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캔디스 Nov 14. 2023

시어머니와 기막힌 7주간의 동거 (완결)

두 달 만에 시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모셨다 - 뭐가 달라졌을까

지금까지 있었던 일

결혼 8년 차인 우리 부부는 이사 갈 집 리모델링을 감독하기 위해 지방에 계신 시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셨다. 한 달 남짓일 줄 알았던 동거 기간은 7주가 되었고, 서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게 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집으로 내려가신 후 한동안 연락이 없으셨던 어머니, 두 달 후 있을 시동생 결혼식 참석 차 올라오게 되셨다. 다.시. 우.리. 집.으.로.



또 사건이 터졌다

9월 초 하나뿐인 시동생이 결혼했다. 서울 살고 있는 시동생과 예비 동서가 착착 결혼식 준비를 진행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혼식 1주일 전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오더니 결혼식을 미루고 싶다고 하셨다.


결혼식 때문에 지방에서 올라오는 일정과 머물 장소를 두고 예비 며느리와 의견이 틀어진 것이다. 우리는 몇 달 전 7주의 동거기간 동안 아주 힘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을 위해 올라오시는 어머니를 못 챙길 것 같다고 미리 말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미 (어머니 명의로 된) 신혼집에서 동거 중인 예비 며느리가 그곳으로 어머니가 올라오시는 걸 원치 않았고 어머니는 그 얘기를 듣고 서운해하셨다. 어머니는 '본인집에 본인이 못 간다'는 사실에 속이 상해 전화로 예비 며느리와 한바탕 하셨고 이에 예비 며느리도 맞받아쳐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마지막까지 안 올라온다, 결혼식 미룬다 하시는 걸 겨우겨우 설득해서 결국 결혼식에 참석하셨고 무사히 마쳤다.


어머니는 결혼식 이틀 전 밤에 올라오셔서 결혼식 끝나고 이틀 후 오전에 돌아가셨다. 총 4박 5일, 금토일 3일은 찐하게 머물다 가셨다.

결혼식이 무사히 끝나 얼마나 다행이던지 (c) Unsplash Álvaro CvG


우리 좀 달라진 듯?

우리 부부는 어머님을 모시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우리가 나설 때라는 것에 동의했다. 이전 7주의 시간과는 확실히 다른 게, 그때는 시어머니가 올라오시도록 내가 결정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떨떠름한 마음이 한편에 있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도와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 식사 준비를 하고 예비 며느리를 향한 속상한 이야기를 들어드렸고, 내 감정을 상하게 하는 발언과 행동을 하셔도 넘어갔다. 남편도 결혼식 일주일 전부터 밤마다 전화통화로 이야기를 듣고 위로와 조언을 해드려 어머니 전담 상담사 역할을 했다.


원래는 결혼식 날까지만 계시는 줄 알고 그거에 맞춰 장을 보고 배민으로 반찬도 배달시켰다. 먹을 게 넉넉히 있으니 어머니께 뭘 해드려야 하나 스트레스받지 않고 척척 할 수 있었다. 에너지와 시간을 떼어놓기로 정하니 내 마음도 상당 부분 편안했다. 이전 동거기간에 어머니의 생활패턴을 파악해 둔 것이 확실히 도움 됐다.



여전히 힘든 점

하지만 여전히 부딪히는 부분이 보였다. 어머니와 대화하면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욱하는 자아를 상당 부분 눌러야 했다. 토요일 결혼식을 무사히 마친 후 우리 가족이 교회에 다녀온 일요일 오전 사이 어머니는 집청소를 하시며 살림을 휘저으셨다. 그러면서 뭐라 뭐라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셨는데 대부분 일리 있는 말이라서 기분은 상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여름엔 냉장고에 쌀 보관해라, 녹슨 수저통 버려라, 곰팡이 핀 행주 버려라 등).


청소를 하신 건 오후에 있을 교회 목사님 심방 때문이었는데, 스케줄 조정이 어려워 이사 온 지 몇 달이 흐른 후에야 심방을 했다. 그런데 어제 결혼식의 속상함이 안 풀리신 건지, 결혼한 자식에 대한 하소연과 큰 아들(=남편) 자랑을 그렇게 하셨다. 교회 분들이 사정을 알고 계셔서 잘 들어주고 받아주셨지만, 처음 집을 사서 들어온 집의 이사 심방 시간에 왜 관련 없는 이야기를, 그것도 어머니가 주도적으로 하신 건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집에 방문하셨고 결혼식의 여파가 컸던 만큼 어쩔 수 없었지만 나로선 참 아쉬웠다.


