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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Oct 16. 2018

스케이트

넘어지기

 꽤 긴 시간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 듯하다. 그 이유야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난 건강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팠고, 매우 괴로웠고, 많은 기운을 소비했다. 단순히 나아지기 위해서.


 건강문제는 내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적인, 물리적인 고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스케이트를 타다 정말 예상하지 못하게 무릎으로 넘어졌고, 무릎뼈가 부러졌고, 꼼짝없이 낫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나는 여러 사건을 직면했는데, 온전한 신체 상태가 아닌 터라 제대로 된 대응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점점 더 일이 꼬여가면서 한편으로 일종의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갔다.


 한국에서 잠시 온 동생이 나를 보며, ‘혹시 다시 못 걷는 게 아닐까?’ 우려할 정도였다. 전문 의학지식을 갖은 분들은 대수롭지 않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일상생활 영위가 자연스럽지 못한 터라 지극히도 우울하게 가라앉아만 갔다.


 다행히 지금은 걷게 되며, 일상의 고마움에 다시금 눈을 떠가는 중이다. 하루하루 감사하고, 무사함이 기쁘다. 그리고 그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배우는데, 데려다주고 지켜보곤 하는데. 내가 참으로 부족하고 자만 가득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성인이 되어 처음 스케이트를 배우면서 지금까지 난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마지막으로 스케이트를 탔던 그 날을 제외하곤. 나는 너무 쉽게 빨리도 배웠다. 스케이트를 타자마자 쓱쓱 잘 달렸고, 뒤로도 자유롭게 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난 무엇보다 배워야 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넘어지는 것’. 그건 넘어져 뼈가 부러지는 그 날까지 내가 배우지 못한 것이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넘어질 듯하다가도 중심을 다시 잡고는 안도하곤 했다. 넘어지며 배우려 들지 않았다. 아플까 봐, 타인에게 우스꽝스럽게 보일까 봐. 그래서 버티는 것, 겉으로 잘 타 보이는 것에만 매진한 듯하다.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지독히도 넘어진다. 금방 일어났는데 또 넘어진다. 그들의 처음을 돌이켜보자면 나와는 무척 달랐다. 스케이트를 몸으로 탄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엉망이었고, 제대로 중심도 잡지 못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빙판 위에서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넘어지는 것에 두려움도 없고,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몸에서부터 중심을 잡아 부드럽게 움직인다.


 어쩌면 넘어지는 법부터 배웠던 그들과 그렇지 못한 나의 차이일지 모른다. 나는 단 한 번 넘어졌고, 부러졌고, 이제는 두렵기까지 하다. 다시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이들은 넘어지는 건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그냥 일어나 유유히 스케이트를 타면 된다. 아마 아이들은 더욱더 스케이트를 잘 타리라. 나는? 다시 빙판 위에 들어설지조차 확신이 없다. 한 번도 넘어져 본 적이 없던 나는 넘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다. 아니, 어떻게 넘어져야 하는지, 어떻게 다시 일어서야 하는지를 몰랐다는 것이 더 맞겠다.


 무엇보다도 넘어지는 법부터 후딱 배워두는 것이 중하더라. 그다음에 어찌 해야 하는지도. 아마 다음에 무엇을 배운다면 실패하는 것부터. 거기서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스케이트는, 그래도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이대로 물러나고프진 다. 아무리 두렵더라도. 무릎이 다 낫는 날, 다시 넣어둔 스케이트를 꺼내 신어보리라, 넘어지리라, 일어나리라.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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