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강 Mar 30.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36

## 나는 할 수 있어!

  "상대를 믿지 않으면 상대도 그걸 알고 진실로 나를 대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서 시작된 일인지는 모르겠다. 델리 인 것도 같고 푸쉬카르 인 것도 같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작은  참새가 한 달 전쯤 본 사주카페 얘기를 했고,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면서도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지 않았다고 했다.

  학교 축제 때 친구들 타로점을 봐 줄만큼 타로에 관심이 많은 큰 참새가 점은 믿을게 못 된다고 거들었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인도에서 점을 볼까?"

"그래그래 그러면 되겠다."

 참새들은 얼싸안고 신이 나서 나를 보챘다.  하지만 낯선 인도에  내가 아는 점술가가 있을 리 만무했다. 참새들에게 정말 점을 보고 싶은지 다시 물었다. 대답은 빠르고 간단했다.

"응"


옴 바바의 집에 걸려 있는 달력
"옴 바바는 내 몸에 새겨진 내 인생의 지도를 읽고 있었다."


 아침에 배를 타고 일출을 보고 나서 유명한 점술가를 아는 가이드를 앞세워  "옴 하우스 로지(OM HOUSE LODGE)"를 찾아갔다. 예전에는 여행 가이드북에 실릴 만큼 유명했던 곳인데 지금은 아는 사람만 찾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사람들이 가트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로 이동하면서  영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영업을 하는지  묻고 싶을 만큼 허름하고 기운 빠진 음침한 게스트 하우스였다. 밖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니 가이드와 친분이 있는 주인장이 이층에서 빼꼼히 내다보고는 반갑게 문을 열어주었다.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가니 일흔이 넘은 노파가 마중을 했다. 불룩한 배 위로 흘러내린 하얀 쿠르타(Kurta- 헐렁한 셔츠)와 무릎이 나온 파자마(Pajama -헐렁한 바지)가 잠자리에서 금방 일어난 것 같았다.


 노파는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고 따뜻한 커피를 내 왔다. 한 달 전에 부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가이드가 노파의 등을 토닥였다. 나는 낯선 집안을 두리번거리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커피잔을 들었다. 점을 제대로 보긴 보는 건가? 앞니 빠진 얼굴로 환하게 웃는 옴 바바(OM BABA- 옴 하우스의 늙은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옴 바바는 목욕을 하고 푸자를 올려야 하니 11시쯤 다시 오라고 했다.

"유명한 점술가인가요?"

"원래는 옴 바바의 구루(선생)가 더 유명한데 세상을 떠났어요. 옴 바바도 구루에게 10년 정도 배워 잘 맞춰요."

 나를 맡기려면 상대를 믿어야 한다. 상대를 믿지 않으면 상대도 그걸 알고 진실로 나를 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옴 바바를 믿어보기로 했다.


 참새들을 깨우고 약속시간보다 일찍 옴 하우스 로지를 다시 찾았다. 옴 바바는 조카딸과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침식사라 봐야 짜파티를 다히를 찍어 먹는 것이었다. 우리는 옴 바바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식사를 마친 조카딸이 짜이를 내왔다. 옴 바바는 바나라스 힌두대학 경영학과에  다니는 조카딸을 자랑했다. 장학금을 받을 만큼 공부를 잘하는 21살의 처녀였는데 야물게 생긴 동그란 얼굴에서 똑 부러진 성격이 드러났다.


 인도에서는 점성술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높다. 베다시대부터 내려온 비기에  들어간다. 점성술 교본인 브리하트 파라사르 호라 사스트라(Brihat Parasar Hora Sastra)를 참고로 한다. 정사각형 안에  또 하나의 정사각형을 그려 넣는 것으로 시작한다. 12개의 구획으로 나누어 태양계 행성을 배열하고 개인의  사주를 배열하여  세상과 인생사를 예고한다.

  작은 참새가 먼저 옴 바바 앞에 앉았다. 내가 수첩에 노파가 그린 그림을 그리자 친절하게 12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 주었다. 참새가 생년월일시를 대자 옴 바바는 작은 참새의 손금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을 풀기 시작했다.


 "작은 참새는 생각이 많다. 그래서 변덕스럽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대신에 코브라처럼 천천히 가지만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본다. 체력이 좋고 판단력과 결정력이 좋다. 움직이는 직업을 가지고 결혼은 늦게 한다. 특이한 것은 천 명 중에 한 명 있는 손금을 타고나 지지자가 많다. 하는 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

 

 작은 참새는 옴 바바의 말을 알아듣고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옴 바바는 중간중간 큰 참새의 손금과 작은 참새의 손금을 비교하여 보여주었다. 두 녀석이 많이 다르다고 했다. 글쎄 얼마나 맞는 것일까? 지나온 시간은 확인할 수 있으나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지나온 시간이 대충 맞아 용하다고 할 뿐이었다. 작은 참새는 만족한 듯했다. 신체 중에 어디가 약한지 어떻게 해야 건강해지는지, 결혼하는 나이와 자녀 수, 참새의 직업과 배우자의 직업, 엄마를 보살피려는 마음까지 들여다보았다. 나쁜 것보단 좋은 것이 많아 더 만족스러운 점괘였다.  


