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놀고, 나중에 다 할게
초등학교 방학이 끝나가면 나는 늘 불안에 떨었다. 방학 동안 해야만 했던 숙제 중 하나인 ‘일기 쓰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매번 나는 개학을 하루 이틀 남긴 상태에서 날림으로 일기를 대충대충 쓰곤 했다. 특별할 것도 없이 매일 놀고먹는데 시간을 썼는데, 없는 창의력을 어디서든 쥐 끌어 모아 쏟아부으려 정말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말도 일부러 늘이고 늘여서 쓰기도 하고, 하지 않았던 일들도 슬쩍슬쩍 끼워 넣어 이야기 만들기에 매진했었다.
그런데 당시 일기는 그림도 그리고, 날짜도 쓰고, 심지어 날씨까지 기록하게 되어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가 아니기도 하고, 날씨를 매일 기록하는 습관 따위 있을 리 없는 내게 저 날씨 칸을 채우는 것은 스토리를 만드는 것보다 참으로 고된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들도 날씨를 기억할 일 따위 없는데, 스토리는 만들어도 곧 죽어도 날씨는 만들 생각은 안 했나 보다. 일관성 없는 도덕성이지만 어쨌든 날씨만큼은 머리를 쥐어짜 내거나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기록했다. 모르면 엄마나 아빠, 혹은 주변에 알만한 어른들에게 물었다.
손이 떨어져라 밀린 일기를 쓰면서 나는 늘 후회를 했다.
‘미리미리 좀 해둘걸……’
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루고 미루다 막판에 초인적 힘을 발휘해 어떻게든 끝을 맺거나, 혹은 결국 대충 덮어놓은 상태로 마무리하는 것. 그리고 이런 행태는 잘못되었다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아왔고, 나 스스로도 이런 나의 습관에 대해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비판하고 반성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일 뿐, 다음 방학이 되면 나는 또다시 하던 그대로 또 미루고 미루어 막날에 이르러서야 정신을 차렸다. 매해, 아니 매 학기마다 반복하는 일에 어느새 그냥 나는 무척 게으른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닌가 우려를 갖게 되었다.
성공한 사람은 모두 다 바지런한데, 나는 그렇지 못하니 이미 반 이상은 실패를 안고 가는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말 그대로 루저가 되면 안 되는데 하는 보이지 않는 잠재적 고민을 가슴속에 얹어두고 살아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새 그런 관점은 나 스스로를 인식하는 하나의 틀이 되기도 했다.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
자꾸만 저 프레임에 갇혀버린 나 자신이 한없이 작고 모자라게 느껴지곤 했다. 그리고 성공의 가장 큰 열쇠, 부지런함을 어떻게 습득할 수 있을지 노력 없는 게으른 고민도 했더랬다. 아마 스스로의 자존감을 갖지 못한 데는 나에겐 성공 유전자 중 하나인, 부지런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자아비판이 하나의 축을 이루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하지 못하면서 자꾸만 성공 인자 중 하나라 불리는 부지런함을 배우라고 자신에게 요구하던 행위를 지금은 그만두려 한다. 어차피 나는 빠릿빠릿하게 제때, 아니 혹은 미리미리 일을 다 마쳐두고 검토하는 여유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스트레스받으며 나 자신의 일부, 혹은 성향의 하나를 거부감을 갖고 보지 않으려 한다. 그냥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에 디데이를 넘기지 않고 막판에 능력을 발휘해하는 것 자체에 대해 좀 더 칭찬을 해주고자 한다. 또 한편으론 어쨌든 정해진 시일 안에 해내는 것 자체로도 나름 잘 해내고 있다고, 그런 마음을 가져보련다.
미리 해두지 않고 결국 미룰 거야 뻔한데, 미루며 즐기지 못하고 불안하고 또 스트레스받으며 이도 저도 아니기만 하던 시간들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으려 한다.
'미루면 좀 어때? 어쨌든 제때 끝내면 됐지.'
그리고 그게 나의 방식임을 인정하기로. 어쩌면 부지런함이 성공 인자가 아닐 수도, 혹은 성공이라는 거 자체가 부지런함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 수도 있다. 머리 속에 상상하던 부지런함으로 성공신화를 이룬다는 그런 큰 기대 따위 하지 않을 거다. 그냥 어제도, 오늘도 턱끝에 찰랑거릴정도로 절박함을 접한 후 가까스로 마감을 하며 ‘그래, 이만하면 잘 했어.’이렇게 나에 대한 칭찬을 스스럼없이 해주기로, 그렇게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