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던 우리가 함께라는 것을 기억하렴!
우리는 마더 하우스에서 돌아오는 길에 조금 색다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사서 방안에서 작은 파티를 하기로 했다. 우선은 생과일주스로 목을 축이고 무엇을 먹을지 의논했다. 참새들이 제일 좋아하는 탄두리 치킨, 내가 좋아하는 모모(만두), 약간의 과자, 인도 여행에서 늘 우리와 함께 했던 탄산음료 그리고 구아바와 오렌지,차꾸를 샀다. 참새들이 먼저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뉴 마켓으로 발길을 돌렸다. 참새들이 씻는 동안 살 것이 있었다.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이곳은 골목마다 같은 업종의 가게들이 모여 있다. 화훼, 정육, 채소 , 과일 , 일회용품, 차, 식료품 등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었다. 나는 선물용 홍차를 600g 사서 100g씩 소포장했다. 인도에서는 차를 사서 원하는 개수만큼 나눠 포장할 수 있다. 이쁘게 포장되어 나오는 상품보다 저렴하기도 하고 필요한 만큼 개수를 정할 수 있어 좋다.
풍성하고 신선한 채소 가게와 닭을 직접 잡아 비릿하고 구역질 나는 정육 가게를 지나 제법 큰 주류점이 밌는 큰길로 나왔다. 인도 사람들은 술은 마음을 탁하게 하여 사람의 내면에 있는 신을 잠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술보단 마약성분이 있는 방라시나 잎담배를 즐기는 것 같다. 이슬람교는 술을 금지하고 힌두교 역시 술을 즐기지 않아서 인도에서 술 취해 시끄럽게 떠들거나 비틀거리는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표면적으로는 주류 판매를 금지하고 있지만 고급 술집도 있고 게스트 하우스나 레스토랑에 부탁하면 술을 마실 수 있다.
숙소 앞에서 초민과 볶음밥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주인장에게 접시와 컵 그리고 포크를 부탁했다.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우리들은 작은 파티를 열었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노래했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던 우리가 함께라는 것을 기억하렴!
우리는 깔리 여신의 붉은 피 속에 갇힌 듯했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 마더 테레사가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한 죽음을 기다리는 집(Home for sick and Dying Destitutes)에 가기로 했다. 콜카타의 수호신이라는 깔리 여신이 있는 깔리 사원도 들르기로 했다.
방값을 치르고 배낭을 맡긴 후 숙소를 나섰다.
사다르 스트리트에서 초우링기 거리를 4km 정도 곧장 가면 깔리 사원이 있다. 우리는 70루피를 주고 택시를 탔다. 깔리 사원 앞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눈을 팔다가는 어디로 휩쓸려 가는 줄도 모르게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 있었다. 검은 얼굴에 빨간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린 깔리 여신상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흉측하기도 했다. 가게마다 목이 잘린 듯한 깔리 여신상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깔리 여신의 붉은 피 속에 갇힌 듯했다.
저들은 미치고 싶은 것일까, 미친 것일까?
우리가 신을 부른 걸까, 신이 우리를 부른 걸까?
깔리 사원은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입구에 신발을 맡기고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들어갔다. 밀고 밀리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빨리 깔리 여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좁은 입구를 통과하고 사 원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 전체가 붉은빛을 띠고 축복을 상징한다는 색실이 정신없이 엉켜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매달려 있다. 바닥은 어제저녁 설탕물을 쏟은 것처럼 심하게 끈적거리고 알 수 없는 오물들이 발바닥을 자극했다. 벌떼처럼 왕왕거리며 사원 안을 쏘다니는 사람들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성소 뒤편에 있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풍요의 나무"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미친 사람들 같아!"
작은 참새가 말했다.
"미친 거야!"
큰 참새가 말했다.
저들은 미치고 싶은 것일까, 미친 것일까? 우리가 신을 부른 걸까, 신이 우리를 부른 걸까?
