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dam Choi May 24. 2024

[단편] 중학생 꿈이 네크로맨서인 것에 대하여

네크로맨서(Necromancer)는 강령술사(降靈術師), 또는 사령술사(使靈術師)로 번역할 수 있는 마법사를 뜻하는 말. 네크로맨시 문서에서 보이듯이 시체(nekrós)와 점술(manteía)이라는 단어가 결합된 것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 점을 치는 사람을 말한다.
                                                                                            -나무위키 : 네크로맨서 항목 -


 그는 언제나 지각하지 않고, 친구관계도 원만하며, 성적도 중상위권을 유지하는 평범한 아이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초점은 항상 칠판이 아닌 천장과 바닥 그 사이 어딘가에 맞춰져 있으며 필기할 타이밍이 아닌데도 공책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어떤 때는 너무 궁금해서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키고 은근슬쩍 그의 옆을 지나가며 그가 자주 사용하는 공책을 살펴보려고 시선을 옮겼지만 거기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단어들이 띄엄띄엄 규칙 없이 적혀 있었다. 


 한국의 이례적인 출산율 저하로 이제는 반에 20명이 이하로 남게 된 중학교 교실에서, 학생과 선생이 대화를 통해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계기는 많아졌지만, 그는 학기가 시작된 지 3개월을 넘어가는 시점에서도 단 한번 나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궁금함이 없다고 하기에는 학교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라고 다른 학생들에게 전해 들었고,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하기에는 등하교를 할 때의 친구들과 교실을 떠나는 그의 표정은 다른 학생들과 전혀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그냥 생각이 많은 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내 호기심이 그를 이기지 못했다. 나는 분기마다 진행하는 학생별 면담을 통해 그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리라 다짐했다. 


   그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미친놈이라는 걸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네크로맨서가 되는 것이라고 나에게 답했다. 어린 시절 게임과 웹소설을 좋아했던, 아니 지금도 좋아하는 나로서도 그 직업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지 모르지 않았다. 죽음을 관장하는 마법사가 되고 싶다니, 이게 무슨 여학생이 요술봉 들고 세상을 구하겠다는 소리도 아니고….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뭐가 되고 싶다고? 

 “음.. 선생님께서 네크로맨서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지 모르지 않지만 저는 조금은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 직업이 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 왜? .. 아니 어떻게?”

 “그거는 지금 여기서 설명하기에는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요..”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지금은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정환경을 의심했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길래 꿈이 네크로맨서로 정해졌을까. 최근 학생들의 개인정보 보호가 중요해지며, 학생의 가정환경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나는 학교에 요청을 통해 부모님의 개인 연락처라도 알아내볼까 잠시 고민했었다. 부모님이 게임 개발자나 인터넷 방송인, 유명 프로게이머라면 그나마도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두 번째로 든 생각, 아니 고민은 어떻게 하면 그 학생이 좌절하지 않게 현실적인 조언을 전달할 것인가였다. 시체를 일으켜 언데드를 만들고, 뼈골렘을 생성하는 그 직업은 중세 판타지 소설에서, 그리고 게임 소설에서는 1인 군단이라고 불릴 만큼 매우 강력한 능력을 보여주나, 현실에서는 좀비 한 마리도 일으키기 어려운 것이 과학이고 현실이었다. 

 마지막으로는 그가 어떤 계기로 본인의 진로를 강령술사로 결정하였는지, 그리고 그가 말한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뇌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흠칫 하다가도 일단은 개인적인 약속을 잡고 ‘일단 들어보자’라는 심정으로 주중을 마무리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그는 평소와는 다른 복장으로, 그렇지만 그 나이와 어울리는 옷차림으로 내 앞 오른쪽 사선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지금 본인이 하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이야기라며 신신당부했다. 물론 고문을 받을 정도의 상황에서도 꺼내지 말라는 절대적인 비밀이냐 하면 또 아니라는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본인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이제 막 한국에서 여러 기업들이 뜨고 지는 시기에 사업을 시작했다. 젊지 않은 나이에 어느 정도 경력을 가지고 시작한 외할아버지는 아이템은 평범했지만 사업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아 이름 있는 외국계 자본에 투자유치를 마무리하고, 투자금을 바탕으로 꾸준히 사업을 성장시켜 상장 직전까지 기업의 규모를 확장시켰다. 그러나 정부의 힘을 등에 업은 거대 경쟁사에 압박에 못 이겨 결국 대기업에 흡수합병되었고, 본인의 지분을 매각해 100억 정도의 현금자산을 이른 나이에 보유하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사업을 통해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지나친 열정을 쏟아 다른 어떠한 직업을 가지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해, 수도권에 작은 오피스텔 빌딩과 주거용 빌라를 대출 없이 매입하여 안정적인 노후준비와 자식 교육에 힘을 쓰고자 계획했다. 그렇게 태어난 자식들 중 1명이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재벌은 아니지만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듣고 자라서 조금 더 좋은 대학교에 입학했고, 부모님의 영향으로 그 당시 전문직으로 인정받던 부동산 감정평가사에 합격하여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갔지만 너무 본인 업무에 집중한 나머지 연애는 몇 번 해보지도 못하고 결혼 적령기를 놓쳐버렸다. 그녀는 잃어버린 20대를 되찾기라도 결심한 듯, 결혼정보회사에 다 필요 없이 오로지 ‘잘생기고 젊은’ 남자이기만 하면 된다는 조건으로 지금의 그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까지 이어졌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내 생각은, 꽤 좋은 환경에, 좋은 직업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잘 자랐을 아이가 왜 갑자기 네크로멘서가 되겠다고 했을까? 아니 그보다 굳이 외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이유가 있었나? 등등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아직까지 납득할만한 설명은 아직 나오지 않기에 조금 더 들어보자고 생각을 정리했다. 


