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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Apr 01.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 38

## 바라나시여 안녕!

  우리는 내일 새벽에 콜카타로 떠나는 기차를 타야 했다. 연축제를 보러 가기 전 참새들이 묵었던 방은 체크 아웃하고  내  방을 반나절 빌리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여 내 방에 넣어 두고  주인장에게 밤 10시 30분, 강가 반대편에 있는 무굴 사라이(Mughal Sarai)역까지 갈 수 있는 택시를 예약해달라고 했다. 주인장은 친절하게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강가의 일출

   흥겨웠던 축제도 저녁이 되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둠과 함께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먹으려고 들른 보나카페는 사람들로 꽉 차 빈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스파이시 식당으로 갔지만 그곳도 중국 단체 관광객으로 소란스러웠다. 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이층 들마루에 앉아 있었다.

 한떼의 사람들이 식당을 빠져나가고 정신없이 움직이던 종업원들의 걸음이 느려졌다. 우리는 일층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속이 불편했다. 감기 기운 탓인지 속은 울렁거리고 미열을 동반한 두통이 나의 웃음을 빼앗아갔다. 먹음직스러운 비빔밥과 백반 그리고 고기덮밥이 나왔다. 푸쉬카르에서 털어버린 고추장이 그리워 주문한 비빔밥은 푸짐했다. 나는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고 나의 기분을 업 시킬 매콤함이 필요했다. 주인장에게 고추장을 더 달라고 했다. 그리곤 먹음직스럽게 비벼진 매콤함 비빔밥을 크게 한 술 떴다.


"먹어야 한다. 먹지 않으면 버틸 수 없고 버티지 못하면 참새들을 지킬 수 없다."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푸짐하고 맛있었다. 옆 탁자에 있던  중국인 하나가 다가오더니 지금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메뉴판을 보아도 어떤 음식인지 몰라 주문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메뉴를 알려주니 엄청 맛있어 보인다고 했다.


"맛있어요?"

"네"


그가 다시 한번 메뉴를 확인하고 자리로 돌아가 일행들과 음식을 주문했다.  낯선 곳에 와서 그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는 일만큼 고생스러운 일도 없다. 바라나시에는 거의 모든 식당에서 Continental Food 를 먹을 수 있다. 델리와 바라나시 정도라면 음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에  만족스런 저녁식사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아이들을 마냥 어린애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필요할 때만
자라게 했다."

하라하라 마하데바(위대한 신이시여!)

 저녁을 먹고 다시 숙소 옥상에 있는 나무 탁자에 둘러앉았다. 밤하늘의 별들은 청순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갑자기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참새들도 나도 낮게 틀어 놓은 음악을 듣는 척했다. 적막한 공기를 뚫고 풀벌레라도 울어주었으면 싶었다.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긴 여행이었고 낯설다는 것만으로도 고단한 여행이었다. 음산한 인도의 겨울을 별 탈 없이 이겨낸 참새들이 고마웠다. 그런대로 잘 버텨준 나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엄마랑 여행 어땠어?"

나는 참새들이 감동적인 말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길 바랐다. 가끔 나는 답을 정해놓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리곤 내가 생각한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아파하고 화를 냈다. 아무도 무대에 오를 생각이 없는데 나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참새들의 대답은 짧았다. 

"좋았어"

"나두"

"그게 다야?"

 나는 내뱉으려던 한숨과 시나리오를 덮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좀 전의 고마움은 잊고 서운함이 밀려왔다. 무엇이 나를 서운하게 하는 걸까? "엄마한테 정말 고마워!" "엄마가 최고야!" 이런 말들을 기대했던 것일까?


"엄마는 어땠어요?"

큰 참새가 적막을 깨고 내게 물었다.

"엄만...... 좋았어!"

"그게 다야?"

 작은 참새가 왜 이렇게 대답이 짧으냐고 책망하듯 물었다. 녀석들도 나름의 시나리오를 써 놓은 모양이었다. 엄마가 근사하게 여행의 감동을 말해주길 바라고 있었나 보다. 나는 웃고 말았다. 내가 지금 사랑하는 아이들과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가슴을 지나간 상처는 영원히 상처로 남을 뿐이다."

시바신

"엄마, 엄마는 혼자 사니까 좋아?"

 작은 참새가 묻고 큰 참새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혼자 사니까 좋으냐고? 참새들을 두고 나와 혼자 생활한지 7개월이 지났다. 우선 나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여유로워졌고 편안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좋았고 무엇보다 꿈을 꿀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참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주중에 참새들을 쫓아다니며 돌본다 해도 항상 참새들 곁에 있을 수 없어 많이 아팠다.


"아직도 엄마가 미워?"

