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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Apr 01.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 37

##  날고 싶다

 "사공이 노를 젓지 않으니 배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노를 젓지 않는 사공은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어김없이 강가의 일출을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바라나시에 와서 아침저녁 들인 뱃삯이 만만치 않다. 한 시간에 200루피! 그러니까 하루에 400루피가 뱃삯으로 나갔다.

 어느 날은 과묵한 사공을 만나 침묵의 강가를 밀어내는 노 젓는 소리를 들었고, 어느 날은 호기심 많은 사공을 만나 수다스러운 아침을 맞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게으른 사공을 만나 언쟁을 벌인적도 있었다. 사람이 같은 일을 해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그 삶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으른 뱃사공은 꾀죄죄한 행색으로 배를 몰고 멀리 나가지 않고 가트 근방에서  맴돌았다. 사공이 노를 젓지 않으니 배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노를 젓지 않는 사공은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나의 좀 더 멀리 나가자는 부탁 같은 협박은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사공은 겨우겨우 40분을 버티더니 가트에 배를 댔다. 나는 배에서 내려 잔꾀를 부린 사공이 괘씸하여 200루피를 주고 50루피를 거슬러 달라고 했다. 사공은 붉으락푸르락 한 얼굴로 내게 성질을 부렸다. 우리는 신성한 아침부터 50루피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다. 상황은 실랑이를 지켜보던 다른 사공들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사공들이 게으른 사공에게 화를 내며 당장  50루피를 내주라고 소리를 질렀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면 돈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50루피를 거슬러 받고 짜이 가게로 향하면서 공정성과 객관성은 냉정함을 포함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랑을 글로 배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생각의 감옥에 갇힌 죄수 같다."

 가트가 시끌벅적했다. 어제와는 다른 왁자지껄함이 동네잔치라도 벌이는 듯했다. 무슨 일일까?

 1월 14일!

오늘은 연축제  날이었다. 인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 14일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늘 높이 연을 띄우며 축제를 즐긴다. 희한하게도 14일 이후에는 날씨도 풀려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 따뜻해진다고 한다. 축제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나도 괜히 들떠 신이 났다. 숙소에 돌아오니 숙소가 떠나갈 듯 신나는 댄스음악으로 들썩였다. 인도 음악 특유의 역동적이고 심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람들을 깨웠다. 참새들 옆 방에 묵고 있던 한국 여인이 내게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물었다.


"오늘은 연축제 날이에에요!"

"아, 그렇군요!"


 들썩거리는 몸을 흔들며 "어서 나오세요. 우리 함께 축제를 즐겨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모나리자에서 아침을 먹고 가트로 나가는 길! 집집마다 주인장의 취향에 맞게 크게 틀어 놓은 음악이 골목으로 흘러나왔다. 오늘만큼은 소음에 관대한 인도를 너그럽게 봐주고 함께 즐기고 싶었다.


 다사슈와메트 가트는 깨끗하게 물청소가 되어 있었다. 반짝거리는 제기들이 햇빛에  나와 있고 저녁 푸자를 하던 사제 한 명이 홀로 푸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코브라의 가슴 안에선 태양에서 불씨를 얻은 듯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직사각형의 흰 대리석 단 위에서 푸자가 진행되고 눈부신 아침 태양은 사제의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독특한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모델이 되어 사진을  찍으라고  은빛 접시를 내밀었다.  분장한 모습은 깜찍했고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모습은 당돌하다 못해 당당했다. 뚜껑이 있는 동그란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소년들은 여행자들을 쫓아다니며 코브라를 보겠느냐고 물었다. 싫다고 하면 뚜껑을 살짝 열고 그 안에 똬리를 튼 코브라를 내밀었다. 깜짝 놀라 짧은 비명을 지르고 뒤로 물러서면 그 모습을 보고 저희들끼리 킬킬거렸다.

 

가트의 계단을 따라 앉아 있는 걸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한센병으로 손발이 뭉그러진 사람도 있고 갓난아기를 안은 여인과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백발의 노인도 있었다. 거적때기 같은 천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왜 굶주린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저들은 왜 지붕도 없는 길 위에 앉아 있는 것일까? 그들은 저녁이 되면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누워 머리끝까지 거적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어른들이야 그렇다 쳐도 깊고 맑은 눈을 가진 저 아이들은 무슨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일까?


