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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Oct 25. 2018

엄마의 : 첫사랑

엄마에게도 첫사랑이 있었습니다


56년생 평범한 우리네 엄마.
어머니가 쓰시는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부디 어머니의 글로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거 주더라~ 저거 받았네~ 떠들어쌓긴 했다만서도. 주는거 좋아라 덥석덥석 받는다는 소문이, 멀리 남쪽지방까지 났는지는 미처 몰랐다. 그래서 얼굴본지 30여년도 더 된 옛친구 '선이'에게서 까지, 선물을 받게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선이는 시골 외갓댁 아랫마을에 살던 친구로, 최근까지 거의 연락두절 상태였다.
그치만 나는 살면서, 그녀를 가끔 떠올리곤 했다. 그것은 특별히 그녀를 그리워해서 라기보다는, 그녀 덕택에(?) 시작되었던 나의 첫사랑 때문이었다.




나는 남자건 여자건 크고 쌍꺼풀진 눈보단, 가늘고 길게 찢어져서 날카롭고 어딘가 못되 보이는 눈을 옛날부터 좋아해 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그런 눈을 좋아하게 된 건, 내 첫사랑의 눈매가 그래서 였던 것 같다.
선이의 친구중에 선이집 옆에 살던 윤선이라는 친구가 있었고, 윤선이에겐 두어살 많은 오빠가 있었더랬다. 선이네 놀러 갈때면 어쩌다 윤선이 오빠와 마주치곤 했는데, 비쩍 마르고 훌쩍 큰 키에 차분해 뵈는 남학생이었다.

고1 여름방학의 어느날, 선이는 어디가고 아무도없는 선이네 가게에 어쩐일인지 나만 혼자 앉아있었다. 그때 윤선이 오빠가 선이네 가게로 쑥 들어서더니, "우리 윤선이 어딨노?" 퉁명스레 물으며 나를 쏘아 보았다.
방학때마다 외갓댁엘 갔으니 내가 누군지는, 그도 짐작으로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또 동생친구니 그럴수도 있는 일이긴 했다.
그래도그렇지, 눈인사도 제대로 한적이 없는 사이에, 마치 야단치듯 반말이라니!.
그의 무례함에 기분이 상한 나는 짜증섞인 말투로, "모르겠는데요" 하면서 째려볼 심산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지극히 짧은. 아마 수초도 안될 잠시잠깐의 그순간, 그와 나는 눈싸움을 하듯 서로의 눈을 마주보게 되었는데.
그의 눈빛이 어찌나 찌르르르 하던지,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얼떨결에 벌어진 당황스런 상황에 어찌할바를 모른 나는, 그의 눈을 피해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말없이 가게를 나갔고, 방학이 끝나가고 있어서 며칠뒤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그 후로는 입시준비에 매달리느라, 더는 외갓댁에 놀러 다닐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날 윤선이 오빠의 가늘고 긴 눈에서 나오던 레이져 눈빛만 생각하면, 내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는 거였다.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이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그 당시 서울의 일류고교 남학생들과 써클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 써클엔 멋진 선배들도 많았다. 그런데도 촌스런 시골 무지랭이 그 오빠가 왜 좋은지, 나는 도무지 이유를 알수가 없었다.
둘사이엔 단 한마디 "모르겠는데요" 밖에 주고받은게 없었고, 굳이 내세우자면 못돼 보이던 눈빛밖에는 딱히 설명할게 없었는데 말이다.
그를 향해 가슴앓이를 하던 나는 잔머리를 굴렸고, 그간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윤선이에게 작심하고 부러 안부편지를 보냈다. 운좋게 윤선이에게 보낸 내편지를 그가 보고 내 주소를 알게 된다면.
어쩌면 그가 내게 편지를 보내올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고 그로부터 편지가 왔다. 그리고는 1~ 2년 남짓, 우리는 꽤 많은 편지를 주기적으로 주고 받았다.
어느날, 마산의 교육대학에 다니던 그가 졸업여행을 서울로 오게 되었다며 오면 전화할테니 만나자 했다. 도착하기 불과 사나흘 전까지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편지가 그에게서 왔었다.
우리는 드디어!
처음으로 마주앉아!
서로의 눈을 보며 편지로는 못다한 대화다운 대화를 할 참이었다.
대학생인 그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 아직 여고생인 나는 무슨 옷을 어떻게 입고 나갈지, 또 무슨 얘길 해야할지, 그가 온다는 며칠전부터 떨리고 설레 잠도 안왔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처음엔 일정이 바뀌었나, 무슨 사고라도 났나, 별의별 생각을 다해봤고 당연히 걱정도 되었다. 온다던날 이후 며칠간 전화기가 있던 마루를 들락날락, 혹시 고장이라도 났나 전화기를 수백번은 들었다놨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는 이상하게 그의 편지 역시도 뚝 끊어져 버렸다.
궁금하긴 했지만 기다렸던만큼 자존심이 상했던 나도, 더는 편지를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뒤, 대입시험을 치뤘고 합격자 발표가 나자마자 나는 외갓댁으로 내려갔다.