"아니야. 처음엔 엄마가 미웠는데 지금은 괜찮아! 엄마도 엄마 인생이 있잖아"

 작은 참새는 내가 홀로서기를 하고 한동안 말로 나를 아프게 했다. 삐뚤어질 거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엄마도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면 아픈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매몰차게 말했다. "엄마는 벌을 받아야 해!" 그 말이 아프면서도 참새들을 생각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작은 참새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우리 집이었는데 엄마가 다 망쳤다고 원망을 했다. 친구들이 알까 봐 전전긍긍했고 자주 놀러 오던 친구들이 내 안부를 물었다며 짜증을 부리곤 했다. 그러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전화로 매달렸다. 답을 해주고 길을 알려 주면 고맙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왜 전화로 이런 얘길 해야 하냐고 성질을 부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안해!" 란 말만 했다.


"난 지금 엄마가 훨씬 보기 좋아!"

 큰 참새가 내 손을 잡았다. 녀석은 나의 든든한 응원군이었다. 나의 홀로서기가 결정되자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그런 큰 참새의 행동은 나를 놀라고 아프게 했다.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는 녀석이 대견하면서도 가슴속에 묻고 있는 응어리를 드러내지 않아 또 가슴이 아팠다. 매일 매일 전화를 하고 엄마 아빠가 헤어졌어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녀석이었다.

 

어디서든

강하고 떳떳하게

어느 누구보다도 화사하게

늦은 개화를 하고 있는 당신

부디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주석요.


 작년 겨울 큰 참새가 뜬금없이 보내 온 편지였다. 나는 편지를 읽고 고마워서 웃고 미안해서 울었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여전히 아쉬워!"

"그게 뭘까?"

"엄마만큼 우리말을 잘 들어주고 명쾌하게 답을 주는 사람은  없잖아. 내 얘기를 들어줄 어른이 없는 건 슬픈 일이야. 친구랑은 좀 다르거든!"

"그렇구나!"

하레하레 마하데브(위대한 신이시여!)

 나는 참새들을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내 키만큼 자란 녀석들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아이들은 아무리 성숙한 듯해도  나이만큼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을 마냥 어린애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필요할 때만 자라게 했다. 

" 너는 아직 어려"라고 말하다가 "너도 이젠 다 컸잖아!"라고 말해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나의 홀로서기를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기적인 나는 갑자기 아이들을 다 자란 어른처럼 대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사과를 하고 싶었다. 크게 싸운것은 아니지만 참새들과 화해를 하고 아이들 잘못이 아니라고 모든것은 엄마 아빠의 잘못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참새들은 딸들이라 그런지 같은 여자인 나를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노력일 뿐이었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도 내 감정과 이성의 충돌로 힘들때가 있다. 참새들이 아니라고 해도  가슴을 지나간 상처는 영원히 상처로 남을 뿐이다.


"엄마가 미안해! "

"응"

"그래도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우리도 엄마 딸이어서 다행이야!"

나는 이제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다. 무엇으로 살아야 할 지도 알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름다운 바라나시여 안녕!

삶의 열정이 넘치는 바라나시여 안녕!

살아있는 도시 바라나시여 안녕!

바라나시의 강가

밤 10시 30분!

 6일 치 하고 반나절 방값을 계산하고 택시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택시는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우리를 태우고 가기로 했던 택시는 회사에 들어가 있었다. 주인장은 전화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택시는 올 수 없었다. 주인장은 우리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를 오토릭샤가 있는 곳까지 안내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릭샤가 우리를 안전하게 무굴 사라이역 까지 데려다주길 바랄 뿐이었다. 바라나시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를 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무굴 사라이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를 예매했었다. 참새들을 데리고 늦은 밤길을 달려야 하는 일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릭샤가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릭샤왈라는 훌륭한 운전사였다. 한 시간을 달렸는데도 금방 온 것 같았다. 밤바람이 매우 찼다. 다시 어둠을 뚫고 바라나시까지 돌아갈 락샤왈라를 생각해 450루피에 짜이 값 10루피를 얹어주었다.


 우리는 바라나시를 떠났다. 라즈 가트 근처에 있는 (Raj ghat ) 말비야  다리(Malviya Bridge)  아래로 어머니의 강, 강가가 밤의 기운을 안고 꿈틀거렸다. 배를 타고 짜이를 마시고 사람들 속에서 나를 만난 곳이었다. 참새들과 태양의 하루를 지켜보며 우리들의 하루를 이야기했었다. 감기 기운이 떠나지 않아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려다 내가 안아야 할 아이들을 위해 품을 내주고 내가 엄마임을 기억하게 한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바라나시여 안녕!

삶의 열정이 넘치는 바라나시여 안녕!

살아있는 도시 바라나시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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