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의 마무리와 그 후
시어머니와 7주간의 동거가 끝났다. 올라오실 때 우당탕탕 올라오신 것처럼 내려갈 때도 홀연히 떠나셨다.
인테리어 하자 수리가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시동생과 예비 신부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두 달 후 결혼을 앞둔 그들은 형님 새 집 구경도 하고 선물도 줄 요량으로 왔는데 마침 하자 수리로 가뜩이나 예민하신 어머니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너 얼굴이 왜 이렇게 수척해졌니. 새 신랑이 이렇게 얼굴이 상해있으면 쓰겠니? (예비 며느리를 향하여) 좋은 것 좀 챙겨주지 그러니. 안 되겠다. 이번에 내가 가서 보약 한 첩 지어줘야겠다."
그 한마디에 어머니의 다음 행선지는 시동생 네로 결정됐다. 괜히 얼굴 비춘 시동생 네는 가만히 있다 불똥이 튀었다. 인테리어 사장님에게 이틀 후까지 전부 A/S 처리를 완료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고 어머니는 잔금을 치른 후 주말에 둘째 아들 네로 급히 올라가셨다.
며칠 후, 언제 일을 다 보시는지, 고향집에는 어떻게 모셔드려야 하는지 궁금하던 차에 갑자기 시댁 카톡방에 카톡이 날아왔다.
"여기 광주집이다. 너네 이모가 차로 데려다줬어."
으응? 갑자기 이모님이 광주로 데려가셨다고? 역시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부리는 어머님이다. 어쨌든 길고 긴 동거 기간이 지나 이제 진짜 우리 가족만 남았으니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회복하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시골로 내려가신 후, 어머님은 우리 부부를 수신차단 하시고 단체 카톡방에서도 나가버리셨다. 한 달 넘게 연락이 안 되었다. 개인톡으로 손주 사진을 보내면 답변은 하신다고 남편이 전해왔지만 나는 어째 어머니에게 연락하기가 싫었다. 그 발언 - '돈 낸 만큼만 관여하세요!'에 대해 마무리를 잘 맺지 못하고 서로 상처를 준 채 헤어져서인지 내가 먼저 연락을 한다면 이전 일을 사과해야 할 텐데 죽어도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와는 거리를 둔 채 그간 다툼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 7주 간의 일을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관계 맺는 방식과 의사소통하는 방식에 부족함을 느끼고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의 <관계를 읽는 시간>이라는 책을 읽었다. 나를 좀 더 이해하고 어머니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아무리 어머니가 잘못한 점이 있다 해도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 덩달아 감정을 주체 못 한 것은 내 잘못이라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내려가신 지 한 달 후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생신날, 보이스톡으로도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아 장문의 카톡을 남겼다. 그날 일은 죄송하다고, 후회하고 있다고, 마음 풀리시면 연락 달라고... 남편으로부터 전해 듣기를 그 카톡을 보고 어머니의 마음이 풀리셨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 사과만 받으셨지 '나도 미안했다' 같은 반성의 말씀은 하지 않았다. 나는 감정적으로 대응해 싸움에서 졌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수신차단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와 연락을 하게 되면 자꾸 육아와 살림에 간섭하게 될까 봐 수신차단을 하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스스로 거리를 두는 방법을 택하셨다. 어머니도 괴로울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손녀딸 사진도 자주 못 보고...
그러다가 시동생 결혼 준비 때문에 이것저것 할 얘기가 있어 다시 단체 카톡방에 컴백하셨다.
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우리 사이 갈등은 앞으로도 쭉 있을 예정이다. 어머니가 내뱉으시는 말 한마디에 나는 상처받고 발끈하는 마음에 화를 돋우는 말을 해 어머니께 상처를 되돌려 줄 것이다. 어머니는 기분이 상하셔서 연락을 피하고 카톡방을 나갈 것이며, 다시 사과를 받곤 컴백하실 것이다.
앞으로는 시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화가 나 우발적으로 입을 놀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과연 또다시 감정을 폭발하는 어머니를 마주한다면 나는 평정심을 지킬 수 있을까.
일단 어머니를 만나는 기간을 최소화하고,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기간 동안 아침저녁 그리고 시시때때로 마음이 상할 때 마음을 쏟아놓는 기도를 하며 위로를 받고 싶다.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시거나 서운한 말씀을 들었으면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된 후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정리해서 감정을 배제한 채 어머니께 간략히 말씀드려야겠다.
한 가지 더. 시어머니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를 바란다. 단지 ‘그분도 며느리로서 비슷한 삶을 사셨으니 나도 이해해 드려야겠다'가 아닌, 어머니의 연약함 - 감정 조절이 서툶, 남자와 여자가 할 일이 나뉘어있다는 옛 사고방식, 아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키운 잘못된 애착 - 그 모든 것을 긍휼히 여기고 그분의 배경과 역사, 상처를 품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안의 남녀차별의 아픔과 상처들이 아물어져서, 더 이상 시어머니의 차별이 상처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부족한 사랑을 채울만한 사랑이 내 안에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