외갓댁으로 가려면 버스정류장에서 마을까지, 양쪽으로 논이 넓게 펼쳐진 곧은 시골길을 약 500미터 정도는 족히 걸어가야 했다.
빠른 걸음으로 마을을 향해 가고 있는데, 마을 입구에서 누군가가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아직 추운 겨울이라, 길에는 물론 논에도 그사람과 나외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마주오던 그사람과 내가 서로의 얼굴을 볼수 있을만큼 가까워 졌을때, 나는 너무 놀라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 사람은 바로 윤선이 오빠였다.

약 2년반만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나를 만난 그도, 아마 나만큼은 놀랐던것 같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아무말없이 한참을 가만히 서있던 그는 앞뒤없이 불쑥 '대학갔냐?' 물었고, 나는 "예?... 아...... 예!" 답했다. 그러더니 어색한 침묵을 깨며 그가 말했다. "가봐라~".
놀란 마음에 그의 얼굴도 제대로 못쳐다 보고 엉겁결에 그를 지나쳐 걷는 내얼굴이, 마치 화로불을 끼얹은듯 화끈거렸다.


이번에 외갓댁에 올땐 선이네 가게에 죽치고 앉아서라도, 그를 한번 만나보리라 마음을 먹고오긴 했었다. 그리고 왜 전화 안했는지도 꼭 묻고 싶었다.
그치만 생각보다 너무나 빨리 미처 마음의 준비도 못한채로 그를 만나다보니, 꿀먹은 벙어리마냥 입이 딱붙어 하고싶은 말을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그날 바보처럼 아무말도 못했던걸 잠시 후회하긴 했지만, 바쁜 대학생활은 즐거웠고 그는 잊혀졌으며 나는 결혼을 했다.
신혼때 외갓댁을 찾았을때, 친정에 다니러왔던 선이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반갑게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진 그녀에게서 어느날 전화가 왔더랬다.
이런저런 얘기끝에 선이가 문득 그 오빠얘길 꺼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했다.
한때 나를 애닯게 만들던 나의 첫사랑이, 겨우 30대에 세상을 등졌다니... 참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었다.



그후 연락이 끊어졌던 선이는 30년도 더 지난 작년에, 시골사는 사촌에게서 번호를 받았다며 전화를 해왔다. 그리고는 무소식이던 선이가 또다시 일년만에, 시댁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하는데 좀 보내주마 전화가 왔다.

첫사랑이란 단어를 보고듣게 될때면, 나는 늘 연관 검색어처럼 그 오빠와 함께 선이를 떠올리곤 했다.
사실 그 오빠가 내게 편지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된 건, 순전히 선이 때문이었다.

어느날 윤선이네 놀러간 선이는, 우연히 오빠 책상위 연습장에 내 이름이 한가득 써있는걸 보았노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선이 덕에 나는 용기를 냈고, 윤선이에게 편지를 보내 내주소를 남기려는 꼼수를 쓰게됐던 것이었다.

외갓댁에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그 겨울의 며칠동안, 그를 만나 꼭 묻고 싶었다.
서울 오는게 너무나 기다려진다던 사람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전화를 않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간 단한번도 그와 나는 "좋아한다" 류의 얘길 주고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오직 편지로만 그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일상을 보고하는 수준의, 지극히 무심한(척하는) 대화들만 주고받던 사이였다.
그런사이에, 너 왜그랬냐 대놓고 따질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어찌보면 앙큼하다 할 정도로 나는 속마음을 감추고 있었고, 나를 향한 그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보기좋게 차여 버린걸로, 어설픈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났다.
생각해보면 한순간의 눈빛 하나로 나의 짝사랑이 시작되었듯, 그가 나를 마다한것 역시 무슨 그리 큰 이유가 있었으랴마는...

선이는 5월에 한번 만나자 했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오랫만에 만나게된 선이와 나는, 무슨 얘길 나누게 될까?
살아온 기나긴 얘기 끝에 우리 둘은 마침내, 열다섯 소녀의 풋내나는 첫사랑 윤선이 오빠얘기도 하게 될테지.
파프리카처럼 싱싱하고 푸르렀던 그 여름
스치듯 주고받은 둘의 눈빛과, 아무도없는 쓸쓸한 겨울 들판에서 마치 영화처럼 우연히 만났다 스쳐 헤어지던 그 장면을 떠올리다 보면...
메마른 내가슴도 봄비를 맞은듯, 다시 또 촉촉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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