참새들은 잔뜩 인상을 쓰고 뭐에 홀린 듯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컴컴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은 흥분 아니 광분한 듯했다. 지성소 안을 꽉 메운 사람들은 깔리 여신 앞에 가기 위해 사정없이 앞사람을 밀어댔다. 우리는 커다란 파도에 휩쓸리듯 깔리 여신 앞으로 밀려갔다.
"마하 깔리(Maha Kali)"
사람들은 검은 돌로 된 신상에 제물을 던지며 깔리 여신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깔리 여신이 있는 곳은 서너 평 정도의 사각형 공간이 1.5m 정도 높이의 대리석으로 빙 둘러져 있었다. 도대체 이들을 이렇게 광분하게 하는 깔리는 누구인가?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희생제의가 사라진 힌두교지만 피를 좋아하는 깔리 사원의 깔리 여신을 위한 희생제의은 매일 아침 열린다. 소원을 가장 빨리 들어준다는 믿음으로 많은 신자들이 예배를 드린다. 붉은 혓바닥을 길게 뽑아 내민 깔리 여신은 악마들의 목을 베어 목에 걸고 있다. 힌두교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린 스와미 비베카난다의 스승 위대한 슈리 라마 크리슈나 파라마함사(Shri Ramakrishna Paramahamsa)는 이곳의 승려가 되어 깔리 여신을 숭배하고(1855년) 후에 깨달음을 얻었다.
지성소 안에는 두 개의 단두대가 있다. 큰 것은 1년에 한 번 있는 소 희생제를 위한 것이고, 작은 것은 매일 치러지는 희생제의 양이나 염소의 목을 자르기 위한 것이다. 희생제는 먼저 제물을 물로 씻고 꽃으로 장식한 후 푸자를 치르고 제물의 머리를 단두대에 넣고는 단칼에 목을 내리친다. 제주는 제물의 피를 이마와 콧등에 찍어 바른다.
수많은 제물들의 목을 내리치고 오랜 시간을 지나왔을 단두대는 덕지덕지 오물이 눌어붙은 것처럼 보였다. 시커먼 단두대에 흘러내린 붉은 피!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다. 피를 본 사람들은 제 목이 잘려 피가 흘러나온 것처럼 광분했으리라.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왔다.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피는 생명이다. 성경에서도 피로 시작해 피로 끝나지 않던가! 창세기 아벨의 피가 있었고 아브라함이 모리산에서 바친 양의 피,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어린양의 피, 레위기의 희생제의 등 종교에서 피는 생명인 동시에 죽음이며 피로써 죄를 씻는 정결의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깔리 여신을 위한 희생제의가 다를 것도 이상할 것도 없었다. 피로써 인간의 죄를 사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사람들!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양이나 염소가 아닌 죄를 짓고 단두대에 목을 넣은 나였다. 내가 새로 태어나기 위해 다른 생명의 피를 거두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인간의 이기심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참새들도 지쳐 보였다. 온몸에 기가 빠진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신발을 맡긴 값으로 10 루피를 주고 좁은 골목을 걸어나왔다. 힌두교의 제례에 쓰이는 다양한 도구들과 신상 그리고 화려한 꽃들이 골목에 가득했다. 화려 한 사리를 차려입은 여인들은 지나가는 우리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사진기를 들자 수줍은 듯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도도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낯선 이방인에게 호의적인 눈빛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상인들은 날카로웠다. 빨간 물감을 파는 상인은 사진을 찍게 해줄 테니 돈을 달라고 했다. 내가 싫다고 하자 저리 꺼지라는 식으로 정색을 하며 화를 냈다. 걸인들도 돈을 달라고 거칠게 손을 내밀었다. 돈을 주지 않자 내 사진기를 툭툭 치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엄마, 저기 이상한 게 있어!"
