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서로 못볼꼴을 많이 보인 후 감기로 지쳐 갈등이 소강상태일 무렵, 어머니가 대뜸 말씀하셨다.
"너희와 나는 여우와 두루미 같아. 서로 다른 접시에 음식을 대접하고는 먹으라고 강요하잖아.
둘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건데."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는 속으로 놀랐다. 어머니가 우리의 방식을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는 부분에서 본인의 생각을 강요해 오신 것을 이제야 반성하시는 걸까 싶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머니의 방식을 옛날 방식, 지금은 통하지 않는 잘못된 방식이라 여기고 전부 우리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나도 어머니의 방식을 다른 게 아니라 틀리다고 생각해 온건 아닌가.
시어머니와 우리 부부, 특히 나의 생각은 극과 극이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옛날 사고방식을 따른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맡은 역할이 다르며, 남편의 일을 아내가 보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남편과 자녀를 잘 보살피고 남편을 키워주신 시부모에게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그러셨던 것처럼.
나는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능력을 발휘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컸다. 우리 집이 큰 집이라 친정 엄마는 워킹맘에 시어머니 수발도 드셨지만 아빠도 일정 부분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 친오빠도 집안일을 아예 안 하지 않았던 환경이어서 남녀평등이 우리 집에서는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딱 하나, 할머니는 친오빠와 나를 차별해 '여자는 이렇게 행동해야지', '남자는 이렇게 행동해야지' 말씀하시는 통에 나는 그 말에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나와 어머니가 제일 먼저 트러블이 생겼던 부분은 식사였다. 몸이 약하신 어머니는 약을 먹기 위해 세끼 밥을 꼭 챙겨드셔야 한다. 그것도 시간에 맞춰. 어머니는 위장이 약해 못 드시는 음식이 많은데,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 닭고기와 돼지고기, 튀김과 과일 등 거의 드실 수 있는 게 없다. 자극적인 배달 음식은 거의 못 드신다고 보면 된다.
반면 우리 가족의 식사는 아이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요리는 직접 만든 이유식과 유아식을 먹여야 하는 아이 음식 위주로 하고, 시간이 없어 어른 식사는 주로 밀키트와 배달 음식의 도움을 받는다. 재택근무를 하며 생활이 불규칙한 남편은 저녁을 제외하고 밥시간이 지켜지는 때가 없어 음식을 준비해 두면 알아서 꺼내 먹는다. 그마저도 귀찮음이 배고픔을 이기는 때가 많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식사 패턴을 갖는 어머니, 나, 남편 세 사람이 만나 같이 식사를 하려고 하니 트러블이 생겨 서로 고통받았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당신 식사를 뒷전으로 생각해서, 며느리는 아이 챙기고 내 밥 챙겨 먹기도 바쁜데 시어머니의 까다로운 식성을 맞춰드려야 해서, 아들은 원래 잠을 자던 시간에 강제로 기상해 밥을 먹어야 해서 모두 불만이었다.
처음엔 본인 국을 직접 끓이시던 시어머니는 감기에 걸려 몸져누워 요리를 못하게 되셨고, 결국 마지막엔 레토르트 국과 간이 세지 않은 반찬 가게 음식을 드시며 버티셨다.
또 다른 트러블 포인트는 우리 부부가 기존 남녀 역할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시어머니는 30년 넘게 전업주부로서 아이들 돌보고 남편 챙기는 걸 미덕으로 알고 사셨다. 원체 깔끔한 성격이셔서 집안을 광나게 유지하며 쉴 새 없이 일하는 것이 몸에 밴 분이시다. 시아버지는 공직자시고 일이 많으셔서 집안일에 일체 관여를 안 하셨고 어머니는 남편에 이어 큰 아들까지 학업에 집중하라고 집안일을 거의 시키지 않으셨다. 그런 어머니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 육아를 며느리와 나눠서 하는 아들을 보며 화가 치밀어 오르셨다. 일도 하고 육아도 하다니...
나는 워낙 집안일에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느긋한 성격을 갖고 있다. 결혼 초 맞벌이를 할 때 남편과 집안일 분담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던 남편을 보며 나도 최소한으로 하고 있다. 전업 육아를 하고 나서는 육아 만으로 벅차기도 하고 집안일을 완벽하게 하는 것보다 내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아에 올인하지도 않고 집안일과 육아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며 내 행복을 누리는 시간을 갖는 게 정신 건강에 좋으며 아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집안일과 육아 외에 남는 시간에 책 읽고 글을 쓰며 프리랜서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남편이 육아하는 시간이 참 고맙다. 어머니는 이해를 못 하시는 듯 하지만 말이다.
식사와 취침시간 같은 생활 패턴 차이, 집안에서의 본인 역할에 올인하는 어머니와 자기 일을 찾아 하려는 며느리의 가치관 차이, 몸을 쉴 새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시어머니와 느긋한 며느리의 성격 차이. 이 모든 것을 서로가 다 이해하며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와 다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갖고 있어도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서운할 수 있고 며느리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는 것. 이걸 이해하는 것이 소통의 시작일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시어머니 댁에 가거나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실 때 여우 접시와 두루미 접시를 내놓을 것이다. 다만 바라기는 상대를 배려하며 예전보다 조금은 더 오목한 접시를, 조금은 더 목이 넓고 짧은 접시를 내놓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