그리고 내려가시는 일정 픽스가 안 되어 결혼식 끝나고 언제 가실까 남편과 걱정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러다 (늘 그렇듯) 급하게 내려가시기로 결정되어 분주히 모셔다 드렸다. 남편이 기차표를 예매하고 역까지 모셔다 드려야 했는데 평일에 있을 회의 준비를 미리 해야 했고, 내려가시는 날짜가 하루 전에 결정된 탓에 원하는 시간대에 표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시동생 집에 있는 강아지를 데리고 가셔야 했기에 시동생과도 일정을 맞춰야 했다.

결국 또 홀연히 내려가신 어머니 (c) Unsplash paolo candelo


감사한 점과 감상

우리 가족은 어머니가 내려가신 후 일주일 넘게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졌다. 그 후에도 종종 남편에게 전화가 와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나는 어머니 앞에서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을 되돌아보며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정리했다.


감사하게도 이번 만남 때는 사랑과 섬김의 마음이 차오른 상태로 어머니를 맞을 수 있었다. 오시기 전에도 기도하며 결혼식을 주님께 맡겼고, 결혼식을 무사히 치르는 걸 목표로 (이게 하나님의 뜻이 맞다면), 가뜩이나 예민하신 어머니를 최대한 지지해 드리고 이야기를 잘 들어드렸다.


어머니는 요즘 시대 며느리의 생각을 이해 못 하셨는데 그럴 때 나는 예비 동서가 했던 말에 속으로 많이 공감했다. 나도 신앙이 없었다면 비록 입 밖으로는 안 내더라도 그와 똑같이 생각했을 것 같다. 시어머니가 집안일에 간섭하는 것도 싫고, (거의 매번 반 통보식으로) 자주 오시는 것도 싫고, 본인 집이라고 결혼식 전 1주일 동안 머물겠다고 올라오는 것도 불편하고… 예비 동서 마음을 이해해서인지 두 사람의 중간다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하소연하면서 예비 동서의 행동에 대한 내 생각을 물어오실 때 나는 예비 며느리가 '지금까지 연애도 안 해보고 결혼 생각이 거의 없는 독립적인 사람이었는데 도련님을 만나고 결혼을 하게 돼서 다른 문화의 가정이 만나고 두 사람이 하나를 이룬다는 개념이 낯설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요즘 세대는 이전 세대의 생각을 거의 이해 못 한다고. 어머니도 세대가 너무 빨리 변하는 것 같다며 요즘 세대 생각을 따라갈 수 없다고 예비 며느리를 조금 이해하시는 듯했다.


쨌든 시어머니는 옛날 분이시고 성격상 배려받고 본인 위주로 상황이 흘러가는 걸 원하시는 것 같다. 그렇게 안되면 섭섭해하고 어떻게든 표현을 하시는 분이다. 그것 때문에 며느리는 욕을 먹고 아들들은 중간에서 난처해한다. 알아서 섭섭해하시지 않게 행동하려면 뼈를 깎는 수고를 요구한다. 그래서 나도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하지 않았는데 이번 경우는 피치 못하게 최대한 섬겼다.



그래서 또 앞으로는? 

시동색 결혼식의 진행, 위기, 결말을 지켜보며 이 새로운 가정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모든 일을 이루는데 필요한 힘, 에너지, 지혜, 물질을 주실 것이라 믿었기에 내가 해야 할 역할을 다 하지만 더 오버해서 걱정하거나 나서지 않았다.


욱하거나 어머니 말에 토 달고 싶고, 받아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지만 기도하며 자제했다. 내 혼탁한 감정과 생각이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걸 막고 싶었다. 지르는 건 순간이고 통쾌한 마음은 잠깐이지만 뒷수습은 며칠이 걸린다는 걸 지난 7주간 겪으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7주의 동거기간을 거치며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배려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현실은 아직도 거리감이 있고 서로를 포용하고 받아주기 위해서는 멀고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 한국에서 결혼은 여전히 '문화가 다른 두 가정의 만남'이다. 내게 익숙한 것을 내려놓고 생각과 습관이 나와 다른 배우자를, 그리고 배우자의 가족을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