 걸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동전이 가득 든 주머니를 든 사람이 걸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선을 하고 있었다. 쌀을 한 줌씩 나눠주는 사람도 있고, 옷을 나눠주는 사람도 있다. 매일 아침 가트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나눔으로써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눔의 삶! 우리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라고 말하면서도 생각으로만 남는 사랑이 있다. 그들과 가까이하고 싶지만 단단하지 않은 마음은 쓸데없는 동정과 두려움을 만들어 고개를 돌리게 한다. 나는 그들과 마주하는 것이 불편하다. 가슴이 아려와 와락 눈물이 쏟아질 것 같고, 행여나 잘못 다가섰다가 그들을 다치게 할까 무섭기도 하다. 사랑을 글로 배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생각의 감옥에 갇힌 죄수 같다. 인도의 걸인들에게 몇 번 박시시(보시)를 했다는 것으로 면죄되는 일이 아니었다.


"기억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이다.
나는 죽어가는 줄 모르게 이 순간을 살고 싶다."  


 가트에는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메인 가트에는 경찰들이 나와 있었고 확성기에서는 소지품을 잘 관리하라는 방송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어머니품에 안기려는 많은 사람들은 혼잡한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강가에 몸을 담그고 젖은 몸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문 사진사들은 돈을 받고 어머니 품에 안긴 사람들을 사진기에 담고 그 자리에서 현상해 주었다. 활기 넘치는 사람들로 인해 살아있는 강가를 만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니카르니카 가트에서는 망자의 승천을 위한 불이 꺼지지 않았다. 흔히 사람들은 바라나시를 생과 사가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삶과 죽음의 공존! 우리는 생명을 얻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는 순간을 산다. 순간이었으나, 삶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억이 되고 내가 되어 가는 지금에 살고 있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려는 것은 욕심이다. 그것은 내 몫이 아니라 나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몫이다. 순간은 그저 순간일 뿐이다. 기억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이다. 나는 죽어가는 줄 모르게 이 순간을 살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나를 지키는 방종이 아닌 자유이다. "

 가트의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연줄을 재빠르게 낚아채며 맨발로 뛰어다녔다. 그때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바람을 치는 연들 이 하늘 높이 올랐다. 균형을 잃거나 바람을 타지 못한 연들은 인정사정없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아이들은 연이 떨어진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리곤 다시 연줄을 묶고 또 한 번의 화려한 비행을 보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었다. 가트의 계단에 앉아 있던 걸인들의 아이들은 누군가 버리고 간 찢어진 연에 연줄을 매달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옥상에 올라가 연을 날렸다. 좀 더 높은 곳에서 하늘을 만나고 싶어 했다. 집집마다 옥상에는 삼삼오오 짝을 이룬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고개를 쳐들고 바람의 방향을 읽고 있었다. 숙소 옥상은 사방이 철망으로 둘러져 있었다. 철망 사이로 보이는 이웃 옥상에는 십여 마리의 원숭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연을 날리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연 날리는 모습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근처에 있는 카페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연이다"

"와, 진짜 많다."

챔새들이 올려다본 하늘엔 까만 점으로 변한 연들 이 바람을 따라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연들은 좋겠다. 마음대로 하늘을 날 수 있어서"

작은 참새가 말했다.

"마음대로는 아니지.  연줄을 끊어야 마음대로 난다고 할 수 있지!"

큰 참새가 세상을 다 아는 어른처럼 말했다. " 연줄을 끊어야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랬다. 하늘을 날고 있는 수많은 연들은 사람들의 손에 잡혀 있었다.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방향을 바꾸고 연줄이 풀리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그것을 거부하면 남는 것은 추락뿐이었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연줄을 끊고 온전히 바람에 나를 맡긴 채 날고 싶다. 날개가 있다면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힘차게 날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나를 지키는 방종이 아닌 자유이다.


"와! 나도 날고 싶다."

큰 참새가 길게 기지개를 켜며 소리쳤다.

"나도 날고 싶다."

작은 참새는 날갯짓을 하듯 두 팔을 벌리고 옥상 안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엄마도 날고 싶다."

나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올렸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깔깔거렸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며 하루가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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