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며칠째 두통이 계속되고 있다. 핑계 많고 게으른 탓에 여행에서 돌아온지 70여 일이 지난 후에야 글을 마무리한다.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일! 참새들이 있기에 두렵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드러내고 싶은 것만을 드러내던 나였기에 스스로 알몸이 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완전히 알몸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하던 날 시작된 한파를 핑계로 한 이주일을 두문불출했다. 예전 같으면 돌아오자마자 여행의 흔적을 정리했을 텐데 배낭은 서너일 그대로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다. 흠씬 얻어맞고 온 것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자다 깨다를 반복한 날들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음산하고 축축한 침대에 시체처럼 뻣뻣해진 몸을 움직이려 애를 쓰는 내가 보였다. 알람 소리에 놀라 잠을 깨면 식은땀이 흘러 쏴한 냉기가 엄습해 왔다.
눌러놨던 감기도 고개를 들었다. 몸살을 앓고 일어나니 이월이 지나 삼월이었다. 그래도 미열은 남아있었고 기침도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세상 밖에서 겉돌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돌멩이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감사를 느낄 새도 없이 다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흔들었다.
나의 하루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듯 나의 삶도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몸은 나아지질 않았고 폐렴에 늑막염까지 나를 괴롭혔다. 어느 새벽에 숨을 쉴 수없어 아픈 갈비뼈를 잡고 뒹굴다 고독사라는 말이 떠올라 슬펐고 응급실로 향하면서 이를 깨물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나를 다독였다. 통증이 덜해질 때쯤 참새들은 혼자서 끙끙거린 나를 책망했다. 며칠 전 작은 참새의 냉장고를 채워주려 청주에 갔다가 오른쪽 옆구리를 끌어안고 기침을 하는 나를 본 작은 참새에게 들키고 말았다.
"아프면 엄마 손해야!"
"응"
작은 참새는 살갑게 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냉정했다. 하지만 객지에서 혼자 지내는 녀석이 안쓰러워 아무 말도 못 하였다. 녀석이 더 아픈 걸 알기에 "응"이라고 말했다.
"엄마, 왜 이렇게 야위었어?"
"다이어트 중이야!"
큰 참새는 학교가 끝나면 매일 전화를 한다. 작은 참새의 전화를 받은 녀석이 집으로 달려왔다. 보자마자 왜 말을 안 했느냐고 펄쩍펄쩍 뛰었다. 나는 참새들을 걱정시키는 엄마였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리라 다짐했는데 내 건강 하나 지키지 못하는 대책 없는 엄마였다. 나는 가끔 자라지 못한 어른 같다. 그래서 지금도 하루하루 자라고 있다. 나의 하루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듯 나의 삶도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참새들은 나보다는 빠르고 건강하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친구들을 만나 인도 여행담을 들려주고 새 학기를 맞는 준비로 바빴다. 가끔 작은 참새는 인도 관련 뉴스가 나오면 전화를 했다.
"엄마, 인도에 다녀와서 그런지 인도에 애착이 가. 슬픈 소식을 들으면 안타깝고 마음이 안 좋아"
엊그제 새벽에는 콜카타의 고가도로가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헐레벌떡 전했다. 빅토리아 기념관을 갈 때 지났던 곳인 것 같다고 어찌해야 좋냐고 애를 태웠다. 한참을 인도의 전통과 문화를 얘기하며 소통했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낯선 곳에 간다는 것은 나의 세상을 넓히는 것이며 그곳과 연을 맺는 것이다. 그 연줄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며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아가야, 괜찮다.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인도에서 무엇을 가지고 왔을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지금은 빈손인듯해도 시간이 지나 인생의 어느 길에서 문득 내 손에 쥐어진 무언가를 보게 될 것이다. 몸으로 배운 인생은 그런 것이다. 머리가 기억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기억하고 내게 온다.
아침마다 아로마 향을 태우고 명상 음악을 들으며 홍차를 마신다. 편안한 맘으로 나의 내면으로 몰입하기 위해 긴 호흡을 반복한다. 숨을 쉴 때마다 몸으로 느낀 인도가 조금씩 숨을 쉰다. 나는 지금 편안하다.
운전을 하기로 했다. 평생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늘 말했듯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달랐다. 엄마의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를 넘어서야 했다. 나는 장롱 속에 있는 초록색 면허증을 꺼내 또 하나의 나를 넘어서고 있다. 처음으로 운전을 하고 절에 모신 엄마에게 다녀왔다.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많은 얘기를 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인! 늘 일만 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그 옆에서 요리를 배우고 사랑을 배웠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오래 참고 기다리며 깊고 아픈 노래를 부르며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안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누구도 아프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내가 아픈 게 싫어서 죽을 것 같다고 도망치고 말았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대신 나는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내 안의 나를 받아들여 나의 존재를 잊기로 했다. 고개를 숙인 내게 엄마가 말했다.
마음이 편안했다.
일자리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몸도 내 생각만큼 움직여지지 않는다. 옴 바바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줄어드는 통장의 잔고가 나를 한숨 쉬게 했다. 하지만 나는 웃는다. 울어야 할 이유가 없기에 그냥 웃는다. 그리고 언제나 나와 함께 하는 나의 사랑스러운 참새들을 꺼내보며 말한다.
아직 내겐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인생은 살만하다.
# 지금까지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이야기로 만나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