"정말 저게 뭐지? 움직이는 것 같은데"
도로 한편에 천을 뒤집어쓴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해서 지켜보기로 했다. 옆에서는 두 남자가 도로에 커다란 쇠말뚝을 박고 무언가를 설치하고 있었다. 30분 정도 웅크리고 있던 것이 정체를 드러냈다. 검은 얼굴에 납작코가 인상적인 여자아이가 덮개를 벗어던지며 일어났다. 그것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쇼였다. 잠시 후 소녀가 장대를 들고 위태로운 줄타기를 시작했다. 소녀가 안전하게 줄을 건널 때마다 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구경꾼들에게 빈 바구니를 내밀었다. 우리는 바구니에 10 루피 씩을 넣었다. 위태로운 줄타기! 인생도 연습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녀처럼 눈을 가리고도 외줄을 건널 수 있도록 사랑도 결혼도 연습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몸으로 배우는 사랑이 필요하다.
죽음을 기다리는 집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마더 하우스에서 발급받은 봉사활동 등록증을 내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등록증이 없어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허락받았다. 봉사활동을 하려면 월. 수. 금요일 오후 3시부터 열리는 마더 하우스 근처 Shishu Bhavan에서 접수를 한 후, 봉사자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마더 하우스에서 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그러면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 우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중국인 젊은이들과 미국 여성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손을 씻고 앞치마를 입었다. 한 쪽에서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빨래를 개고 있었다. 입구 안쪽으로 침대가 정렬되어 있고 사람들이 눕거나 앉아 있었다. 깡마른 몸에 궹한 눈을 한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을 보는 것이 너무 아프다. 아파서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눈을 피해 이층으로 올라가 멀리 피의 깔리 사원을 바라보다 돌아 나왔다. 봉사활동할 준비도 안된 사람이 관광하듯 오래 머룰수는 없었다. 그것은 환우에게도 봉사자에게도 그리고 관계자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엄마, 우리 다음엔 봉사활동을 하러 콜카타에 오자"
"나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왠지 많이 미안하더라구!"
"인도를 다시 오자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참새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래 다음에 꼭 다시 와서 사랑으로 이들을 만나자. 다시 인도에 올 이유가 생긴 것인가? 참새들도 나도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다시 인도에 와야 할 이유를 가지게 되었다.
언제나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 하지만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길을 몰라 망설이고 그 길을 찾아갈 용기가 없어 망설이다 일시적 충동이 되곤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가복음 12장 31절 )
행동으로 실천되지 않는 마음은 공허하다. 봉사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설령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알아 그 길에 들어선다 해도 마더 테레사와 같이 사회의 짐이 되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이들을 마음으로 기꺼이 안을 수 있을까?
세상에는 분명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함께 나누는 삶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들이다. 뉴스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이들을 보면 내 마음도 훈훈해진다. 우리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먼저 따뜻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나 역시 생각을 입으로는 옮기면서 몸을 숙이지 않는 뻣뻣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진정으로 봉사를 원하고 있는가? 몸으로 배우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따뜻해질 것 같다.
돌아갈 집이 있고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뉴마켓 광장으로 갔다. 비행기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광장에는 아이들이 화훼시장에서 나온 노란 금송아 꽃을 뿌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꽃가루를 하늘로 날려 꽃비를 맞고 있었다. 빙글빙글 날갯짓을 하며 돌기도 하고 하늘을 날듯 뛰어오르기도 했다. 천국의 아이들! 헐벗은 아이들이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사랑스러웠다.
처음은 설레고 마지막은 아쉽다. 마지막이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마지막은 시원섭섭한 잔치 같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두근거림은 마지막을 향한 준비운동이었다. 우리는 예정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보다 순간을 즐겼다. 전력을 다해 숨차게 달리기보다는 편안한 걸음으로 두리번거리다 한눈을 팔기도도 했고 힘들면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 새벽 12시 30분 이면 콜카타를 떠난다. 삼 주간의 인도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갈 집이 있고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끝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나와 나의 사랑스러운 참새들을 태운 택시가 콜카타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