 큰 참새의 손금을 보던 옴 바바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깜짝 놀라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있던 자세를 바로 잡았다. 노파는  작은 소리로 내게 물었다. "최근에 혼자가 되었나요?" 나는 얕은 신음을 내뱉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 참새 손금에 나타나 있단다. 하나였던 손금이 최근에 둘로 갈라져 있다고 했다. 난 몰라도 좋을 것을 알아버린 옴 바바가 괜스레 야속했다.


"큰 참새가 엄마를 굉장히 많이 좋아하고 신뢰한다. 화를 잘 내지 않는데 한 번 화를 내면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큰 참새는 물가를 좋아한다. 영적 지식이 풍부하고 스터디를 좋아하며 예술적 소양이 많다. 자연친화적이고 자유를 즐기려 한다. 그래서 구속받기 싫어하고 결혼 보단 우정을  더 중요시한다. 몸이 약한데 몸에서 원하는 것이 아닌 머리에서 원하는 것을 먹어서 그렇다.  자꾸만 "나는 약해 나는 약해"라고 말하는데 결코 약하지 않다. 사람을 믿지 않아 쉽게 정을 주지 않는다. 손바닥에 물고기 모양이 많아 창의적이고 독특하다. "


  내가 알고 큰 참새를 정확히 말하고 있었다. 큰 참새는 항상 행운이 따라다닌다고 했다. 작은 참새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궁금함을 해결해주고 흐트러진 것을 바로 잡는 방법까지 일러 주었다.  큰 참새는  '나는 선생님을 믿어요' 란 표정으로 옴 바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단소리는 듣기 좋고 쓴소리는 듣기 싫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데 옴 바바는 쓴소리보다는 단소리를 기분 좋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듣는 사람도 부담이 없고 편안했다.


 옴 바바는 참새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참새들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렇구나! 참새들은 자신이 지금 꿈을 향해 잘 가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다. 하지만 삶이란 게 하고 싶은 일 보다 해야 할 일을 선택하게 한다. 참새들은 옴 바바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옴 바바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옴 바바를 너무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 뭐가 저리도 궁금할까? 미래에 대한 불안이 끝없는 질문을 만드는 거 같았다.


'나는 강한 사람이고 싶지 않아! 나도 기댈 수 있는 어깨를 갖고 싶어!'


"그만! 알고 싶은 걸 다 물어보다가 오늘이 다 가겠어."

 옴 바바는 허허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게 손을 내밀 어보라고 했다. 나는 점 같은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을 들키는 것도 싫고 내일을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명확하지 않은 내일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오지 않은 시간들은 열리지 않은 길과 같은 것이다. 그 길을 내는 것도 내 몫이고 길 위에 서 있는 것도 나다.

 옴 바바는 손바닥을 펴 내게 내밀었다.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손을 주고 말았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옴 바바가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나요?"하고 물었다. 오 바바의 질문에 놀란 참새들이 나보다 먼저 대답을 했다. 신기했다. 옴 바바는 내 몸에 새겨진 내 인생의 지도를 읽고 있었다.

갑자기 옴 바바가 참새들에게 내 손바닥을 눌러보라고 했다. 참새들이 오 바바가 시키는 대로 내 손바닥 한가운데를 눌렀다.


"움 푹 들어갔어요."

"아주 단단해요"


 참새들이 말했고 옴 바바가 대답을 했다.

" 너희 엄마는 아주 강한 사람이다. 어떤 아픔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안고 가는 사람이다. 너희  엄마는 몇 번을 넘어질 뻔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어" 주먹을 꼭 쥐고 혼자서 일어났다. 혼자의 힘으로 공부를 하고 여기까지 왔다. "

 후련하다고 해야 할까? 이 먼 이국땅에서 내 맘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 반갑다고 해야 할까?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그러면서 입안에서 맴도는 말이 있었다.


'나는 강한 사람이고 싶지 않아! 나도 기댈 수 있는 어깨를 갖고 싶어!'


