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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웨이 Feb 22. 2021

16. 아무것도 아닌 날이 특별한 날이 되는 법

16. 아무것도 아닌 날이 특별한 날이 되는 법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행복의 기원>, 서은국


연애 초반. 희희와 연희동에서 데이트 한 적이 있다. 연희동답게 작고 예쁜 액세서리 샵과 편집숍에 안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우린 구매 의사는 없었지만, 착용 의사(?)는 있었기에 이곳저곳에서 입어보고 착용해보며 시간을 보냈다. 당시 액세서리 샵에서 가장 많이 본 아이템은 헤어핀이었다.  


“희희 해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나는 다 잘 어울리지.”

“오..” (대답하기 곤란할 때마다 나오는 나의 리액션이다.)

“요즘 이런 헤어핀이 유행이라고 하더라고?”

헤어핀을 착용한 희희는 예뻤다.  

“오빠가 하나 사줄게!” 

이럴 땐 ‘오빠가’를 써줘야 한다. (평소엔 절대 쓰지 않는 화법이다)

“아냐, 괜찮아. 밥 먹으러 가자” 


한국인은 삼세판이라고 세 번은 물어봤어야 했는데, 밥을 먹으러 가자는 희희의 말에 바로 알겠다고 하고 가게를 나섰다. 그 날 저녁 메뉴는 칠리가지였기 때문에 빠르게 가게를 나선 것이 아니다. 진짜 아니다. 이상하게 사주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카드를 꺼내어 슬래쉬를 하는 것이 나에겐 쉽지 않다. 그래서 꼭 사줄까? 사줄게! 정도로 이야기하고, 상대방이 거절하면 더 밀어붙이지 않는다. 괜히 생색내는 것 같고, 좀 낯간지러워서 ‘오빠만 믿어!’ 식의 언행을 잘하지 못하는 성격 탓이겠지. 


주말 연희동 데이트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웬걸. 헤어핀을 착용한 여자들이 자꾸 눈에 띄었고,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헤어핀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칠리가지는 다 소화가 되었지만, 헤어핀은 가슴속에 여전히 남아있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코엑스 몰에 헤어핀을 사러 갔다. 꼭 이렇게 사려고 마음먹으면 상점이 잘 찾아지지 않더라. 점심시간 내내 돌아다닌 끝에 헤어핀을 판매하는 곳을 찾아냈다. 디자인도 색상도 여러 개였다. 사장님께 희희의 스타일을 대략 설명해 드린 뒤 함께 희희의 헤어핀이 될 최종 후보를 선정했다. 괜히 남자 혼자 오랫동안 고민하는 것이 어색해, 최대한 왜 이 디자인과 색상을 골랐는지 설명할 수 있을 만한 놈(?)으로 선택한 뒤 결제를 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눈에 또 꽃집이 보였다. 


“오빠, 난 꽃을 들고 걸어가는 여자를 보면 기분이 좋더라. 남자친구에게 사랑받는 여자의 모습 같잖아”


희희가 데이트 도중 무심결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을 듣고 언젠가 희희 에게 꽃 선물을 해줘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서프라이즈로. 꽃집에 들어가 희희 에게 줄 꽃을 사기로 했다. 


“어떤 느낌으로 해드릴까요?”


플로리스트분이 물었다. 꽃다발에도 느낌이라는 게 있는지 몰랐다. 하긴 꽃을 사본 적이 언제였는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꽃집에서 플로리스트 분과 오랫동안 같이 있는 게 어색한 나로서는 빨리 대답해야 했다. 일반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일반적인 나는 말했다

“일반적인 파스텔톤 말고, 색감 있는. 이 보라색 꽃 넣어서 해주세요!”


플로리스트 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꽃다발을 만들어주셨다. 꽃다발을 만들어주시는 동안 희희 에게 어떻게 꽃과 헤어핀을 선물해줘야 할지 생각했다. 희희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핑계로 만난 뒤에, 콘솔 박스를 열게 해서 서프라이즈로 선물한다. 이 정도면 됐다. 꽃다발이 완성되었다. 빠른 걸음으로 지하주차장까지 갔다. 꽃을 혼자 들고 걸어가는 나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빨리 걸었다. 사실 아무도 나한테 관심 없는데, 왜 부끄러워하는지 잘 모르겠다. 


퇴근하고 희희를 차에 태웠다. 콘솔박스에 꽃다발과 선물을 넣어두긴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콘솔박스를 열게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났다. 길게 끌고 가봐야 묘수가 떠오르지 않을 텐데 싶은 순간 방향제가 눈에 들어왔다. 


“희희, 방향제 다 됐나보다. 이거 용액을 좀 더 넣어야겠는데”

“그래? 근데 아직 냄새 잘 나는데?”

“아냐, 더 채워 넣어야 해. 어디에 있더라 방향제 용액이.. 아! 거기 박스 열어봐”

희희가 콘솔박스를 열고, 꽃과 헤어핀을 발견했다. 깜짝 놀라며 감동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젠 내가 생색을 낼 차례다. 

“헤어핀 했던 희희가 예뻐서 하나 샀어. 그거 내가 점심시간 내내 코엑스 돌아다니면서 산 거야. 디자인이랑 색상도 내가 직접 고른 거야. 색상은 너무 튀는 것보단 갈색이 무난하고 예쁠 것 같아서 샀지! 꽃도 일부러 파스텔 톤이 아닌 색감 있는 걸로 내가 해달라고 한 거야” 


부끄러움을 견뎌낸 것만큼 생색을 내버렸지만, 다행히도 희희의 감동은 줄어들지 않았다. 연신 고맙다고 말하는 희희는 두 선물 모두 마음에 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인스타를 켰다. 희희가 꽃 사진과 함께 게시글을 하나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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