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결에 들게 만드는 북디자인에 관한 이야기
요즘 서점을 가면 나도 모르게 읽게 만드는 아름다운 커버 디자인의 책들이 많다. 화려한 디자인, 심플한 디자인, 그림을 강조한 혹은 서체를 강조한 책 등 수많은 책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출판했던 오래된 책들도 리커버를 통해서 다시 재출판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 인지도 높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살펴보자.
셋의 북디자인 중에서 사실 우열을 가리는 것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첫 번째 북디자인은 작가와 제목, 내용에 대해 주안점을 두었던 반면 최근 나온 민음사의 북디자인은 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마도 책의 내용과 작가가 이미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북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북디자인에도 정답이 있을까?
여러 책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걸쳐서 찾아본 결과 주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어떤 뚜렷한 패턴은 없는 것 같았다. 출판사마다 책 장르마다 일정 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있지만 북디자인은 수많은 책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내비쳐야 하는 운명에 따라 차별성을 나타내는 책 또한 굉장히 많다. 다만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책이 눈길을 끌고 읽고 싶게(정확히는 들고 싶게) 디자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것이 낫다 혹은 더 좋다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지만 하루키의 소설처럼 이전 책 표지에서는 책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그림 혹은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최근에 나온 책들의 경우 제목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통해서 매우 심플하게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고 보인다. 물론 지금도 제목이 곧 내용인 책들도 굉장히 많다. 대표적으로는 실용서적, 2차 학술서적, 교양인들을 위해 쉽게 쓰인 경제·경영·예술·역사 책과 같은 경우에는 책 표지만 보고도 어떤 내용일지 유추가 가능한 책들도 많다.
북디자인에도 고전이 있다 : 20세기 초·중반 커버 디자인과 서체의 진화
모든 디자인의 변천사를 찾아보면 갑자기 어떤 뛰어난 인물이 갑자기 단계를 뛰어넘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너무나 높은 수준의 디자인을 제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대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건축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는 '르 코르뷔지에', 애플의 아이폰이 모티브를 얻었던 디자이너 '디터 람스', 그리고 타이포그래피, 서체와 관련해서는 '얀 치홀트'가 떠오른다.
시즈 드 종 외 4명이 쓴 얀 치홀트의 회고록 <얀 치홀트 : 그의 삶과 작품 그리고 유산>에서 그가 현대의 타이포그래피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가 만들었던 책의 표지 디자인도 함께 그림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는데요. 특히나 그가 고안한 서채를 이용해서 만든 표지 디자인은 지금 보기에도 전혀 이질감이 없어 보입니다. 그는 특히나 지금까지 오랜 사랑을 받고 있는 '펭귄북스'의 표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아래는 내가 책을 보고 직접 파워포인트로 만들어본 북 디자인인데, 세련된 모습을 간직함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나 세월을 느낄 수 있다.
사실 북디자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얀 치홀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보다 직접적인 내용이 적혀있는 디자인 실용서적을 읽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참고로 나는 그중에서도 앤드류 해슬램의 <북디자인 교과서>라는 책을 읽어봤는데, 아무래도 커버보다는 책의 제본과 안의 레이아웃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 많다. 그래도 인디자인을 통해서 직접 책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참고하기에 충분한 책 같다(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나도 이 책을 많이 참고해서 인디자인을 통해 잡지를 발행한 적이 있다).
표지에 속아 속이 비어있는 내용이 들어있는 책을 구입할지언정, 내용은 충실한데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눈에 띄지 않아 평생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환경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