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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Jul 11. 2019

달팽이는 간다

생명의 힘, 그것을 믿기에


요 며칠간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거의 매일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와인을 홀짝였던 것 같다. 심지어 와인을 들이켜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날들을 보냈던 것 같다. 근심 걱정 때문에 도무지 잠을 잘 수 없더라. 잠이라는 건 그렇다. 너무 걱정이 되어 머리가 복잡하면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더라.


우리 집에는 큰 개가 산다.

남편과 나는 개를 꽤 오래 키웠던 것 같다. 솔직히 부부싸움을 크게 한바탕 하고 나면, 남편이 나를 데리고 강아지를 함께 보러 갔다. 귀여운 작은 생명체들을 보며 저절로 풀리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나는 더 신경을 많이 써야만 하는 존재 덕분에 혼이 쏙 빠진 채 강아지에 매달리게 되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언제 싸웠는지 잊으며 그렇게 풀어오며 살아온 것 같다.


나는 원래 애견인이었다.

대학 때부터 13년간 함께 살아온 시츄가 간지 올해로 5년이 된 것 같다. 동생과 함께 데려왔던 아이는 너무 똑똑하고 귀여웠는데, 몸이 너무 좋지 않았다. 피부에 병이 있어서 거의 매주 동물병원을 들락였어야 했고, 사료도 채소를 주로 하는 비싼 수입사료만 먹었다. 거의 매일 약을 달고 살았으며 관리가 무척 힘들었다. 그래도 가족 중 누구 하나 불평 없이 아껴주었고, 무엇보다 엄마가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함께 동거 동락해올 수 있었다. 그 아이가 죽던 날, 엄마는 울다 지쳐 거의 쓰러지셨다. 우리 모두 너무 슬퍼 한동안 그 아이의 흔적만 봐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미안한, 아픈 손가락

두 번째로 만난 아이가 바로 남편과 크게 다투고 데려왔던 아이였는데, 이 아이에게는 참으로 큰 죄를 지은 것만 같다. 알래스칸 말라뮤트였던 아이는 처음 아주 작고 귀여운 꼬맹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덩치가 산만 해진 아이는 내가 데리고 산책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훈련소에 정기적으로 가서 훈련도 받고, 몇 주간 훈련을 받은 후에 돌아오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아이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도무지 하울링만은 어쩔 수 없었다. 이름이 늑대였던 아이는 우는 소리도 늑대 같았는데, 하도 주변의 민원이 들어와 키울 수가 없었다. 결국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모님 댁의 넓은 농장과 정원이 있는 시골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더 맘껏 뛰어놀고 행복하게 지냈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역시나 하울링이 꽤나 거슬리는 것이었나 보다. 어느 날 누군가 탄 독약이 들어있던 음식을 먹고 아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고모는 너무 슬퍼 몸져누우셨다.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또 한동안 가족 모두가 슬픔에 잠겨 있었다. 함께 끝까지 하지 못해 미안했고, 보호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슬픈 얼굴의 멍미

래브라도 트리버인 우리 아이는 한국에서 데려와 캐나다로 왔다. 래브라도 트리버가 캐나다의 강아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캐나다의 개가 한국으로 와서 자손을 낳고, 그 자손이 다시 캐나다로 돌아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어쨌든 이 아이는 처음 분양받을 때, 경고성 이야기를 들었다. 관절이 약하니 살이 찌면 안 됩니다. 나는 그런 줄 알았다. 살만 안 찌면 모든 게 다 괜찮을 줄 알았다.

골든 트리버는 웃는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래브라도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생겼다. 그런데 그 얼굴과는 달리, 참으로 발랄한 성격이었다. 좋게 말해서.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생후 2년간은 정말 황소만 한 비글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너무 발랄해서 온갖 가구, 벽지, 물건들을 다 뜯어먹기 일쑤고, 하루라도 망가뜨리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자신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했는데, 자신보다 우리가 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점차 크면서 얌전해지는 듯했는데, 여전히 너무 흥분하면 주체하지 못하는 성향 때문에 가끔 진정시키는데 진이 빠지곤 한다. 그렇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착한 아이라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이다.

그런 멍미가 언제부턴가 다리를 절뚝였다. 왜 절뚝이는 것일까? 유심히 지켜보다가 병원에 갔다. 익숙하지 않은 캐나다의 동물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진단을 받았는데 구태의연한 표현이겠지만 그곳에서 나는 '청천벽력'을 만났다. 아이는 많이 아팠다. 많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아주 많이 아팠다.