 너희는 걱정할 거 없다. 문제가 생기면 "엄마"를 부르면 된다. 너희 엄마는 강하고 현명하기 때문에 너희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노파의 말을 들은 작은 참새가 아련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우리 엄마!" 하면서 내게 안겼다. 큰 참새는 든든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난 언제나 엄마를 믿어!" 하며 내 등을 두드렸다. 노파가 내게 궁금한 게 없냐고 물었다. 묻자고 들면 궁금한 것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궁금하지 않은 척하며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요?"

 옴 바바는 그걸 왜 걱정하냐고 반문했다. "당신이 일을 찾는 게 아니라 일이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해도 누구보다 잘할 것입니다. 당신은 3년 안에 집을 살 것입니다. 만약 그리 되지 않으면 내게 전화하세요. 내 이름을 걸고 당신의 내일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옴 바바의 확신에 찬 점괘에 기분 좋게 웃었다. 나는 옴 바바의 말을 믿고 싶었다.

 우리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


 참새들은 두 시간 여의 만남에 큰 의미를 두고 흡족해했다. 옴 바바에게 얼마를 주면 되느냐 물었더니 주고 싶은 만큼 달란다. 정말 무서운 말이지 않은가! 정해진 금액도 없이 알아서 달라는 것만큼 곤란한 값이 없다. 나는 참새들이 만족해하는 모습이 좋아 600루피와 1루피 동전을 책 위에 올려놓았다. 1루피는 존경의 뜻을 표할 때 사용된다.  "나는 당신의 말을 믿습니다. " 란 뜻이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에 나선 길이었다. 하지만 71살의 옴 바바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점괘는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했다. 그는 점을 본다기 보다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부모에게 감사하고 부모를 믿어라. 네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너는 행운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 옴 바바의 마음이 고마웠다. 우리는 "나마스떼" 인사를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구비구비 좁은 골목을 걸어 나왔다. 참새들은 깔깔거리며 옴 바바의 말에 살을 붙여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통역을 해 준 친절한 가이드는 볼일이 있다고 가고 우리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익숙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가볍게 점심을 먹고 서점으로 향했다. 여행에서 서점에 들르는 것은 색다른 재미가 있다. 두루가 쿤 근처에 있는 필그림 북 하우스(Pilgrims Book House)는 여름에도 들러 큰 참새를 위한 신화집과 요리책 그리고 명상음반 두 개를 샀던 곳이다. 순례자란 뜻을 가진 'Pilgrims" 이란 서점 이름 답게 순례자를 위한 명상서적이나 음반을 판매하고 있다. 서점에서 자체적으로 출판되는 책들도 있어 가격이 싸고 볼거리가 다양하다.  꼭 책을 구입할 목적이 아니라도 나들이 삼아 들러보는 것도 좋다.


  고돌리아 사거리에 있는 인디카 북(Indica books) 서점은  필그림 북 하우스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담한 이층 건물에 먼지 쌓인 책을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작은 참새가 우연히 한글판 한.불사전을 발견하고 " 헐~~대박!"을 연발했다. 큰 참새는 새로운 타로카드와 컬러링 북에 관심을 보였다. 서점에 오면 참새들에게 영문판 어린 왕자를 한 권씩 선물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서점에는 없었다. 어쩔까 아쉬워하고 있는데 작은 참새가 영문판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골랐다. 얼마 전에 읽었는데  감동적이었단다.  "걸리버 여행기" 도 읽고 싶다고 했다. 고서점에 온 듯한 쾌쾌한 냄새와 색 바랜 책장을 넘기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냈다.  


 "거침없이 오너라. 내 너를 두려움 없이 맞으리라."

 감기 기운이 떨어지지 않아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한 숨 자고 일어나 강가로 나갔다. 강가에 어둠이 내리고 붉게 물든 하늘이 우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강가에 작은 배들은 시간을 낚는 강태공들을 태우고 유유히 떠 다녔다. 우리는 배를 타고 반대편으로 갔다. 물이 불어났던 여름에는 볼 수 없었던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강을 건너 온 사람들은 짝을 지어 모래사장을 거닐거나 장난을 치며 웃고 있었다. 큰 참새와 나는 서로의 손을 잡고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내 손을 꼭 잡은 큰 참새의 가녀린 손이 내가 엄마라는 것을 기억하게 했다. 작은 참새는 두 팔을 벌리고 지는 태양을 마주하고 섰다가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엄마!"

"응"

 너희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엄마가 대답하리라 다짐했다. 낯선 곳에 대한 순간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낯선 곳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설렘에 가슴은 뛰고 얼굴은 석양에 붉게 물들었다. 하루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 오고 있는 것이리라. 하루를 보내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리라. 지는 태양을 보며 어떤 모습으로 내게 올 지 모르는 내일을 향해 "거침없이 오너라. 내 너를 두려움 없이 맞으리라." 외쳤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3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