  본론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의 부모님이 결혼을 하던 시기는 이제 막 미국에서 생성형 AI가 개발되어 모든 산업과 사업이 영향을 받는 시기였다. 결혼생활 1년 차에 그가 태어났고, 잘생긴 그의 아버지가 육아를 담당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컨설턴트, 변리사, 세무회계사 등 이전에는 고연봉으로 선망받던 직업들이 하나둘 AI로 대체되기 시작되었다. 토지와 건물의 가치를 평가하던 감정평가사 또한 얼마 안 가 AI를 통해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자격증이 더 이상 무의미해졌다. 그녀는 당연하게도 실직하게 되었고, 그녀는 복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계의 책임을 남편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그 시기에도 연예인에 준하는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가끔씩 올리던 SNS의 활동을 크게 늘렸고 다행히도 여러 쇼핑몰과 브랜드에서 30 타겟의 광고과 모델 제의를 아버지에게 제안했고 그 시기를 계기로 오히려 가계의 상황은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아버지의 이름을 듣고 3초간 생각을 잃었다).

 그러나 곱게만 자란 어머니는 생계에 매우 서툴렀고, 아이를 돌보는 데도 재능이 부족했다. 사랑으로 그를 키웠지만 음식은 짜거나 너무 달았고, 설거지를 할 때면 조금이지만 어깨가 내려갔다. 생활이 나아지고 유모를 고용하면서부터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노세하신 외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이후로는 더 이상 활짝 핀 미소를 보기 더욱 힘들어졌다. 

  그러한 시기를 겪으면서 그는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어머니처럼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그 생각을 처음 한 시기가 11살 때라고 그는 말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문제는 단 한 가지였다. 앞으로 AI가 발전함에도 인류가 번성하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직업 한 가지, 다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아버지의 외적으로 축복받은 유전자보다는 어머니의 두뇌 유전자를 크게 물려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들과 게임에서도 언제나 이해도가 높아 빠르게 레벨을 올렸다. 그렇게 고민과 학업, 책, 게임을 병행하며 한 가지 직업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게 바로 유행하던 RPG 게임에 ‘네크로맨서’라는 직업이었다. 


  그가 플레이한 RPG 게임은 마계의 침략으로 피폐해진 세상을 구한다는 클리셰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게임과 조금 다른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은 선하고 다른 파티원을 보조해 준다는 개념이 강한 성기사와 성녀는 그 게임에서는 종교의 힘으로 마계군을 때려잡는 최선봉대의 강력한 직업으로 묘사되고, 네크로멘서는 마왕과 비슷한 어둠의 힘을 다룬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약한, 그렇지만 선한 인상으로 묘사되었다. 

NPC가 주는 퀘스트를 통해 명성과 경험치를 얻는 시스템도 당연히 구현되어 있었는데, 네크로맨서 직업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주는 퀘스트의 내용은 이러한 내용들이 많았다.


 “내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영혼을 달래줘(울음)”

 “우리 가족 묘에서 몬스터가 우리 할아버지를 괴롭히는 것 같아 도와줘!”

 “그 커다란 골렘으로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좀 도와줄래?”  


  등 약간 어디 작은 마을에 힘세고 신의 말을 잘 듣는 무당처럼 네크로멘서를 이웃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씨 착한 네크로멘서는 그렇게 경험치를 얻고 몬스터를 사냥하여 골렘을 키우고 결국은 레이드에서 다른 파티원이 죽인 마왕군의 시체를 일으켜 파티에서 광역 데미지와 광역제어를 맡았다. 그리고 그 게임을 하며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그는 생각했다.

  ‘인간은 앞으로도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할 것이고, 설령 죽지 않는 방법이 개발된다고 해도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은 여전히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며 그 수는 줄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을 도울 수 있는 건 감정의 문제이고 이를 AI에게 맡기기란 정서상 매우 불편하거나 혹은 저렴한 선택이 될 것이다. 죽음의 절차를 다루는 사람은 가치를 잃지 않고 유지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현실에서 네크로멘서에 대응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싶다고 그때 다짐했고 학교와 동네 도서관에서 여러 관련된 정보들을 찾았다. 결론은 그것이 지금의 장의사와는 조금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체를 방부하는 기술은 굳이 사람의 손이 아닌 자동화된 로봇이 담당할 수 있으니, 죽음의 절차에서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지 재정의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종교적일 수도, 수도승의 모습일 수도, 예술적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가지고 절차를 담당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어머니처럼 우울해하지도, 직업을 잃어 생계를 걱정하지도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    *    *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내 커피잔의 커피는 거의 비워지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단편] 게으른 수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