오래되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전국 어느 곳의 의견도 취합할 수가 있다니. 물론 표현이 된 정보, 주관적인 견해가 지배하는 정보가 절대적이지만, 나에게 맞는 옥과 석을 가리는 몫은 어느 때이고 나의 몫 아니던가.


그리하여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한 번 손 대면 끝이 없는 집안일을 과감히 외면하고 노트북의 전원을 켠다. 한참을 작업하다 문득 시계를 보면 오후 1시, 왠지 초초해지는 마음으로 다시 화면에 집중하면 두어 시간이 훌쩍. 컴퓨터를 꺼야한다. 휴대폰을 충전잭에 연결해 두어야 한다. 이제는 최고의 집중력과 스피드로 집안일과 저녁 준비를 마쳐야 한다. 한 시간 반 정도, 그렇게 보내면, 일주일 중 이틀, 화요일과 목요일 내게 주어진 가장 긴 자유시간이 끝나고 아이가 하원 후 축구교실에 들렀다 오는 시간이 된다.


서둘러 젖은 손을 비누로 깨끗이 닦고 아파트 단지 앞으로 나간다. 아침에 잠깐 맞은 공기와 해가 지는 이른 저녁의 쌀쌀함이 닮았다.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뻐근한 눈은 어두워지는 맑은 하늘을 보기에도 시려워 깜빡깜빡 눈꺼풀을 움직여본다. 굽은 등을 쭈욱 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이 거기 있었네.



그리하여 이렇게 10분, 또는 15분. 하루 중 혼자 있을 시간 동안 유일하게

하늘을 보는 시간, 구름이 흐르는 방향에 눈동자가 따라가는 시간.

작은 네모 화면을 보지 않고, 시간을 보지 않는 시간.

휴대폰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

그 기다림에 시간의 개념은 필요 없는 시간.

늦어도 조바심나지 않고, 기다리는 이가 올 때까지 한 없이 기다릴 수 있는 시간.

저 멀리서 아이를 태운 노란 버스의 앞코가 보이면

뒷짐 진 손이 절로 풀리고 종종 걸음으로 달려가지는 시간.


그러고 나면

이제는 좀 컸다고,

자기는 형아라고,

'엄마'하고 와락 달려들었다가도 먼저 저 멀리 앞서 가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아이가 있고

그 뒤를 가만 쫓아가서 아이가 벗어 던진 신발 두 짝을 가지런히 놓고

손 닦아라, 양말 벗어라, 어서 샤워하자

잔소리쟁이 엄마가 함께 있는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시간이 없어도 언제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

그렇게 내게 하늘도 보고, 바람도 맞게 해 주는 시간 덕분에

엄마는 참 날 귀찮게 해- 하면서도 작은 손으로 축구교실에서 받아온 비타민 한 알을 내 입에 넣어주는 아이를 번쩍 안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에 물을 튼다.

달라진 건 없어도

새로워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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