작은 강아지들에게나 주로 나타나는 슬개골 탈구라는 것이 양쪽 무릎에 생겼다. 이렇게 큰 개에게서 발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수의사들도 의아해했다. 그리고 이미 관절도 분리현상을 겪고 있었다. 이건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것이라고 하더라. 외부적 요인이라 하기엔 아이는 이미 너무 아팠다. 너무 신나서 꼬리와 함께 골반을 같이 흔들던 강아지가 겪기에 너무 큰 병이라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당장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고, 비싼 수술비에도 불구하고 큰 개를 우리 가족은 수술하기로 했다. 양쪽 무릎 모두 다.


펫 샵의 그늘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첫 번째 강아지도, 지금의 강아지도 이렇게 아파야 하는가? 돌이켜 보면, 나는 강아지들을 모두 펫 샵에서 분양받아왔다. 그래, 펫 샵. 말 그대로 사고파는 곳이다. 그냥 편해서, 아무 생각이 없이. 그게 맞는 것인 줄 알고 그렇게 생명을 물건을 사듯 사서 데리고 왔었다. 가만,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서 온 것일까?

내가 지금 사는 곳은 공식적으론 펫 샵이 없더라. 브리더들에게 직접 분양을 받거나, 아니면 보호소에서 입양을 해오는 것이 문화더라. 어디를 가도 쇼윈도에 강아지들이 전시되어 있지 않더라. 물론 법이 바뀐 지 오래되진 않았다. 몇 해 전 법으로 완전히 금지를 하기 전까지 이곳도 펫 샵이 드물게 있긴 했다. 하지만 정서상 펫 샵에 대한 이미지가 원래 좋지 않기도 했고, 대부분 보호소에서 데려오거나 동물보호협회 등을 통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입양 과정도 생각보다 까다롭다. 매우 많은 정보들을 밝히고 신원을 확인 후에야 강아지를 데려올 수 있다. 함부로 가져갔다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한국에서 살면서 나는 강아지 '순종'이라는 것에 왜 그리 목숨 걸었던가? 그 강아지의 시그니처 생김새가 왜 그렇게 중요했던가? 예쁘게만 생긴 이 아이들의 부모는 과연 누구일까? 이런 유전적인 결함은 어디서 생긴 것일까? 아무 생각 없이 긴 시간 애견인이라고 여기며 살던 나 스스로에게 많이 부끄럽더라. 나는 진정 강아지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펫 샵에서 물건 사듯 그렇게 데려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자괴감과 미안함, 그리고 복잡한 심정 때문에 수술실에 강아지를 넣으며 집으로 오는 길이 무척 힘들더라. 날씨도 이런 내 마음처럼 부슬부슬 비도 오고 흐리기만 하더라. 참으로 희한하게도 화창하기만 하던 여름날 요새는 제법 비가 오고 흐린 날들이 많다. 이것도 자연의 순리에 어긋났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우울하기만 한 기분들이 점점 더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수술을 잘 되겠지? 아이는 괜찮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다리를 수술한 후에 골반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침전해만 가는 중에, 문득 작은 생명체가 문 앞에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느리지만 천천히 조금씩 위로 위로 그렇게 올라가는 힘이 눈에 보이더라. 먼지가 들러붙어있어 처음엔 잘 구별되지 않았는데, 달팽이더라. 비 오는 습한 날이라 밖으로 기어 나온 것 같았다. 힘이 들어 보인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자꾸만 올라가는 그 느린 모습에 문득 생명의 힘에 대한 작은 깨달음이 오더라. 나는 저 작은 것보다 어쩌면 아주 나약하기만 한 더 작은 존재였나 보다.

힘차게 살아가는 생명체에 잠시 투영해본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생명이 살아있는 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을. 돌아온 강아지는 한동안, 아니면 평생을 아마 아프게 살지도 모르겠다. 조심하며 골반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돌보며. 아직 3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생명체와 그 아이의 끝을 힘차게 살아가리라. 걱정보단 최선을. 그게 맞는 것이리라.


강아지를 수술실에 넣고 돌아와 복잡한 마음을 잠시 글로 옮겨본다. 이다지도 나는 무르고, 아다지도 나는 무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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