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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스 Oct 27. 2023

시어머니와 기막힌 7주간의 동거(5)

말싸움 3: 돈 낸 만큼만 관여하세요

잘못은 인테리어 업체가 했는데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나빠졌나


판사님,

오늘 말씀드릴 사건은 이번 기간 동안 가장 뒤끝 있었던 사건입니다.

제 입장에선 억울하다고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최선이었나 하는 씁쓸한 감정이 듭니다.



시간은 흘러 흘러 어머니와 함께 지낸 지도 어느덧 6주가 지났습니다.


이사 전까지 인테리어가 마무리되어 어머님이 내려가신 후에 이사를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습니다. 인테리어는 다 마쳤지만 어머님 표현으로 '하자가 어마어마' 해서 도저히 이 꼴을 두고 보며 먼저 내려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이사 전에 하자를 전부 고치실 심산으로 이사 갈 집에 먼저 내려가셨네요. 침대도 냉장고도 없는 곳에 당신이 챙겨 오신 이불과 둘째 아들이 시켜준 배달음식으로 4일을 버티셨습니다. 때는 6월 중순이었습니다.


이사할 집에 가셔서 많은 일을 하셨는데, 입주청소를 했음에도 수납장에 가득한 먼지를 손수 닦으시고 인테리어 업자와 연락하며 본인 피셜 20개 가까이 된 하자를 일일이 해결하고 계셨습니다. 감기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바삐 일하며 하자까지 고치니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셨는지 이삿날 만난 어머니는 지쳐 보이셨습니다.


인테리어 업자와 거의 매일 연락해 하자를 문자와 전화로 전달했음에도 이사 온 지 1주일이 지난 무렵까지 수리되지 않은 하자가 남아있었는데요, 그즈음 어머니는 인테리어 업자와 언성을 높여 전화통화를 하며 감정이 상해있었습니다. 아직 잔금을 다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칼자루는 어머니가 쥐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하자가 많은 적은 처음입니다. 빨리빨리 좀 와서 고쳐주세요. 잔금은 하자 고치는 거 다 확인한 후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저희도 일정이 있어서요... 최대한 빨리 손 봐드리고 있습니다. 저희 사정도 있는데 잔금은 약속한 대로 정해진 기일-이삿날-에 주셔야지요.”



계약서에 사인한 실계약자는 나였지만 어머님이 리모델링 전반을 다 관리하셔서 지금까지 저는 빠져있다가 그래도 내 이름이 걸린 문제이기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분이서 우리 집을 두고 다투는 게 마음이 좋지 않았고, 이 업자를 소개해주신 분이 친정 부모님이셨기에 어머님 감정을 누그러뜨려 좋게 좋게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제가 인테리어 업자와 직접 통화하니 잔금을 이삿날에 주는 것이 관례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하자가 큰 것도 아니고 자잘한 것이니 잔금을 주니 마니 할 수준이 아니고, 안 고치겠다는 것도 아니고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고칠 예정이니 어서 잔금을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업자와의 전화를 끊고 잔금 일부를 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하니 어머니는 상기된 목소리로 절대 잔금을 주지 말라며, 급기야 자신이 돈 관리를 할 테니 잔금을 본인 계좌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잔금을 보낼 수 없다고요.


인테리어는 수 천만 원 대가 들었고 시어머님과 친정 부모님, 우리 부부가 각각 1/3씩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인테리어 공사에 친정 부모님과 우리 부부의 지분이 있는데 잔금까지 어머니가 보내라 마라 하는 건 납득할 수 없었고 내 정당한 권리를 뺏긴 것 같아 화가 났습니다. 저는 우리 돈이 들어갔으니 우리의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다짐했고 문제의 '그 발언'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 낸 만큼만 관여" 하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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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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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에는 저와 시어머니의 기질 차이가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분란을 일으키는 것, 특히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싫어합니다. 큰 소리로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감정을 조절할 줄 모르는 미숙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인테리어 하자도 사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모른 척하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성격이 무던한 편입니다.


반면 시어머니는 감정적이고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습니다. 일처리가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에 못 미치면 본인이 직접 하시든 고집을 피우고 잔소리를 하시든 끝까지 원하는 바를 이루시는 분입니다. 남들과 싸워서라도 내 새끼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좋은 것 주시려는 분이고 본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열이 받고 감정 주체가 안되시는 분입니다.


저는 어머니와 한 집에 오래 머무는 게 불편했기 때문에 하자 보수를 질질 끌기보다 빨리 마무리하고 가시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인테리어 업자와 친정 아빠가 관계가 있는 분이기에 괜히 잔금을 두고 다퉈 갈등을 일으키기보다 좋은 이미지를 남기기 원했습니다. 게다가 돈을 가지고 사람을 협박하는 게 제 성격에 맞지 않기도 했고, 일을 크게 키우지 않고 좋게 좋게 마무리하는 게 제 바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며느리와 손녀가 사는 집을 좋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본인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을 가감 없이 표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감기 때문에 연약한 육신, 오랜 타지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아들 며느리 가족의 냉대에 마음까지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남들에게 욕을 먹든 어떻든 돈을 지불했으니 본인 마음에 들게 제대로 고쳐야 했습니다. 그게 어머니의 상식이었습니다.



제가 어머니 기질과 욕구를 파악했더라면, 조금만 침착했더라면, 큰 갈등 없이 같이 인테리어 업자를 욕하며 어머니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렸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평화주의자 성향인 저는 어머니의 분노 표출과 업자와의 갈등 상황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어머니의 말씀에 감정적으로 대응했습니다. 나에게 친절한 사람에겐 한없이 친절하지만 무례한 사람에겐 맞서서 무례해지는 제 성향이 발휘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제 발언에 크게 충격을 받았고 마음에 박힌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7주 간의 기간 동안 수많은 다툼이 있었지만 마지막에 마음에 남은 말은 결국 "돈 낸 만큼만 관여하세요"가 되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마음껏 미워할 빌미를 제공하다니 얼마나 미련한 며느리인가요.


이 발언의 여파는 생각보다 오래갔고, 후에 시어머니가 몇 달간 저와 남편을 전화 수신차단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일이 이렇게 커지고 나서야 저의 행실을 돌아봤습니다. 이 말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상처였을지, 연약한 어머니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무너뜨리는 말이었을지.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라도 말은 가려서 해야 한다는 것을요.



표지 사진 출처: UnsplashJp Va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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