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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Jan 12. 2019

엄마의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안 좋은 인상을 뒤집어 버린 퀸의 노래, 라이브에이드

56년생 평범한 우리네 엄마.
어머니가 쓰시는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부디 어머니의 글로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991년에 죽은 자가, 2018년 오늘 산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얘기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르고 치솟아 '퀸'의 본고장인 영국에서의 인기를 능가하는 통에, 이 영화를 만든 제작사조차도 놀라고 있을 정도란다.
언론에선 그룹 '퀸'이 한국인의 마음을 훔쳤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급기야 젖먹이를 키우는 작은 딸아이도 아기를 맡겨놓고 극장으로 향했다.
내가 퀸의 노래를 한참 듣던 시절엔, 그들의 공연 실황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퀸의 노래를 좋아하고 즐겨 듣던 사람으로서, 이번 참에 나도 대형 화면을 통해 그들의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었었다.

하지만 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지 않겠다 작심했다.
왜냐면 나는, 무릇 영화란 스토리텔링도 중요하지만 남녀 주인공의 외모 즉 시각적 효과도 영화의 성패에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얼핏 본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역을 맡은 배우가, 뻐드렁니를 제외하곤 '프레디 머큐리'와는 싱크로율 빵점이어서 영화에 전혀 몰입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롱다리에 탄탄한 몸매를 가진 섹시맨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하는 모습을 유튜브로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다들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얼굴로 어찌 감히 '프레디 머큐리'를 흉내 낼 수 있단 말인가!

누적관객수가 800만이 되기까지 그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봤을 때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지만, 주인공 배우를 참아낼 자신이 없었던 나는 그 대열엔 절대 동참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태껏 영화를 안 보고 있었던 건데, 지난주 '내 심장을 할퀸 Queen'이란 제목의 'MBC스페셜' 방송을 보고 있던 남편께서 갑자기 발동이 걸리고 말았다.
주인공 때문에 나는 안 보겠으니 혼자 가라 했더니만, 의리가 있네 없네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시더라. 그러니 싫어도 어쩌겠나, 별수 없이 예매를 할 수밖에...
그렇게 엊저녁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도 내키잖아서 "혼자 가면 안 되겠냐~" 툴툴대며 따라나섰는데, 안타깝게도 역시나 내 예상이 들어맞고 말았다.

'프레디 머큐리'보다 두배는 더 크다 싶게 지나치게 부리부리한 눈에다 작달막한 키는 또 그렇다 치고. 뻐드렁니를 연출하려고 입에 넣은 장치가 불편한지 어색하게 다문 입모습, 그 과도하게 튀어나온 주인공의 입이 계속 눈에 거슬리는 거다.
때문에 마치 영화 '혹성탈출'의 유인원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도무지 영화 속으로 빠져들 수가 없었다. 다른 퀸 멤버들은 외양이 흡사한 배우들을 잘도 캐스팅했더구먼, 주인공을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싶게 너무 안 비슷한 배우가 나온지라... 상영시간 두 시간 반 중 거의 두 시간을, 아까운 시간만 날렸다며 떱떠름해하고 있었더랬다.

그랬는데 생각지도 못한 대반전!
영화의 마지막에 펼쳐진 30분가량의 '라이브 에이드' (Live Aid) 공연에서, 배역과 안 맞아 내내 겉돌게만 보이던 못난이 주인공이 마치 진짜 '프레디 머큐리'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상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분명 같은 배우였고 연기인 줄 다 아는데도, 적어도 그 공연 장면에서 만큼은 그들이 '퀸'이 아니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게 공연 실황을 보여주는 건가? 잠시 착각했을 정도로, 립싱크는 물론 공연 자체를 너무나 훌륭하고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한 가지 더 이상한 것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연장에서 열창하는 '프레디 머큐리'와 '퀸'을 보고 있다 보니, 마치 내가 그 공연장에 함께 있는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쏙쏙 파고들기 시작했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시작으로 '위 아더 챔피언'에 이르러선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뭔지 모를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할까.

솔직히 말해 나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이상 열풍을 다룬 'MBC 스페셜'을 혀를 끌끌 차면서 봤던 사람이다.
이 영화를 대여섯 번 이상 봤다거나 씽얼롱 상영관을 찾은 젊은이들이 '프레디 머큐리'를 흉내 낸답시고, 수염을 달고 흰색 러닝셔츠를 입은 채 영화 속 노래들을 떼창으로 불러 대는 것이 노인네 시각으론 여엉 맘에 들지 않아서였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하여간 요즘 애들이란~" 삐딱선을 타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마음이 살짝 무거워지기까지 했었다. 저러고 돌아다닐 만큼 요즘 애들이 사는 게 팍팍하고 마음 둘 데가 없는 거 아니겠나. 쌓인 스트레스는 많은데 풀 곳이 없으니 저러는 걸 거야, 쯧쯧! 했던 거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남편과 나는 이구동성으로, "사람들이 왜 몇 번씩 보는지 알겠네!" 하게 되었다.
단지 스트레스가 많거나 사는 게 팍팍해서가 아니라, '퀸'의 노래와 노랫말 자체가 모든 연령대의 삶과 마음에 콕콕 와 닿을 만큼 주옥같다는 게 더 맞을 것 같았다.
젊은이들에 비한다면 비교적 삶이 여유롭다 할 나 역시도, 할 수만 있다면 떼창뿐 아니라 수십 번 리플레이해서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만큼 '퀸'이 라이브 에이드 공연장에서 들려준 노래들은 정말 압권이었으니 말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성인이 된 후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서도 뒤늦게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거나, 동성애 코드를 보여주는 많은 장면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겐 불편할 수 있다. 또한 결국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들에, 동정할 여지가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고 표현해낸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만큼은, 방탕했던 '프레디 머큐리'의 삶조차 덮어줄 만큼 탁월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만약 '퀸'의 노래를 좋아한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사운드 특별관 MX‘나 '스크린 X’ 면 더더욱 좋다.

https://youtu.be/sjpGNHPcT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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