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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Nov 10. 2018

엄마의 : 엄마 생각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56년생 평범한 우리네 엄마.
어머니가 쓰시는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부디 어머니의 글로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엄마가 떠나신 12월이 되면,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난다.


늦은 밤 엄마의 상태가 심상찮다는 전화를 받고 너무 놀라 울면서 미친 듯이 달려갔지만,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뒤였다.

주무시다 돌아가신 엄마는 마치 계속 주무시고 있는 것처럼 아주 편안한 얼굴로 누워계셨다.

아직 혈색도 그대로시고 몸도 여전히 따뜻하기만 한데,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게 나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심장수술과 뇌수술로 정신도 맑지 않으신 데다 몇 년째 거동도 못하시는 엄마가 너무 안스러워,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엄마처럼 선한 사람을 이렇게나 힘들게 하시다니!

제발 이제 그만 고생시키시고, "차라리 데려가시지"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내 눈앞에서 엄마의 '죽음'을 현실로 마주하게 된 순간, 머리속이 하얗게 된다는 게 그런 것일까.

마치 온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간 듯 도무지 몸을 가눌 수가 없었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극심한 위경련과 함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사지가 덜덜 떨려왔다.

이제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그 사실이 너무너무 무서워 죽을 것만 같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인체는 심장이 멎는 순간 즉 죽음을 맞이한 후에도 제법 한참 동안은 귀가 열려있어, 소리가 다 들린다는 얘길 어디선가 들었는데도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 전혀 나질 않았다.

그래서 먼 길 떠나시는 엄마께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이나 "편히 가시라"는 말 한마디 들려 드리지 못한 채, 황망 중에 빈소가 차려질 병원 구급차에 엄마를 실려 보내는 걸로 영원한 작별을 하고 말았다.


이승을 떠나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 건 좋았을지 몰라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영원히 이별하게 된 그 상황이 엄마도 나만큼 두렵고 떨리지 않았을까.

그런 엄마께, 머잖아 만나게 될 테니 먼저 가서 조금만 기다리고 계시라 안심시켜 드린 뒤 따뜻하게 안아 드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 옆에는 나 밖에 없었는데 바보처럼 정신없이 허둥대기만 하다, 끝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손 한번 제대로 잡아 드리지 못한 채 엄마를 보내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이 엄마한테 너무나 미안하고 두고두고 안타까워서, 여지껏 커다란 후회로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렇게 엄마가 가신 지 어느새 7년이 되었다.

돌아가신 후, 꿈에서라도 엄마를 보고 싶어 아무리 애를 써봐도 이제껏 엄마를 만난 것은 겨우 두어 번 정도였다.

언젠가 조선일보의 '가슴으로 읽는 시' 란에 정채봉 시인의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 실렸는데, 그 내용이 꼭 내 마음 같아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며칠 전 잠자리에 누웠는데 제목도 가물거리는 그 시가 갑자기 떠올랐고, 인터넷을 뒤져 겨우 찾아내 읽고는 엄마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새벽녘 꿈속에서, 나는 뭔가 불안하고 편치 않은 상황에 놓인 것 같았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지?" 난감해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엄마가 홀연히 나타나셨고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으셨다.

환하게 미소 짓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아~! 이제 엄마가 왔으니 아무 걱정 없다!" 하면서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고 곧바로 꿈에서 깨어났다.


너무나 오랜만에 엄마를 만났는데도 그저 엄마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봤을 뿐, 또다시 엄마랑 말 한마디 못 나눈 채 그냥 그렇게 잠을 깨버린 것이 너무나 속상했다.

몇 번이고 꿈을 되짚어보면서 앞 뒤로 뭐가 더 있었는지 이리저리 생각해봤지만, 엄마가 나를 보고 빙긋이 웃으며 서 계시던 단지 그 한 장면 밖에는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렵사리 만난 엄마를 그렇게 잠시 뵙고 만 것이 아쉬운 건 말로 다할 수 없지만.

아프시기 전처럼 밝고 평온한 엄마 얼굴과 건강하신 모습을 뵙고 나니 며칠 째 나는 마음이 든든하고 뭐든 그냥 다 좋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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